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중앙과 지방, 고소득과 저소득, 세대간… 문화 양극화 해소 방안을 찾는다 - 충청남도지사 안희정
2017-03-13
글 : 김성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선의가 그런 맥락에서 나온 뜻이 아닌데….” 최근 안희정 충청남도지사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얘깃거리가 ‘선의’이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렇게 시작됐다. 대선 대장정에서 암초를 만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됐지만, 약속 장소에 들어온 안희정 도지사의 발걸음은 자신감이 넘치고 씩씩했다(지난 3월2일 JTBC <썰전>에 출연한 그는 “처음부터 ‘너는 악이야’라고 얘기하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겠나. 자기 주장을 좀 내려놓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라며, 이후 자신의 해명에도 계속된 비판 여론에 결국 사과까지 했던 일에 대해서는 “탄핵 정국의 핵심 사건까지도 선의로 봐야 한다는 것처럼 돼버려서 ‘선의’의 예를 잘못 들었던 것에 대해 사과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편집자). 그리고 직접 만난 안희정 도지사는 시네필이라 해도 될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1995년 <씨네21> 창간 때부터 정기구독자였고,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씨네21>을 통해 풀었다”고 말할 만큼 <씨네21>의 오랜 독자였다. 그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천명하면서 “공정한 심사 제도를 보장해 문화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차기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평소 극장에 얼마나 자주 가나.

=도지사가 되기 전에는 가족들과 한달에 한두번은 꼭 갔다. 아이들이나 아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 위주로 감상한다.

-대학 시절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나.

=그때는 돈이 없었다. 최초로 극장에 간 기억은 뚜렷하다.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 있는 성도극장에서 아프리카 밀림 세계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웃음)

-학창 시절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몰래 본 경험은 없나. (웃음)

=워낙 작은 시골 마을이라 동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다 알고, 선생님도 극장 입구에 서 있어 그렇게까지 보려고 한 적은 없다. <나라야마 부시코>(1982, 박스‘내 인생의 영화’ 참조) 이후<터미네이터>(1984),<어비스>(1989)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그 뒤 한동안 특수효과가 탁월한 SFX영화를 좋아하다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시네마 천국>(1988), <포레스트 검프>(1994) 등을 즐겨봤다. 특히 <포레스트 검프>는 세번이나 봤다. 영화에 등장하는 히피, 반전운동이 내 성장기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이 밖에도 <어 퓨 굿 맨>(1992), <미시시피 버닝>(1988)도 좋아한다.

-최근 한재림 감독의 <더 킹> 시사회에서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하기도 했다. 영화는 어땠나.

=영화에서 보이는 비열한 권력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마주한 현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치권력, 검찰권력, 돈의 권력 등 모든 권력층에 대한 우리의 불신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극중 태수(조인성)가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외쳤지만 나는 정치를 잘해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일자리 창출, 복지 문제, 각종 개혁 과제 등 우리 삶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정치를 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정치와 세상을 바꾼 경험이 있다.

-영화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뉴스 클립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스크린 속의 노무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태수가 과거를 반추하면서 한강식(정우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소신대로 나아갔더라면, 하며 자신의 과거 선택을 후회하는 장면이 있다. 선택의 문제들, 인연의 중요성에 대해 나 또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좋은 인연을 맺어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위해 평생을 싸웠던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현실엔 한강식 검사 같은 사람이 분명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공적 지위가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동시에 태수에게도 당부한다.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잡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태수가 말하지 않나. 권력을 자신의 분노와 미움, 개인 이익에 동원하면 안 된다. 한풀이의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권력이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우리의 평범한 상식과 정의감에 의해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표현하는 세상이 됐다. 어떤 입장이라기보다는 표현의 자유는 공기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게 침해당하거나 제한되면 그 사회의 아이디어와 문화, 예술 등 모든 창작물이 질식사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 21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정부는 정치적 이념이나 그 어떤 이유로도 문화예술인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번 정권은 유독 문화예술인에 대한 검열 정책이 심했던 것 같다. 단순한 검열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의 돈줄을 끊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심각해 보이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을 동원해 문화예술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헌법적이고 반시대적 발상이다. 다시금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천명하고 공정한 심사 제도를 보장해 문화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차기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서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국민의 정부(김대중 대통령), 참여정부(노무현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의 기조에서 퇴행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보수 정부 9년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블랙리스트를 통해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문화예술도 어떤 재앙이 벌어질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관치 문화예술 정책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정부가 시민자율의 영역을 침해하거나 시장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깨뜨리지 않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문화예술 영역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같이 예술인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창의성과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또한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가 돈줄을 쥔 채 정권이 불편해하는 상업영화를 걸러냈다는 의혹이 <씨네21>을 통해 최근 제기됐는데.

=민주주의에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표현의 자유는 문화예술의 가장 핵심이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을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하는 정치 세력은 반드시 국민들이 이번 기회에 정치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은 그 어떤 이유로도 침해당할 수 없다. 다음 정부는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블랙리스트 같은 형태로 탄압시킨 모든 적폐들을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중소기업청 산하의 한국벤처투자와 그들이 운용하고 있는 모태펀드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전반적으로 문화예술 정책은 창작 지원, 유통과 전시 인프라에 대한 지원, 소비 촉진 지원 등 세 파트로 나뉜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작의 자유, 창작의 재정, 창작을 위한 물리적 지원을 어떻게 하면 잘 조성해서 이 영양분 위에 예술이 피어나게 할 것인가다. 또 다양하고 건전한 펀드들이 이러한 예술적 활동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것이 상업적으로 성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자로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다.

=말씀드렸듯이 문화예술은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살찌우는 근간이다.기술보다 높은 걸 예술이라고 하면서, 예술인에 대한 대접과 처우는 뒤떨어진다. 하루빨리 문화예술인이 자부심을 회복하고 창작 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보편적 문화복지와 지역문화 격차 해소에 힘써야 한다. 문화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중앙과 지방, 고소득과 저소득, 세대간 문화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독립영화를 포함한 작은 영화들이 영화진흥위원회를 포함하여 정부로부터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사 위기에 이르렀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작은 영화, 연극, 뮤지컬, 공연 등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나.

=문화예술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 및 관계자들과 적극 협의해 추진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문화예술계, 특히 영화산업에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자 파트너다. 최근 사드 문제가 불거지면서 중국과 비즈니스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드에 반대한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면 그렇게 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이란 조건하에서 이뤄진 정부간 합의를 뒤집는 일은 간단치 않다. 사실상 북핵 해결이 사드 문제 해결의 근본적 대책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미, 미-중 대화를 중재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안보·외교·통일 분야의 실정(失政)이 문화와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5천만명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민감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신중히 준비해왔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몇몇 대중매체에서 안희정 도지사를 두고 “노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던데 대화를 나눠보니 노잼은 아닌 것 같다. (웃음)

=노잼에서 벗어난 지 꽤 됐는데…. 재미있는 사람이다. 노잼이 아니라니 감사하다. (웃음)

내 인생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1982

“언제 봤는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지만 종로서적 근처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봤다. 보는 내내 울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머니를 까마귀가 우는 죽음의 계곡에 내려놓고 혼비백산 도망가는 아들을 카메라가 어머니의 시각에서 담아내는 영화의 후반부가 정말 압도적이었다. 영화를 주제, 대사, 스토리 중심으로 보았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연기, 음악, 조명, 카메라앵글 등 다른 파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영화가 더 재미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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