‘영진위와 한국영화진흥정책을 철저히 망친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규탄한다!’ 12월23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노동조합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특별감사(이하 특감)로 밝혀진 영진위 위원장과 사무국장의 비위 사실에 대한 비판이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 들어 영진위가 한국영화 진흥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정부의 영화계 탄압을 사실상 묵인한데 대한 자성이다. 성명서 발표 직후, 임우정 영진위 노조위원장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현 상황에 대한 영진위 노조의 첫 번째 공식 인터뷰다.
-2015년 1월5일 김세훈 위원장 취임 후, 영진위 노조 차원의 공식 성명서가 나온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진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부에서도 상당히 공유되고 있다는 방증인가.
=내부의 분위기가 굉장히 좋지 않다. 성명서 준비는 계속했는데 때를 기다렸다. 2016년 12월19일 노조의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마치자마자 바로 진행했다. 영진위 전체 정원 99명 중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 81명의 뜻이다. 국정조사, 특감을 지켜보며 사태에 책임져야 할 위원장이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데 큰 문제의식을 가졌다. 위원장이 “왜 이렇게 센 성명서를 냈냐, 섭섭하다. 나도 절차에 따라 (문체부 문책 조치 등을) 지켜보고 있다”고 하더라. 문체부 특감 결과가 영진위에 전달(문체부 감사실은 12월5일 영진위에 결과를 통보했다.-편집자)된 지 한달이 다 돼가는 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사이 사무국장은 사내 인트라넷에 (감사 결과가 사실과 다르다며) 자기변명을 했다. 위원장은 그 글 때문에 자신이 곤란한 지경이라고 하고. 상황이 이러니 노조는 원칙대로 했다. 9인 위원회(위원장, 부위원장 포함 비상임위원으로 구성. 영화진흥기본계획 수립 및 연간 예결산 등을 의결한다.-편집자)의 책임도 크다. 과거의 9인 위원회는 정책 간사를 두고 소위원회별 현안에 관심을 쏟았는데 지금은 거수기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문체부가 지적한 문책 요구의 첫 번째가 사무국장의 ‘성희롱 발언 등 부적절한 언행’이다. “네가 예뻐서 잘해주는 줄 아냐, 잘해줄 때 말 잘 들어라”를 비롯해 여성직원에게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강요하는 등 구체적인 사례들이 밝혀졌다.
=내부 고발자가 국무총리실에 이 사실을 처음 제보했다. 영진위에 암행 감찰단이 와서 사무국장 성희롱과 관련해 조사를 했고 이후 국정 감사와 문체부 감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노조는 사내 성희롱 관련 부분도 문제제기했다. 그간 성희롱 가해자가 버젓이 승진하는 사례를 봐왔다. 3~4년차 남성 직원들이 막 입사한 여성 직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경악할 노릇이다. 고삐가 풀린 조직문화나 다름없다.
-위원장과 사무국장 모두 업무추진비 집행 부적정(환수 조치 필요금액은 위원장 1707만9110원, 사무국장 1734만750원이다.-편집자), 관사 임차비 집행 부적정사유로 문체부 특감의 문책을 받았다.
=위원장은 환수 조치하라는 문체부에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다. 더 큰 문제는 관사 임차비 집행건이다. 영진위는 관사가 없다. 필요하다면 국회 예산을 받아서 관사를 마련하면 된다. 현재 관사용 공간은 위원회가 임대한 게 아니다. 위원장이 20만, 30만원짜리 월세에 살다가 관사 관련 내규를 만들어서 80만원짜리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그 규정을 소급하여 위원장은 규정을 만들기 이전 개인이 지불한 월세를 받았다. 위원장이 새로 이사간 곳은 영진위가 집주인과 계약을 직접 하지도 않았다. 월세를 위원장 통장으로 바로 입금한 거다. 개인이 급여를 받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문체부가 문제시한 것도 이 점이다. 관사 임차 관련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시설 임차료, 관리비 등을 전용한 거다. 더 충격적인 건 사무국장까지 그랬다는 거다. 전례가 없다. 사무국장은 계약직 직원인데 영진위가 사무국장의 휴대폰 요금까지 내줬다.
-바로 어제인 12월26일, 영진위 9인 위원회가 정기 회의를 열었다. 그제야 문체부 문책 요구가 위원회에 공유된 것일 텐데 안건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징계를 결정하는 9인 위원회에 영화계 고발로 피고발인이 된 김세훈 위원장이 포함돼 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좀전에 연락을 받았다. 9인 위원회가 사무국장 문책건을 안건으로 올리지 않고 보고 안건으로만 진행했나보다. 일부 위원들이 항의해 임시회의를 열었고, 결국 사무국장의 직무정지가 가결됐다. 2016년 12월30일 임시회의를 열어 최종 징계처분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6년 12월 말로 세 위원의 임기가 끝난다. 2017년 2월 말까지가 임기인 이들이 2명, 8월26일까지가 임기인 이가 3명. 차기 위원회를 어떻게 꾸릴지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다. 영화인들이 어떻게 이들을 압박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9인 위원회의 변화가 필요하다. 허수아비 노릇만 할 거면 차라리 사업은 (새로운) 사무국 체제로 넘기고 9인 위원회는 이사회 기능만 하라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9인 위원회 회의록, 무조건 속기해야 한다(현재는 요약본 수준의 회의록만 공개돼 비판받고 있다.-편집자).
-박영수 특검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문체부 조사에 착수했다. 영화인 상당수도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데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 벨>을 상영한 이후 영화제, 배급사, 관련 개인 등이 각종 영진위 지원 정책에서 배제돼왔다. 한국영화를 진흥하는 공공기관인 영진위 내부의 입장을 묻고 싶다.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본 적은 없다. 모든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리스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영진위보다 윗선에서야 관리용 풀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부산국제영화제 관련해서는 의혹만 있을 뿐 확증이 없다. <다이빙벨> 한편 때문에 정부가 그토록 집요하게 굴었을까?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영진위 ‘심사위원 후보 온라인 등록 시스템’(영화산업 관련 분야 5년 이상 경력자, 박사학위 소지자, 석사(학사) 이상 소지자로 3년 이상 경력자면 본인이 직접 온라인에 심사위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편집자)은 영진위의 비전문성과 시스템 부재의 단적인 예로 지적받는다.
=과거 영진위는 1년에 한번씩 영화인 단체들로부터 심사위원들을 추천받아 분야별로 심사위원 풀을 갖췄다.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과거 풀이 제로 베이스가 됐다. 수많은 감독님을 비롯하여 영화인들이 온라인에 직접 접속해 자기 이름을 등록하겠나. 풀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고 등록 인원도 적다. 당연히 사업별 심사위원이 중복될 수밖에 없다.
-12월23일 영화계가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고발하면서 CG렌더링을 공공에 임대하는 공공렌더팜 사업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세훈 위원장이 임기 내에 완수하고 싶어 한 사업이다. 영진위의 한해 예산이 550억원인데 그중 렌더팜 사업에만 약 140억원이 편성됐다. 이와 관련해 국감 때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이 있었다(사업추진과정에서 예산이 100억원 증액됐으나 9인 위원회, 기금관리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았다.-편집자). 그 후 증액된 예산 100억원을 포함한 140억원이 2016년에 불용 처리됐다. 그토록 중요하다며 강조한 사업인데 이상하지 않나. 이 예산을 위해 다른 사업들을 축소, 정리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영진위가 직영해온 인디플러스가 2016년 12월31일 폐관했으나 그 이유 등을 정확히 밝히지 않아 영화인들의 공분을 샀다.
=당연히 영진위 책임이다. 극장을 지원하는 정책을 해야 할 곳에서 극장 직영이라니 말이 안 된다. 공무원에게는 극장 수가 중요한 성과의 지표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극장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
-영진위의 근본적인 탈바꿈을 위한 과제는 뭔가. 노조 차원의 플랜을 묻고 싶다.
=사실 정권이 바뀌면 한자리를 차지하려고 드는 영화인들을 향한 영진위 내부의 반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비판을 제대로 하려면 영진위 자체가 똑바로 서야 한다. 패배감에 절어 영화계만 비판할 수 없다. 위원장은 사무국장 징계를 빨리 결정하고 9인 위원회를 어떻게 꾸릴지 책임져야 한다. 위원장, 문체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필요하다면 위원장 사퇴를 말할 수 있다. 노조는 2017년에는 어떻게든 영화계와 신뢰 회복을 해나가려 한다. 조합원 워크숍도 할 예정이다. 윗선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뚝심을 키워야 한다. 노조가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영진위 체질 개선과 영진위 노동자들의 자부심 키우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