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알고 보면 좋을 <옥자>에 관한 다섯 가지 키워드
2017-06-21
글 : 이주현

# 슈퍼돼지 옥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곧 캐릭터 옥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곤 했다. 알려졌다시피 봉준호 감독은 작명 과정에서 옥자에게 “촌스러운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희봉(변희봉)이 손녀의 이름을 미자(안서현)라 지은 마당에 한갓 가축인 돼지의 이름을 세련되게 지을 리는 만무했을 테니까.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동물의 이름으로 촌스러운 이름이 쓰이는 불협의 화음을 봉준호 감독은 내심 즐겼을 것이다. 옥자의 생김은 코끼리와 하마와 돼지를 두루 닮았다. 얼굴은 “순하고 억울하게 생긴” 수생동물 매너티를 참고해 디자인했다. 봉준호 감독은 “돼지만이 가진 아름다움과 자존심이 있는데 돼지만큼 식품으로만 인식되는 동물이 없다. 사람들은 돼지를 항정살, 목살, 삼겹살로만 생각한다”고 돼지의 억울함을 대신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는 둔한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돼지-옥자에게 놀라운 운동신경과 빠른 판단력을 주었다. 절벽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미자를 옥자가 구하는 장면에서 또 하나 강조되는 것은 옥자의 눈이다. 옥자의 눈은 사람의 눈을 빼닮았다. 옥자 역시 사고하고 감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옥자의 눈을 종종 클로즈업한다. 후반부 실험실에서 옥자가 겪은 일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도 화면에 가득 찬 옥자의 핏발 선 두눈이다. 옥자에겐 과묵하고 듬직한데 귀여운 사람의 성격도 부여되는데, 옥자의 묘사에 있어서 일관된 지점은 옥자를 결코 의도적으로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동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옥자와 미자가 함께하는 일상의 순간에서 옥자는 인간을 위한 동물로 대상화되지 않는다. 옥자를 상품으로 대하는 사람들과 달리 미자에게 옥자는 가족이고 사랑이다.

# 극장에서 볼 수 있나?

넷플릭스는 영화시장이 인정해야 할 새로운 플랫폼인가, 영화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플랫폼인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부터 촉발된 논란은 6월 29일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옥자>의 동시 개봉 계획이 잡혀있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애초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옥자>를 투자·배급·제작한다고 했을 때 <옥자>를 극장에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옥자>는 국내 100여개 스크린에 걸린다. 하지만 국내 스크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3대 멀티플렉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선 <옥자>를 볼 수 없다. 해당 3사는, 영화가 극장에서 먼저 공개되지 않고 2차 부가판권 플랫폼인 IPTV 및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동시’ 상영되는 상황을 영화산업의 시장질서에 반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6월 14일의 기자회견에서 이런 논란에는 자신의 “영화적 욕심도 한몫했다”고 언급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메인 플랫폼은 넷플릭스일 수밖에 없지만 <옥자>의 경우 4K 디지털영화라는 점, 2.35: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라는 점에서 영화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니 영화적 포맷을 가져간 <옥자>를 봉준호 감독으로서도 극장에 걸고 싶었을 것이다(참고로 <옥자>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나라는 한국, 미국, 영국 세곳이다). 분명한 것은 넷플릭스나 아마존의 등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산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물론 아마존의 지원을 받아 <원더스트럭>을 만든 토드 헤인즈 감독도 창작자에게 이러한 신규 플랫폼은 창작의 자유와 예산의 운용 면에서 매력이 크다고 올해 칸영화제에서 언급했다. 앞으로 영화 제작, 배급, 관람 방식에 있어서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고, <옥자>는 그 변화를 이끄는 작품이 되었다.

<괴물>

# 가장 유사한 전작은?

옥자를 구하기 위한 미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딸려 올라온다. 미자는 <플란다스의 개>(2000)의 현남(배두나)처럼 달리고 또 달리고, 동물해방전선 ALF(Animal Liberation Front)의 계획이 번번이 꼬이고 미끄러지는 과정에선 결정적 순간에 ‘삑사리’가 났던 <살인의 추억>의 수사 장면들이 떠오르며,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는 미자의 저돌적인 모성 본능은 <마더>(2009)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옥자>를 보고 즉각 연상되는 작품은 <괴물>(2006)이다. <옥자>는 <괴물>의 추격 플롯과 캐릭터 구성, 난장의 미학을 두루 닮았다.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옥자>에서 미자는 사랑하는 가족 옥자를 구하기 위해 외롭고 처절한 싸움을 한다. 미자는 그 싸움을 혼자서 해내지만, ALF 멤버들이 <괴물>의 삼촌 남일(박해일)과 고모 남주(배두나) 같은 조력자 역할을 한다. 또한 미자의 모성애는 <괴물>의 어린 현서(고아성)가 보여준 모성애를 연상시키며, 괴물을 잉태한 사회나 슈퍼돼지 옥자를 낳은 기업 모두 염치없는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더불어 두 영화 모두 변희봉이라는 배우를 공유한다. 특정 장면에서 기시감이 들 때도 있다.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벌어지는 추격전과 괴물의 등장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는 한강변 풍경은 자연스레 연결된다. 이처럼 지극히 익숙한 장소(풍경)를 낯설게 변형해버리는 재주가 <옥자>에서 여러 번 시연된다. 그중에서도 강원도 산골 미자네 집에 미란도 기업의 얼굴로 활약하는 조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홀)가 나타나 하이톤으로 영어를 쏟아내는 장면은 지하상가에 슈퍼돼지가 등장할 때 만큼이나 기이했다.

<E.T.>
<이웃집 토토로>

# 스티븐 스필버그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받았다?

<옥자>가 처음 공개된 뒤 비교의 대상으로 언급된 이름들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5월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 영화적 멘토는 <하녀>(1960)의 김기영과 <나라야마 부시코>(1982)의 이마무라 쇼헤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 <슈가랜드 특급>(1974)을 비롯해 1970년대 미국 장르영화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결이 다르긴 하나 힘없는 소년/소녀가 또 다른 존재의 보호자가 되어 어른들의 세계와 대립하는 구조를 취한다는 점에서 스필버그의 <E.T.>(1982)와 <옥자>는 같은 선상에서 연결지을 수 있다. 하지만 <옥자>는 소녀와 동물의 교감이나 모험담 그 자체가 영화적 쾌감으로 제시되는 영화가 아니다. 캐릭터나 장면 하나 하나가 보다 사회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채색되어 있다. 한편 영화 초반 강원도 산골 장면에서 그려지는 미자와 옥자의 일상이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동시대 작가 중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옥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생명과 동물, 자본주의의 영역에 대해 그리고 싶었던 작품이다”라는 대답을 들려준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건 <미래소년 코난>(1978)으로 보인다. “코난의 여자아이 버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것처럼, 미자는 강원도 가파른 산길은 물론이고 서울의 아스팔트 길 위에서도 무섭게 내달린다. 속도도 속도지만 소녀의 지칠 줄 모르는 ‘힘’이 강조된 질주 신은 확실히 코난을 연상시킨다.

# 글로벌 스탭들의 활약은?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스탭들도 글로벌하게 섞여 있다. <마더>와 <설국열차>(2013)를 홍경표 촬영감독과 작업한 봉준호 감독은 이번에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이레셔널 맨>(2015) 등 우디 앨런의 최근작들, 제임스 그레이의 <이민자>(2013),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2012), 데이비드 핀처의 <쎄븐>(1995), 장 피에르 주네, 마르크 카로의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등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밀도 높은 이미지를 창조해온 다리우스 콘지는 <옥자>에서도 공간과 인물과 분위기에 가장 적합한 촬영을 선보인다. 강원도에서 출발해 서울과 뉴욕과 뉴저지 실험실과 도살장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을 하나로 엮어내는 촬영의 흐름이 단연 좋다.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린 존 론슨은 마이클 파스빈더 주연의 <프랭크>(2014) 각본가로 유명하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캐릭터들의 심리를 예민하게 포착해 블랙코미디를 빚어내는 솜씨는 <옥자>에서도 유효하다. <옥자>에서 또한 중요한 과정은 슈퍼돼지 옥자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 역할을 맡은 이가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실재처럼 구현했던 에릭 얀 드 보어다. <옥자>의 시각효과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에릭 얀 드 보어는 명성에 걸맞게 가상의 옥자를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캐릭터로 빚어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영화가 그러한 것처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섞어 흥미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10대 때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정재일은 <해무>(2014), <바람>(2009)의 음악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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