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④] <려행> <68킬> 外
2017-07-03
글 : 김성훈

<려행> Ryeohaeng

임흥순 / 한국 / 2016년 / 86분 /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경쟁

4·3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제주도 할머니(<비념>(2012)), 40여년 전 구로공단에서 청춘을 바쳐야 했던 여공들(<위로공단>(2014)) 등 한국 현대사에서 희생된 여성들은 임흥순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화두다. 그의 신작 <려행>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온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낸 작품이다. 이윤서, 강유진, 양수혜, 김미경, 한영란, 김광옥, 김경주 등 탈북 여성들은 탈북 시기도, 탈북 이유도,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고,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마음은 같다. 특히 초저녁에 전기가 끊겨 마을이 어두워지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앙코르를 외치던 일화는 애잔하다. 현실과 판타지, 인터뷰와 극을 오가며 담아낸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68킬> 68 Kill

트렌트 하가 / 미국 / 2017년 / 93분 / 부천 초이스: 장편

로이드 카우프먼이 이끈 트로마는 엽기영화들을 주로 제작했던 미국의 독립 스튜디오다. 내장이 터져서 가짜 피가 철철 넘치고, 머리가 터져서 뇌가 드러나며, 포르노처럼 연출된 섹스 장면은 ‘오버’하는 신음 때문에 낄낄거리게 만들었다. 트렌트 하가는 로이드 카우프먼의 1999년작인 <엽기 영화 공장>에서 배우로 출연했다. 이후, 연출 데뷔작 <촙>(2010)을 찍었고, 영화 <칩 스릴>(감독 E. L. 카츠, 2013)의 공동 각본을 맡았다. <68킬>은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칩과 라이자는 연인이다. 둘은 슈가대디(성관계 대가로 많은 선물과 돈을 주는 돈 많은 중년 남자를 일컫는 말)가 자신의 금고에 6만8천달러를 보관해놓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돈을 훔치기로 한다. 슈가대디의 집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라이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둘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다. 트로마에서 배우, 작가, 프로듀서로 활동한 이력답게 트렌트 하가 감독이 만든 <68킬>은 피와 섹스 그리고 유머가 뒤섞인 블랙코미디 영화다. 트로마의 영화들이 그랬듯이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와 상황 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 때문에 곤경에 처한 칩에게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데 긴장감과 웃음이 번갈아가며 발생된다는 점에서 재기발랄하다. 특히 폭력과 피가 난무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데 충분하다.

<일로순풍> Godspeed

청몽홍 / 대만 / 2016년 / 112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일로순풍>은 허관문이 오랜만에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허관문은 <미스터 부> 시리즈로 유명하고, 주성치가 이소룡과 함께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홍콩 코미디영화의 원조다. 나도우(나도우)는 한 마약 조직으로부터 물건을 거래처에 배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택시를 탄다. 배달해야 할 물건이 마약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택시기사 라오쉬(허관문)는 나도우를 태우고 가는 길에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해 나도우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물건을 배달한 뒤 돈을 받기만 하면 되는 나도우와 손님에게 관심이 많은 라오쉬,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면서 원치 않은 일에 휘말리는 과정이 꽤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데뷔작 <노면주차>(2008)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청몽홍 감독의 신작으로, 지난해 대만금마장영화제에서 미술상을 수상했다.

<우리 삼촌> My Uncle

야마시타 노부히로 / 일본 / 2016년 / 110분 / 패밀리 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에게 청춘은 끊임없는 탐구의 대상인 듯하다. 그는 유예된 청춘(<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2014))과 청춘의 성장통(<오버 더 펜스>(2016))을 연달아 그려왔다. 삼촌(마쓰다 류헤이)은 유키오의 집에 얹혀산다. 일주일에 한번 대학 철학과에서 시간 강사로 일을 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하는 일 없이 방구석에 처박혀 누워 있고, 조카 유키오에게 용돈을 보태게 해 만화책을 사서 읽는다. 그런 삼촌은 유키오 가족 사이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존재다. 할 일 없는 청춘처럼 보이지만, 어떤 일을 겪으면서 삼촌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야먀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우리 삼촌>은 초등학생 조카 유키오의 눈을 통해 어른 삼촌을 묘사하는 작품이다.

<동정의 밤> The Night of the Virgin

로베르토 산 세바스티앙 / 스페인 / 2017년 / 117분 / 금지구역

<동정의 밤>은 동정을 떼려다가 고생만 죽도록 하는 한 남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다. 소년과 청년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니코는 섹스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창피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게 희망으로 가득 찬 새해맞이 파티에서 새해를 함께 보낼 하룻밤 상대를 열심히 찾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여성들은 키 작고 못생기며 순진해 보이는 데다가 어리숙하기까지 한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상심해 있는 그 앞에 한 중년 여인이 나타난다. 매혹적이면서도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여인은 니코를 자신의 아파트로 유혹하고, 니코는 그녀를 따라간다. 기품 있고 우아할 줄 알았던 그녀를 따라 당도한 아파트는 청소를 한번도 안 한 것처럼 지저분하고 더럽다. 그곳에서 니코는 불쾌한 경험을 하고, ‘동정 떼기’에 대한 니코의 판타지는 와르르 무너진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더럽고, 폭력적이고, 불쾌하고, 안쓰럽고, 슬프다. 비위가 약해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제일브레이크> Jailbreak

지미 헨더슨 / 캄보디아 / 2016년 / 92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타이에 <옹박> 시리즈, 인도네시아에 <레이드> 시리즈가 있다면 캄보디아에는 <제일브레이크>가 있다. 앞의 두 액션 걸작에 비할 바 아니지만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액션 하나로 서사를 끌고나가는 고집은 인정할 만하다. 경찰 특공대는 암살 위협을 받고 있는 조직폭력배 ‘플레이 보이’를 다른 감옥으로 이송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잠깐 머무르던 감옥에서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특공대원들은 이들을 진압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 조직원들로 구성된 범죄 조직 버터플라이도 플레이보이를 암살하기 위해 감옥으로 향하고, 감옥은 피의 아수라장이 된다. <루시>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할리우드영화에 스턴트맨으로 참여했던 액션배우들과 여성 이종격투기(MMA) 챔피언에 올랐던 타로스 삼이 좁은 감옥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액션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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