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문화 정책의 기본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문재인
2017-03-13
글 : 김성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사법이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못 되는 세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청산해야 할 오랜 적폐 중의 적폐.” 지난 2월24일 CGV여의도에서 <재심>(감독 김태윤)을 관람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재심>을 보는 내내 연신 눈물을 삼켜야 했다. 변호사 시절 변호를 맡았지만 유죄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엄궁동 사건을 포함해 인혁당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 사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억울한 피해자들과 함께 관람한 뜻깊은 자리였다. 그는 “훨씬 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밝히지 못하고 있고, 만약 밝힌다고 해도 무너진 세월을 어떻게 보상하나”라며 “고문 경찰관, 부패 검사, 심지어 피고인의 절규를 들어주지 않은 재판부까지 어느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런 세상을 우리가 바꿔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또한 다음 정권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문재인 전 대표는 청산해야 할 적폐는 반드시 청산하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가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임을 강조했다. 아이돌 못지않은 빡빡한 일정 탓에 문재인 전 대표 인터뷰는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사진 촬영 일정이 마땅치 않아 문재인 전 대표가 <재심>을 보러간다는 소식을 입수해 극장에서 사진을 찍었고, 인터뷰는 서면으로 질문지와 답변지를 주고받으며 진행됐다.

-극장을 자주 찾는 걸로 알고 있다.

=원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사회 외에도 자주 찾았는데,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별도로 영화관을 가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2016), 고구려·발해의 현장으로 떠난 도올 김용옥 선생을 그린 <나의 살던 고향은>(2016) 등 여러 영화를 관람했던데. 이 두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시사회에 많이 참석했다.

=원전 재난영화인 <판도라>는 박정우 감독을 비롯한 주요 출연진과 함께 영화의 배경인 부산에서 관람했다. 영화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고 허둥대는 국가의 모습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해 원전 밀집지역 인근 경주 지진을 통해 우리나라가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님을 확인했다. 국가가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달라는 염원은 지금 촛불 민심에도 함께하고 있다. 이제는 판도라가 열리기 전에 판도라 상자 자체를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나의 살던 고향은>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대륙의 역사와 우리 민족혼에 남아 있는 우월한 기상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의 배경인 만주벌판은 고구려와 발해의 숨결, 독립투쟁의 정기가 살아 있는 지역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이런 소중한 역사를 등한시하고,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다. 숨겨진 독립운동에 대한 도올 선생의 관심과 노력에 존경을 나타내면서, 선열들이 꿈꿨던 국가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책무가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최근 인혁당 사건, 엄궁동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피해자들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재심>을 관람하기도 했다.

=<재심> 속 억울한 사건들이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대한민국 헌법이 명백히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이명박 정부를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보수정권 집권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침해당했다. 대표적으로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180개국을 조사해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31위에서 지난해 70위로 끝없이 추락했다. 유엔이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한국에 파견해 실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 대표가 된 직후 ‘표현의 자유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피해신고센터를 개설한 바 있다. 집권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비롯해 언론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종북이라는 색깔론으로 적대시하고,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로 옭아매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했다. 문화예술계를 이념적으로 구분해서 통제한 것이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대한민국 문화계가 황폐화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국민들의 편을 갈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취급하는 행태는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 국민이 정권교체로 엄중하게 심판해야만 한다.

-이번 정권은 유독 문화예술인에 대한 단순한 검열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의 돈줄을 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심각해 보인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가 돈줄을 쥔 채 정권이 불편해하는 상업영화를 걸러냈다는 의혹이 <씨네21>을 통해 제기됐는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문화권력 균형화 방안이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의 출발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문화계 좌파를 청산하겠다며 존경받아온 문화예술계 기관장들을 강제로 해직시켰다. 석연찮은 이유로 각종 기금배정에 특정 문화예술인들을 배제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삼아놓고선 더 노골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 모태펀드 투자 배제, 블랙리스트가 바로 그 실체다. 영화산업에서 자본은 혈관과 같다. 이런 자본을 통제해서 특정 영화의 제작과 상영을 간섭하는 것, 그 자체가 전근대적이고 시장주의에서 벗어나는 독재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국민의 정부(김대중 대통령), 참여정부(노무현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 기조에서 퇴행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새 정권의 문화예술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말씀대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 원칙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이런 원칙을 지켜 우리 영화산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또 한류열풍을 일으켰다. 집권하게 되면 가장 먼저 문화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 더불어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 진흥체계 구축, 고갈 위기에 놓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도 마련하겠다. 시장에서 소외받는 독립·예술영화는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한 저작권, 공정한 제작구조, 공정한 수익분배 구조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독립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사 위기에 이르렀다. 독립영화 혹은 지원이 절실한 콘텐츠(연극, 뮤지컬, 공연 등)를 지원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한국영화는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대기업의 영화산업 독점으로 영화산업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제작투자, 배급, 상영 전반에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고착화됐다. 중소영화 및 저예산영화의 상영 기회 제한과 이로 인한 흥행 부진으로 영화 다양성은 약화됐다. 결국 관객의 문화향유권과 문화접근권마저 침해되고 있다. 나는 한국영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영화 산업의 다양한 주체들이 상생하고 동반 발전하면서, 한국영화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증진되고, 관객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이를 위해 저예산영화 및 다양성영화 지원 확대, 전용상영관 지원 증액 및 지원 방안 다각화, 복합상영관의 저예산·다양성영화의 연간 의무상영일수 지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특히 영화산업에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자 파트너다. 최근 사드 문제가 불거지면서 중국과 비즈니스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사드 문제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사드 배치 문제로 가장 먼저 피해를 받고, 산업적 피해 규모도 가장 큰 것이 문화산업이다. 나는 지난 1월12일 한·중 한류콘텐츠산업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실제 대중국 문화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을 경청했다. 실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치, 군사적 문제로 민간 영역인 문화 분야가 위축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대국답지 못한 일이다.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의 안보라는 측면과 대한민국 국익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국내적으로 필요했고, 대외적으로는 사드 배치를 걱정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좀더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기 정부에서 우리의 주권사항이라는 점에 입각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득실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미국과도 협의해 최종 결정해야 하고, 필요하면 중국에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영화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문화예술의 바탕은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곧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과 그 궤를 같이하는데, 이런 부분이 “사람이 먼저”라는 나의 생각과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냄으로써 영화인들의 성원에 보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나.

=송강호씨와 문소리씨를 좋아한다. 두분 모두 연기도 훌륭하고, 사회에 대한 정의감도 가지고 있어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배우이다. 기회가 되면 소주도 한잔하고 싶고 식사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럴 기회가 없어도 팬심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내 인생의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 감독 권철휘, 1967

<광해, 왕이 된 남자> 감독 추창민, 2012

<변호인> 감독 양우석, 2013

“고등학생 때 본 <월하의 공동묘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평생 가장 무서웠던 영화다. (웃음) 지금 다시 봐도 무서울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영화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변호인>이다. 특히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엔딩 장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많이 생각나 한참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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