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1090호 특집 ‘누가 모태펀드로 정치하는가’를 통해 모태펀드를 둘러싼 의혹의 실체를 밝혔다. 모태펀드가 그간 상업영화계에서 비가시적인 블랙리스트로 기능해오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영화 위주로 투자를 결정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입증해줄 중요한 증거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자본 출처의 핵심인 모태펀드의 현재 운용 방식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또 어떤 방식으로 바꿔갈 것인가. 영화계 플레이어들의 의견을 모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과 공동으로 모태펀드와 관련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어렵사리 좌담회에 참석해준 세명의 참석자를 소개해야겠다. 먼저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이다. <씨네21>의 한국영화 블랙박스 꼭지의 필자이기도 한 최현용 소장은 지난 2년 동안 모태펀드 문제를 추적하고 깊이 연구해왔다. 구본석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산업진흥본부 창작지원팀 팀장도 함께했다. 구 팀장은 영진위의 투자조합 운용 정책을 담당하는 만큼 모태펀드의 출자자 중 하나인 영진위의 입장을 들을 수 있겠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영진위가 자체적으로 주최한 좌담회가 아닌 언론사 주최의 좌담회에 참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지막으로 미인픽쳐스의 공동대표이자 1급 군사기밀에 얽힌 군 내부 비리 사건을 다룬 영화 <일급기밀>(감독 홍기선·배급 리틀빅픽처스)의 안훈찬 프로듀서가 있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임에도 프로듀서로서 모태펀드에 기대하는 바를 말해주기 위해 걸음해줬다. 사실, 모태펀드와 관련해 더 많은 관계자들을 섭외하려 했으나 거절의 연속이었다. 모태펀드의 자회사 격인 창업투자회사의 관계자들은 모태펀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투자를 앞둔 제작사 관계자들도 조심스러워했다. 그때마다 모두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모태펀드가 갖는 힘”이라 입을 모았다. 그만큼 좌담회에 나와 모태펀드의 문제를 짚어주고 새로운 방향에 대해 따끔한 말을 해준 세 참석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세분을 섭외하기까지 굉장히 어려웠다. 이번 좌담회가 영화계 플레이어들에게는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
=최현용_ 영화 제작의 실질적인 돈줄을 모태펀드가 쥐고 있으니 관계자들이 껄끄러워할 수밖에 없다(한해 제작되는 한국영화의 40% 가까이가 한국벤처투자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편집자). 나도 만 2년 넘게 모태펀드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지만 현재의 탄핵 정국 이전까지만 해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안훈찬_ (2005년 결성된) 한국모태펀드 사업이 10년이 넘었다. 그동안은 투자의 공정성, 형평성, 대기업 중심의 영화산업 구조에 대한 감시에 집중돼왔다. 모태펀드를 둘러싼 정치적 개입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물론 제작자들 사이에서 설로는 떠돌았지만 시국과 맞물려 비로소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모태펀드 운용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시점에 온 거다.
=구본석_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발전기금의 투자조합출자사업 예산을 모태펀드에 출자해 자조합을 결성한 게 2011년부터다. 현재 620억원 정도를 출자했고 주로 중저예산 영화나 상업적으로 취약한 영화에 자본 인프라를 조성하는 쪽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영진위가 모태펀드의 출자자다 보니 어느 정도까지 모태펀드 운용에 개입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인 벤처캐피털들이 자율적으로 개별 프로젝트의 운용과 감시를 한다. 영진위가 세부 운용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지금 한창 불거지는 정치적 개입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진위가 영화계 안팎의 의견을 모아 모태펀드쪽에 의견 개진을 해야 했는데 미진했다. 반성하며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다.
최현용_ 시작부터 결론을 말씀하시면 어쩌나. (일동 웃음) 이야기를 발전해가기 위해 영진위가 직접 투자조합 출자를 시작한 시기부터 간략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구본석_ 영진위는 2000년부터 출자사업을 했다. 당시 삼성, 대우 등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에서 빠져나가면서 투자금 마련이 절실해졌고 창투사들도 막 생겨나면서 투자, 제작, 배급이 구분돼가던 시기다. 그래서 2009년까지 영진위가 직접 펀드를 운영했다. 2009년쯤 영진위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서도 펀드를 만들면서 중복 투자나 행정력 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생겼다. 그래서 감사원이 지시해서 전문 투자 운영 기관인 모태펀드(정부쪽 운용 주체 한국벤처투자)로 펀드를 일원화한 것이다. 그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을 영업 비밀이라고 하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로 모태펀드의 운용이 집약된 현재, 투자 심사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모태펀드를 통해 상업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정부의 입김을 불어넣은 게 아니냐는 정황들이 보도됐다(<씨네21> 1090호 특집 기사 참조).
안훈찬_ 펀딩의 주체인 메인 투자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영화의 투자에 난항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프로듀서로서 봐도 모태펀드만 잘 투자된다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고,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성과를 낼 작품들로 보였는데 투자가 안 된다고 하니 안타까웠다. 그런 걸 옆에서 보니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건 모태펀드에서 펀딩을 못 받겠지?’라고 가정해버리게 되는 거다. 보이지 않는 검열 효과다. 블랙리스트처럼 가시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내가 프로듀서한 작품은 그나마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많은 작품들이 기획에서부터 이미 망가져버리는 거다.
최현용_ 영화의 내용, 기획 단계의 검열이 두드러진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다. 정권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는 한 방법으로 모태펀드를 활용했다. 투자 수익률은 중요치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블랙리스트는 명단이라도 있지만 모태펀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공론화돼야 한다.
-모태펀드와 관련해 영화계가 제기해온 문제 중에는 본투자 심의의 투자심사역 구성에 관한 게 있다. 외부 투자심사위원, 외부 전문가 풀이 누군지조차 불분명하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 풀을 포함해 모태펀드가 투자심사에 의견을 제기하나 그것이 의견서 형식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도 지적했다. 모태펀드 심사의 프로세스와 그 맹점은 뭐라고 보나.
최현용_ 한국벤처투자 내부의 상근 전문위원은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역할이 뭔지 공개되지도 않았다. 모태펀드를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영진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중소기업청 모두 이 부분을 알고 있었나? 알았다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 또 몰랐다면 그건 어떻게 할 건가. 외부 전문가 풀은 옥상옥이다. 자조합까지 만들어 자율적으로 심사하게 하고는 모태에서 심사위원을 또 파견한다? 어떤 과정과 기준으로 심사위원들이 선임됐는지, 누가 선임됐는지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신상한 전 전문위원이 임기 만료됐다. 외부 전문가 풀도 계속 운영할 건지는 3월 초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모태펀드 출자자인 문체부, 영진위도 나름 대책을 갖고 발표 준비를 할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한번 이런 식으로 해서 정치적 검열이 가능하다는 성과를 모태펀드가 확인했다는 데 있다. 모태펀드는 법적으로 문제시되지도 않고 있고 성공 사례까지 남겼다. 개입했음을 들켜서 문제인 거지. 국회든 정권 차원이든 모태펀드를 분명히 짚고 가야 한다.
안훈찬_ 자조합이 있는데 외부 심사위원 풀을 둔 것 자체가 펀드에 대한 노골적인 정부 통제다. 정치적 방향을 갖고 만든 거다.
최현용_ 2015년 하반기에 투자조합들이 상업영화 투자를 일시에 중단한 적이 있다. 확인해보니 모태펀드쪽에서 벤처캐피털에 전화를 돌려 주연배우에 대한 러닝개런티 부담을 제작사가 100% 부담하는 쪽으로 돌리라, 그렇게 하지 않을 거면 투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라. 영화계 동반성장협의회에서 합의된 권고안과 충돌한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명의로 문체부에 공식 항의 문서를 보냈다. 문체부가 모태펀드와 비공식적으로 만났다. 모태펀드는 민간조합이 출자를 해서 또 다른 민간조합들을 만드는 구조다. 조합 규약의 의무상 문체부, 영진위 등 모태조합의 조합원은 모태조합에서 취득한 사항을 제3자에게 누설할 수 없다. 모태펀드가 그 점을 악용하고 있는 거다. 모든 걸 영업 비밀이라고 하며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모태가 정치적 행위를 한 걸 정치적으로 면피하는 법 형식적 논리인 셈이다. 외부 전문가 풀도 영업 비밀이라는 거다. 모태펀드와 관련된 투자심사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매년 50여개 되는 벤처캐피털들이 모태펀드의 자조합 결성 공모에 응해 운영권을 가져가려 할 때 벤처캐피털에 대한 모태펀드의 심사가 진행된다. 둘째는 창투사 내부에서 개별 영화의 투자를 심사한다. 이때 벤처캐피털 내부 심사역과 외부의 금융, 재정, 영화 전문가 등의 외부 심사역으로 구성된다. 문제가 되는 게 모태펀드가 추천한 외부 심사위원 풀의 누군가를 의무적으로 여기에 한명씩 넣는다는 거다. 마지막 심사가 정말 문제다. ‘보이지 않는’ 심사라고 하겠다. 개별 투자조합은 자체적으로 ERP(기업 내 생산, 물류, 재무, 회계, 영업 등 경영 활동 프로세서들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해주는 시스템)를 운영하는데 이 ERP가 모태펀드의 투자조합종합정보관리시스템과 연동된다. 사전에 심사를 하겠다는 심사 개시부터 최종적으로 지출 계획, 정산 보고서까지 다 연동된다. 모태펀드가 투자조합 관리라는 명목으로 매 과정 시스템상에서 도장을 찍는다. 모태펀드에 의한 자조합 심사라고 본다. 모태펀드의 도장이 없으면 자조합은 출금조차 할 수 없다. 자조합은 투자심사 때 모태펀드에 ‘이런 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나’라며 사전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어느 단계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사라질지 모른다. 실제 로그 기록이 남지 않더라도 자진 철회 방식을 통해 기록을 없애는 편법도 가능하다. 관리, 감독의 중요한 통제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구본석_ 모태펀드는 투자심사의 결정 권한이 있진 않다. 비토권 혹은 어떤 작품을 투자심사에 올릴지 사전에 보고받게끔 돼 있다. 하지만 영진위가 직접 투자조합을 운용할 당시에도 사실 비토권을 행사한 적은 없다.
안훈찬_ 10년 전쯤 벤처캐피털과 전문투자조합, 영진위도 출자한 투자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업무집행조합원의 대표가 10억원 가까운 공금을 유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투자조합에 대한 정확한 투자 판단, 투자심사, 업무집행조합원을 견제할 수 있는 조합원의 참여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 당시 창투사, 업무집행조합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의 모태펀드도 그런 위험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모태펀드가 정책적, 재정적 관리, 감독을 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 방식이 정치적 개입이라면 선의가 왜곡된다. 영진위가 직접 출자하던 때도 영진위가 이런 역할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모태펀드 정책은 개별 계정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모태펀드의 관리, 감독의 방식, 모태펀드의 내외부 견제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고 있나.
최현용_ 한국벤처투자에는 네개의 견제 시스템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하나는 벤처투자협의회의 감사다. 벤처투자협의회는 창투사들의 협의체다. 창투사는 기본적으로 모태에서 자조합 운영권을 따야와 하는데 그곳에서는 감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문체부나 영진위 등의 정부 출자자들의 운영협의회에서 하는 감사도 있지만 1년에 네번 만나는 걸로는 업무 보고 수준에 그친다. 감사 역할이 주어진 중소기업청은 모태펀드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데 건드릴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감사원 감사가 있는데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감사 결정을 내려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정부가 그걸 하겠나. 현재 모태펀드를 견제할 기구가 없다. 정권 차원에서 이 모든 걸 총괄해서 관리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견제 시스템은 완전히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안훈찬_ 창투사들이 직접적으로 더 힘들 거다. 제작자는 ‘더러워서 내가 모태펀드 말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지’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말이다.
구본석_ 요즘은 벤처캐피털들이 투자해달라고 메인 투자사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벤처캐피털 입장에서는 점점 더 수익내기가 힘든 구조가 됐다. 모태펀드에 정부 자금만 있는 게 아니라 레버리지 효과(차입금 등 타인 자본을 지렛대로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이다.-편집자)를 위해 민간자본도 40, 50% 있다. 이 펀드로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지원하겠다고 하면 조합 결성 자체가 어려워진다. 수익성과 공익성간 모순이다. 그러다 보니 영진위는 상업영화 안에서 필요한 부분은 출자사업 형식으로 진행하고 독립영화쪽은 직접 지원하려 한다. 사정이 이러니 운용사들도 영진위의 영화 계정을 기피하더라. 자유롭게 투자도 못하지 대기업상호출자제한도 걸려 있지. 모태펀드 내 영화 계정의 발언권이 점점 줄고 있다. 또 실질적으로는 영화 계정보다 문화 계정쪽 펀드가 많이 들어오다보니 정책적 일관성도 갖기 어렵다.
최현용_ 나는 좀 다르게 본다. 문체부가 직접 문화산업진흥기금을 통해 출자하는 문화 계정이 1년에 400억, 500억원 정도 되고 영진위 영화 계정이 100억원 정도다. 영화가 제일 수익성을 내기 쉬워 다들 출자하고 싶어 한다. 영진위에서 모태펀드로 넘어가기 전인 2009년 이전에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상업영화에 출자했다. 정부 정책의 목적과 방향이 상업영화에 맞춰져 있었다. 근데 이게 모태펀드로 넘어가면서 중소기업청 산하 조직이 되다 보니 대기업을 지원하면 안 되고 중소기업만 지원하게 했다. 2009년 이후, 영화 계정은 독립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특수 목적 투자로 가야 한다고 정책 목표를 두면서 되레 공익성과 수익성이 충돌하는 구조가 된 셈이다. 문체부와 중소기업청이 따로 놀 수밖에 없잖나. 구조적으로 이렇게 해놓고, 영진위가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을 구분하는 건 문제다. 정부 정책으로 독립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조합을 운용하는 건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직접 지원할 때의 모럴 해저드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모태펀드 정책은 개별 계정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투자조합들이 1년에 1조원 가까운 자본금을 결성하고 있는데 이걸 중소기업청 모태펀드에만 맡겨두는 건 정부의 책임 방기다.
-모태펀드의 평가 기준이 지금으로서는 수익성에 국한돼 있다. 다른 기준들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영진위의 펀드 운용과 투자 개혁 방향과도 맞물리는 것 같다.
구본석_ 영진위는 정책적 목적으로 투자 펀드를 만들고 출자 비율을 올리는 게 현실적으로 보인다. 융자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중소 제작사나 신진 제작사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또 하나는 기획, 개발 투자를 활성화하는 거다.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할 부분이다.
최현용_ 모태펀드로 일관한 투자 시스템을 전문성을 가진 개별 부처로 쪼개 운용해야 한다. 투자 결정, 감사, 자조합 결성 공모 권한, 선정 권한, 감사 권한 등은 해당 부처가 직접 갖고 있어야 한다. 필요할 경우 모태펀드는 중소기업 투자 쿼터로서나 공모 대행에 대한 정책 지원 정도를 하면 된다. 정책 목적과 투자조합의 의도를 맞춰야 한다. 또한 독립영화라고 다 독립영화가 아니잖나. 영진위가 직접 지원할 부분과 출자사업으로 해결할 부분을 세밀히 나눠 고민해야지 독립영화를 통으로 두고 할 수는 없다. 영진위가 권한을 행사하라는 게 아니다. 비전을 보여달라.
안훈찬_ 영화산업의 허리가 약하다. 텐트폴 영화(제작사의 라인업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영화) 중심으로 가고 있잖나. 20억, 30억원대의 영화들의 수익성과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상업영화라도 다 같은 상업영화가 아닌데 그 안에서 마이너한 규모의 영화에 대한 영진위의 출자조합 사업이 가능한가.
구본석_ 중저예산이라고 한 틀로 묶기보다는 예산 구분을 세분화해서 중저예산 영화에 투자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이 필요해 보인다.
최현용_ 문화 계정과 영화 계정만 놓고 보면 공적 자금이 들어간 투자조합과 100% 사모펀드의 관계가 조만간 역전돼 사모펀드가 중심이 될 것 같다. 공공자금이 투입된 투자조합 비중이 점점 줄어들 거다. 정책적 설계가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일관성 있게
-모태펀드 운용 방식과 한국영화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차기 정권에 바라는 점은 뭔가.
구본석_ 영진위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의 성과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영진위 내부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자성한다.
안훈찬_ 정부 차원에서 모태펀드에 방해나 안 했으면 좋겠다. 그냥 내버려두라. 기획, 개발 펀드가 만들어져도 단기적인 수익을 내느냐 여부로만 따지면 답이 없다. 기획, 개발 펀드가 제작사에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향후 영화의 판권 문제나 제작사 지분 확보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인데 그런 허점까지도 보완해가야 한다. 모태펀드의 펀딩을 받지 못하면 제작사는 대출을 해서라도 영화를 만들지만 잘못하면 파산이다. 중저예산 상업영화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이라도 해서 경상비를 받고 다음 작품의 시드를 확보하는 것 외에는 달리 기대할 게 없다. 영화 시장 양극화, 수직계열화, 대기업 독과점 문제만으로도 어려운데 정부의 정치적 개입까지라면 정말 힘들어진다.
최현용_ 해산에 준하는 모태펀드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런 식의 운용이라면 차라리 모태펀드를 해산해야 한다. 모태펀드를 통한 중소기업진흥 신화도 깨져야 한다. 모태펀드를 통한 예산 확대가 해결책이 아니다. 지금은 영화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키운 리스크를 개별 영화가 떠안고 있는 구조다. 이건 영화산업 전체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 아닌가. 그럼 부담도 산업 전체가 나눠져야지. 영진위가 이 부담을 각 기업, 개별 프로젝트에 어떤 식으로 나눌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개별 영화, 중소기업, 대기업이 합종연횡해야 하는 지점이다. 차기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