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의 전문위원이라는 직책과 관련된 의혹은 박근혜 정권이 자본을 이용해 영화 검열을 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특정 개인의 비리 문제로 지켜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모태펀드 투자심사에 참여한 적 있는 모 투자심사로부터 모태펀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신원은 공개할 수 없다. 그는 “모태펀드와 관련된 이번 의혹은 모태펀드 자체의 구조적 한계에 덧붙어 새로 생긴 전문위원이라는 직책과, 모태펀드와 창투사의 갑을 관계가 심화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한국벤처투자의 전문위원은 2015년 1월12일 처음 신설되었고, 현재는 계약이 만료돼 공석인 채로 남아 있다. 또한 홈페이지에는 전문위원이라는 직책마저 삭제되어 있다.
-보통 모태펀드 투자심사는 어떤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영화든 공연이든 다른 문화 콘텐츠든 투자 제안이 들어오면 내부 투자심의를 한다. 그다음에 투자심사 보고서를 작성한다. 투자심사 보고서를 만들어 모태펀드의 ERP(기업 내 생산, 물류, 재무, 회계, 영업 등 경영 활동 프로세서들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해주는 시스템)에 등록한다. 등록 날짜를 기준으로 5영업일 뒤에 본투자심의가 열린다. 모태펀드는 투자심사 보고서를 본투자심의가 열리기 전에 읽어야 한다. 전문위원이 생기기 전에는 한국벤처투자 투자관리2팀이 보고서를 보면서 내용을 검열하는 게 아니라 서류에 표기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며 오류가 없는지 확인한다. 콘텐츠 내용을 두고 문제를 삼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한국벤처투자는 본투자심의에 참여하지 않는다. 보통 창투사의 의결권자 2명, 외부투자심사위원 1명, 언제부터인가 생긴 외부 전문가 풀에 속한 1명을 합쳐 총 4명이 투자심사를 한다.
-모태펀드 전문위원은 원래 없던 자리인데.
=블랙리스트가 정말 존재해서 돈 관리를 해야 했구나, 그래서 전문위원이 필요했구나, 이렇게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벤처투자는 전문위원이라는 직책이 모태펀드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반은 맞는 것 같다. 가령 지난해 흥행작이었던 어떤 영화의 경우, 제작자가 송사와 돈 문제가 많지 않나.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의 투자관리2팀은 그런 사실들을 잘 모른다. 반면 업계 사람들은 잘 안다. 모태펀드가 출자한 투자조합 또한 절반이 나랏돈인데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고, 돈 개념이 없는 사람한테 투자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 되니까.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을 전문위원으로 고용해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는 영화를 걸러내는 데 유용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본투자심사 과정에서 전문위원으로부터 어떤 지침을 받은 적 있나.
=없다고는 말 못한다. 가령 <아가씨>는 내용적으로 정치적 이슈가 없는 영화다. 그런데 모태펀드가 출자한 투자조합이 단 한 군데도 이 영화의 투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가씨> 투자를 진행한 CJ E&M은 모태펀드쪽 펀드에서 막히니까 자신들의 계정에서 30~40%를 대고 나머지 60~70%를 사모펀드, 개인투자 등 외부에서 조달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확인한 결과 <아가씨>에 모태펀드가 출자한 투자조합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편집자). 그건 박찬욱 감독 때문이다.
-“전체 지분에서 지급해왔던 배우 인센티브를 제작사 지분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전문위원의 지침도 있었다던데.
=이제 대기업은 모태펀드가 중요치 않다. 사모펀드와 금융권이 활발하게 움직이니까 더이상 모태펀드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는 거다. 문제는 흥행파워가 약한 배급사와 약한 감독이 만든 영화다. 가령, A급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그의 인센티브가 과도하게(7% 이상) 높으면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받기가 애매해진다(총비용에서 인센티브를 지급하게 되는데, 이는 순이익이 발생할 경우 투자사와 제작사 모두 수익에서 같은 수익 지분대로 나눠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총비용에 포함되는 인센티브가 많으면 많을수록 투자사 수익이 줄어들기에 수익률 제고라는 명분으로, ‘7% 이상의 인센티브’ 조건으로 배우와 계약할 경우 모태펀드 자조합으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면 제작사의 수익에서 나눠주라는 의미다. 이것은 동반성장협의회 합의사항과 배척된다). 신상한 전 전문위원이 모태펀드를 나갔으니 배우 인센티브 관련된 지침들은 원상회복되겠지. 왜냐하면 배우 인센티브 지급이나 가족 관계 제작사에 대한 모태펀드 투자 금지 관련 지침은 공문을 통해 내려온 게 아니라 전문위원의 구두를 통해 전달된 거니까.
-외부 전문가 풀에 속한 사람들이 투자심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도 있던데.
=외부 전문가 풀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 ‘우클릭’한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거부권은 없다. 그들이 거부한다 해서 본투자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쓴 코멘트 때문에 (투자심사가) 부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규칙까지 있었다면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투자심사를 몇번 하다보면 친해지는 외부 전문가가 생길 것이고, 창투사별로 그런 사람 몇명쯤 정해 돌려가며 심사를 담당하게 한 것 같다.
-외부 전문가 풀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외부 전문가 풀은 요식 절차였고, (전문위원이나 한국벤처투자가) 이런 절차가 있다고 윗선에 보여줬을 거다. 우리가 이렇게 관리하고 있다. 전문위원이 윗선과 외부 전문가 풀, 모태펀드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했을 것이다. 투자심의 보고서를 본심사 일주일 전에 본다고 말하지 않았나. 심사에 올리기 위해 ERP에 등록했는데 ERP에서 삭제되면 처음부터 등록한 적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부결된 이유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빼면 끝이니까. 그런 시스템 구조 또한 모태펀드가 투자를 통한 검열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전문위원이라는 존재가 모태펀드의 구조적 문제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보나.
=전문위원의 역량이 커질 수 있는 게 모태펀드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년 모태펀드는 정해진 수시, 정시 출자사업을 하지 않나. 미래, 영화, 문화 등 여러 계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서 말이다. 창투사는 투자조합을 만들지 않으면 운용을 할 수 없는데, 투자조합을 만들어 생긴 수수료로 회사 운영을 하는 건 굉장히 영세한 사업이다. 운용 펀드 규모가 1천억원이 된다고 해도 관리 수수료 1~5%를 일정 기간 동안만 받는 까닭에 수익 금액도 그리 많지 않다. 직원들이 먹고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 끊임없이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출자사업을 따내야 하지 않나. 출자사업을 따내려면 모태펀드에 잘 보여야 한다. 결국 모태펀드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모태펀드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거다. 출자사업 제안을 하면 1차가 서류심사다. 60점인가, 70점을 통과해야 프리젠테이션(PT)을 할 수 있다. 2차 PT에서는 과거 운용조합의 수익률이 가장 큰 결정 요인일 것이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작용이 없다고는 말 못하는 거 아닌가. 1차 서류심사와 2차 PT 점수로 당락이 결정되는 까닭에 결국 모태펀드와 창투사는 갑을 관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모태펀드는 공정한 룰이라고 얘기할 테지만 창투사 입장에서는 전혀 공정하지 않다. 모 창투사는 <변호인>에 투자해 많은 수익을 벌어들였음에도 <변호인> 이후 모태펀드 투자를 거의 못 받고 있다. <변호인> 투자 이후 처음 1년은 1차 서류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이후 1년은 서류심사를 통과해도 PT에서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이들에게 붙은 낙인이 언제 떨어지나 걱정하고 있다. 그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창투사가 모태펀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언제부터인가 전문위원이 내려오더니 투자심사 보고서가 올라가면 숫자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가 나온다는 거다.
-모태펀드가 그동안 한국 영화산업에 종잣돈 구실을 해왔는데.
=전문위원이 생기기 전에는 모태펀드가 아주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영화의 내용에 대해 얘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 수익률을 가지고 얘기했을 뿐이지. 펀드 수익률은 새로운 출자사업에서 펀드 선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라서 창투사의 생존권 문제라 당연히 창투사가 주체적인 판단으로 영화 투자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 내용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건 모태펀드가 한국영화의 40%에 투자하는 영향력을 발휘해 쥐고 흔든 거고, 사실상 검열을 한 거다. 이런 건 없어져야 한다. 모태펀드가 정부 자금을 한데 모아 관리하는 까닭에 펀드가 효율적인지 아닌지, 수익률이 높은지 낮은지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 이번 문제는 전문위원의 역할과 자본을 통한 검열이라는 의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