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①] <버드샷> <블랙 할로우 케이지> 外
2017-07-03
글 : 김현수

<버드샷> Birdshot

미카일 레드 / 필리핀, 카타르 / 2016년 / 116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삼림보호구역 인근에서 아빠(쿠 아퀴노)와 수렵 생활을 하는 10대 딸 마야(메리 조이 아포스톨)는 총을 다룰 때마다 괴로워한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짐승들을 견딜 수 없기 때문. 그러던 어느 날 마야가 큰 결심을 하고 숲으로 들어가 독수리를 한 마리 사냥하는데, 하필 정부에서 관리하는 멸종 위기의 필리핀 독수리였던 것. 밀렵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아빠는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한편, 밀렵 사건 담당 경찰 도밍고(아놀드 라예즈)는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버스 실종 사건도 추적하던 중, 상부의 지시로 저지당하고는 분개한다. 그에게는 독수리보다 버스와 함께 사라져 생사를 알 수 없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 도밍고의 직속 상관인 멘도자(존 아르실라)는 더이상 그가 버스 사건을 파헤치길 바라지 않는다. 단순한 독수리 밀렵 사건과 인근에서 벌어진 버스 실종 사건, 그리고 아빠 없이 홀로 숲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녀의 운명이 마치 한 타래처럼 이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화는 거대한 자연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현장 속으로 관객을 잡아 이끈다. 냉혹한 자연과 범죄의 폭력 속에 홀로 남겨진 어린 소녀의 고독한 생존기를 다룬 <버드샷>은 거대한 범죄 세계의 지옥도를 목가적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영화다. 특히 소녀의 심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필리핀의 자연경관의 스산한 풍경을 담아낸 촬영이 주목할 만하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 Black Hollow Cage

사드락 곤살레스 페레욘 / 스페인 / 2017년 / 105분 / 부천 초이스: 장편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놓칠 수 없고 또 믿을 수 없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는 SF의 난해한 설정과 공포영화 특유의 미스터리 요소가 뒤죽박죽 섞여 결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만드는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영화는 개가 인간과 말을 섞고 인간이 로봇 팔을 인식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13살 소녀 앨리스(로웨나 맥노널)는 어려서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어머니를 잃고 자신의 한쪽 팔도 잃은 상태다. 그녀는 키우는 개 비아트리스와 통역기를 통해 말을 주고받는데 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아빠를 극도로 싫어하며 비아트리스를 엄마라고 착각하며 산다. 아빠가 앨리스에게 인조 로봇 팔을 선물해준 날, 그녀는 집 근처의 숲에서 검은 큐브 형태의 괴상한 물체를 발견하는데 큐브 속에는 이상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쪽지가 들어 있다. 그로부터 앨리스 주변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한적한 시골 집에 느닷없이 정체 모를 어린 남매가 린치를 당한 채 들이닥쳐 아빠를 난감하게 만든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의 앨리스와 그녀를 돌보는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위협하는 온갖 판타지 요소가 영화에 총동원된다. 단편을 주로 만들어왔던 스페인 출신의 사드락 곤살레스 페레욘 감독의 연출 데뷔작으로 스페인영화의 전통적인 소재인 가족드라마와 판타지 장르를 SF 요소로 봉합한 영화다.

<끊지마> Don't Hang Up

알렉시스 바이스브레트, 데이미언 메이스 / 미국 / 2016년 / 83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고등학생 샘(그레그 설킨)과 브래디(그렛 클레이튼), 모슬리(잭 브렛 앤더슨)는 무작위로 장난 전화를 걸어 상대방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다음, 인터넷에 공개하는 한심한 짓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이들은 엉뚱한 피자 주문을 시키는 정도를 넘어 가상의 폭력사건을 연출해 사람들을 위협하는 등 장난 수위가 점점 심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샘과 브래디가 자신들에게 걸려온 장난 전화를 무심코 끊어버린다. 그때부터 집 안에 갇혀버린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하던 장난 전화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협박을 당한다. 철없는 10대들의 장난 전화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끊지마>는 밀폐된 공간, 보이지 않는 위협, 아둔한 캐릭터의 말로 등 장르영화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규칙을 차근차근 이행하면서 흘러간다. SNS의 사회적 폐해와 여름 공포영화의 공식을 접목했지만 새로운 시도보다는 전통적인 장르 규칙에 더 치중했다.

<킬링 그라운드> Killing Ground

데이미언 파워 / 호주 / 2017년 / 89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의사인 이안(이안 메도)과 출판사 직원 샘(해리엇 다이어)은 결혼을 앞두고 캠핑 여행을 떠난다. 인적이 드물고 입구조차 찾기 어려운 외딴 호숫가를 발견한 이들은 먼저 도착해 자리잡고 있던 부부와 딸 엠(티아니 커플랜드)을 보고는 이내 안심한다. 그런데 인근 지역에 사는 남자들이 이들 앞에 나타나면서 묘하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이안과 샘이 하이킹을 나서기 위해 숲으로 올라가던 날, 두 사람은 길에 쓰러져 혼절한 어린아이를 발견하고는 옆 텐트 가족의 아이임을 알아차린다. 이때부터 두사람을 비롯해 먼저 캠핑 온 가족 모두 알 수 없는 잔혹한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 외딴 여행지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킬링 그라운드>는 폭력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무자비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의 쾌감을 선사한다. <어둠의 표적>(1971), <서바이벌 게임>(1972) 등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데이미언 파워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1980, 90년대 B급 호러영화의 향기도 풍기는 흥미진진한 영화.

<앳 스테이크> At Stake

크리스토 다마르 알람 / 인도네시아 / 2017년 / 106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이브라(아디파티 돌킨)와 엘잔(제프리 니콜), 아마르(알리안도 시아리프)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이로 친형제나 다름없는 우애를 나누며 사는 20대 청년들이다. 이브라의 동생이자 가장 어린 이찰(길리오 파렝쿠안)까지 합세해 4인조가 되어 몰려다니는 골목대장들에게는 세상 어떤 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 다만, 이브라는 자신들을 너무 엄격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내내 불만이다. 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가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자, 이브라는 친구들과 터무니없이 비싼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털 무시무시한 계획을 꾸미게 된다. 인도네시아판 <써니> 혹은 <파수꾼>의 정서도 묘하게 겹치는 <앳 스테이크>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잘못된 선택이 불러일으키는 청춘의 파장을 지독하리만치 끝까지 보여주는 성장영화다.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살아가는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며, 이들이 꿈꾸는 자본주의의 미래는 비극적이다. 이들이 결국 은행 강도가 되는 과정, 그 안에서 돈을 위해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모습이 쓸쓸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관종> Like Me

로버트 모클러 / 미국 / 2017년 / 84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SNS의 사회적 폐해를 다룬 영화 중 어쩌면 가장 엽기적인 영화. <관종>이란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영화의 소재 자체다. 딱히 직업이 없이 하루 종일 인터넷만 붙들고 사는 키야(애디슨 팀린)는 ‘관심병’을 앓고 있는 SNS 중독자다. 그녀는 어느 날, 가짜로 편의점을 터는 시늉을 해서 점원을 울려버리는 장난을 치는데 그것을 촬영해 올린 영상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일약 스타가 되고 그녀는 개의치 않고 점점 엽기적인 사건을 꾸며 나간다. <관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관심종자’라는 단어를 가장 영화적인 표현으로 소개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종의 바이럴 미디어의 선봉장이 되어가는 키야를 연기하는 애디슨 팀린의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아프리카TV에서 흔히 보는 BJ들의 온갖 기행을 모두 모은 듯한 상황을 영화 내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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