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모태펀드가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로 올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70회 ‘두개의 광장, 하나의 진실’이 방영된 직후였다. 모태펀드 화이트리스트(투자 지원) 의혹이 제기된 영화사 사무실이 여러 우익단체들과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는 내용의 방송이었다. 그래서 모태펀드가 아직 낯선 사람들을 위해 가상의 문답 형식의 가이드를 준비했다.
-모태펀드는 무엇인가.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Fund of Funds), 펀드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2005년에 처음 만들어진 ‘모태펀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개별펀드(투자조합)에 출자하는 형식으로 운영되며 법률에 근거해 정부기금과 예산으로 조성된다. 모태펀드는 현재 총 10개의 계정으로 운영되는데, 계정별로 출자하는 정부부처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고용노동부, 특허청,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다.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는 모태펀드, 그렇다면 기업 투자는 누가 하나.
=모태펀드가 펀드의 어머니라면 펀드의 아들인 자펀드가 기업에 직접 투자한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정부쪽 주체는 중소기업청 산하 공공기관인 (주)한국벤처투자(대표 조강래)다. 한국벤처투자는 정부가 출자한 돈을 민간투자 재원과 합쳐 펀드 운용사가 투자하는 중소·벤처기업이나 개별 사업에 투입한다. 영화 투자의 경우, 문체부나 영진위가 문화예술진흥기금과 영화발전기금의 투자조합출자사업 예산을 모태펀드에 출자하면 한국벤처투자가 이 기금을 민간 투자금(창투사,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투자, 개인투자자)과 함께 결성해 영화 제작사나 작품에 투자하는 식이다.
-이해가 안 된다. 정부가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왜 굳이 모태펀드-자펀드로 이원화하여 운영하나.
=모태펀드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개별 기업 육성’이다. 그러나 모태펀드가 추구하는 더 큰 가치는 안정적인 ‘벤처생태계’ 조성이다. 모태펀드는 단기 투자가 지배적인 민간 금융 시장에서 신뢰성 높은 공공자금을 유입시켜 일정 규모의 금액이 지속적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를 예로 들면 투자 위험도를 줄여 제작에 활기를 불어넣고, 영화가 흥행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던 덕분에 모태펀드는 오랫동안 영화계의 종잣돈 구실을 해왔다. 특히 충무로 보릿고개였던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영화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태펀드 덕분이다. 즉 금융 시장에 안정적인 투자재원 공급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자금이 쉼 없이 개별 기업에 투자될 수 있게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형성된 모태펀드의 총규모는 2016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2조4212억원이며 민간자금이 결합된 자펀드는 14조5672억원에 이른다.
-모태펀드가 이토록 중요한 정책 자금이라는 걸 이젠 알았다. 그렇다면 현재 모태펀드에 제기되는 가장 큰 의혹은 무엇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청구서에서 드러났듯이 한국벤처투자 임원 교체를 통해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걸러냈다는 의혹이다. 특히 상근 전문위원은 박근혜 정권 이전에는 없던 자리다.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 군비리 사건을 다룬 <일급기밀>,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인 <택시운전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재심>, 안기부의 기획수사에 맞서는 한 가장을 주인공으로 한 <보통사람> 등 여러 영화가 모태펀드 투자를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모태펀드의 사전검열 의혹이 제기된 영화가 있다면,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사선에서> 같은 정권이 선호한 영화도 있었다. 편당 평균적으로 5억~10억원의 모태펀드 투자가 이뤄진 보통 영화와 달리 정권이 선호한 영화는 2개 이상의 자펀드로부터 30억~40억원 이상을 투자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씨네21>과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이 취재를 시작하자 (주)한국벤처투자는 전문위원 직책을 없앴다. 한편 창투사 유니온투자파트너스(대표 이재우)는 영화 <연평해전>(3억원), <인천상륙작전>(25억원), <사선에서>(15억원)에 모두 투자한 회사로 확인됐다.
-창투사가 모태펀드를 운영하는 (주)한국벤처투자의 눈치를 봤다는 말인가.
=자세한 조사는 특별감사나 검찰에서 이뤄져야겠지만 (주)한국벤처투자와 창투사는 엄격한 갑을관계다. 창투사는 계속 투자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투자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수료로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운용 펀드 규모가 1천억원이 넘는다고 해도 관리 수수료 1~5%를 일정기간 동안만 받는 까닭에 수익금이 그리 많지 않은 영세한 사업이다. 매년 (주)한국벤처투자는 수시, 정시 출자사업을 선정한다. 출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1차 서류심사와 2차 프레젠테이션(PT)을 통과해야 한다. 2차 PT에서 관건은 과거 운용조합의 수익률인데, 수익률 이외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창투사가 출자사업을 따내려면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주)한국벤처투자에 잘 보여야 한다.
-모태펀드를 견제할 수 있는 내·외부 시스템은 없나.
(주)한국벤처투자에는 네개의 견제 시스템이 있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하나는 벤처투자협의회의 감사다. 벤처투자협의회는 창투사들의 협의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창투사는 (주)한국벤처투자에서 자조합 운영권을 따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실시하는 감사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문체부나 영진위 등 정부 출자자들의 운영협의회가 진행하는 감사도 있으나 실제로는 1년에 4번가량 만나 업무를 보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감사 역할이 주어진 (주)한국벤처투자의 상위 기관인 중소기업청은 모태펀드가 자신의 존재 이유인 까닭에 엄격하게 건드릴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감사원의 감사가 있다.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감사 결정을 내려서 움직여야 하는데, 박근혜 정권이 모태펀드에 개입한 이상 감사원의 감사가 이루어졌을 리가 만무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감사원의 특별 감사가 실시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지난 4월 4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여성영화인모임,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등 영화계의 주요 단체 5곳은 ‘영화산업 블랙리스트 시행기관 모태펀드(한국벤처투자)의 범죄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며 (주)한국벤처투자의 특별감사 실시를 요구했다.
-역삼동 부림주택은 왜 모태펀드의 연관 검색어로 뜨는가.
=역삼동 부림주택 지하 1층에 <사선에서>를 제작한 영화사 디씨드(대표 최명숙)의 프로필 오디션 사무실이 있다. <사선에서>는 순제작비 45억원 중 43억원이 모태펀드를 포함한 정부 지원금으로 이뤄져 모태펀드 화이트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자세한 투자 내용은 아래쪽 박스 기사 참조). 이 영화의 스탭 중 한명은 “촬영 전 이곳에서 스탭 계약서를 썼다. 디씨드 명의로 계약했다가 세금계산서를 끊을 때 유한회사 사선에서문화산업전문회사로 수정해 발급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탭은 “최근까지 이 사무실에서 회의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8일,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과 함께 이곳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 영화사만 아니라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꼽히는 <노컷일베>의 발행사인 ‘에픽미디어’, 박근혜 탄핵 반대 운동을 위한 범우파 단체 연합인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운동에 적극적인 ‘기회평등 학부모연대’ 등 예닐곱 단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건물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2011년 6월 이후 들불처럼 번진 ‘통영의 딸 구하기 운동’과도 연결되어 있다. 역삼동 부림주택 지하1층 6호에는 글로벌디펜스워치(대표 성상훈, 2014.05.21.)도 등록되어 있다. 사업 목적을 인터넷정보서비스업(국방외교안보 홈페이지 운영) 등으로 신고한 이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글로벌디펜스뉴스>(발행인 박은섭)로 나타난다. <글로벌디펜스뉴스>는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노컷일베>와 2016년 11월 ‘콘텐츠 공유 협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글로벌디펜스뉴스>는 모 군사 전문지와도 그해 8월12일 ‘콘텐츠 상호교류 MOU’를 체결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 게재한다. 모 군사 전문지는 (재)한국군사문제연구원(이하 군문연)이 발간하는 월간지로, 1994년 1월 1일 설립된 군문연은 국방부 소관 공익법인이다. 국방부 산하에는 100개의 비영리법인이 있는데 공익법인은 5개밖에 되지 않는다. 공익법인은 민법법인과 달리 법령에서 정한 승인허가, 보고, 감사 등을 엄격히 적용받는다.
-이들 모두 한 사무실에 모여 있다는 사실은 단지 우연일까? 통영의 딸 구하기를 통해 이들이 원했던 건 무엇일까? 앞으로 모태펀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이들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다만 청와대가 ‘친노(親盧) 계열 대기업(CJ·롯데)이 문화·영화 분야 모태펀드의 운용을 독식’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주)한국벤처투자의 임원을 교체해 대책을 강구’한 만큼 영화인 대부분 (주)한국벤처투자에 해체에 준하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이런 식의 운용이라면 차라리 모태펀드를 해산해야 한다. 모태펀드를 통한 중소기업진흥 신화도 깨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 제작자는 “모태펀드 계정 관리 주체를 (주)한국벤처투자에서 각 행정부처로의 이전을 요구한다”라며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곳에서 책임성 있는 정책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해체든 변화든 상근 전문위원과 외부 전문가 풀(자세한 내용은 46쪽 참고)이 2015년 신설된 뒤 2017년 2월 폐지되기까지 있었던 모든 과정이 밝혀지는 게 우선이다.
<사선에서> 제작비 45억원의 출처는?
순제작비 45억원 중 35억원을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받았다. 미시간벤처캐피탈(미시간글로벌콘텐츠투자조합5호) 10억원, 유니온투자파트너스(유니온시네마투자조합) 15억원, 이수창업투자(ISU-위풍당당콘텐츠코리아펀드) 10억원이 그것이다. 2016년 영진위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작으로도 선정되어 8억원을 받았다. 대기업이나 개별 창투사 없이 45억원 중 43억원이 모태펀드를 포함한 정부지원금으로 이뤄진 건 충무로에서도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메인 투자사가 없는 까닭에 예산 운용이 엄격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배급 대행을 롯데가 맡기로 했고, 개봉은 미정이다.(*신상한 전 (주)한국벤처투자 전문위원이 한국벤처투자에 들어가기 전 기획·개발했던 프로젝트로, 당시 제목은 <통영의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