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더 테이블> 임수정 - 시간이 만든 자유로움
2017-08-23
글 : 이주현

2016년 5월 30일 어둠이 깔린 서울 체부동. 한산한 골목에 위치한 카페는 일찌감치 <더 테이블>의 오픈 세트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이날은 비 내리는 장면을 위해 살수차까지 동원됐는데, 마지막 촬영을 앞둔 스탭들은 차분하고 익숙하게 손발을 맞춰나갔다. 초록색 카디건을 단정히 걸친 임수정의 표정에도 여유가 있었다. “어제는 <시간이탈자>(2015) 크랭크업하고 1년여 만의 촬영인 데다 중요한 감정 신이 있어서 좀 긴장했는데 하루 만에 몸이 풀린 것 같다. 오랜만의 나이트 촬영도 기대되고.”

임수정은 <더 테이블>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결혼을 앞두고 옛 남자 친구 운철(연우진)을 만나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혜경을 연기한다. “어쩌면 혜경의 솔직한 모습이 닮고 싶어서 이 역을 맡았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이 알려진 배우로 살다 보니 꼭 남녀 관계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 제약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혜경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옛 남자 친구에게 갑자기 바람을 피우자고 하질 않나, 하룻밤 같이 보내자고 하질 않나. (웃음)” <더 테이블>의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혜경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던 것도 “지금 내 나이에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혜경과 운철은 결국 모호한 마음이 아닌 분명한 현실을 상기하며 돌아서는데, 상처받지 않은 척 돌아서는 혜경의 모습에서 임수정은 “어떤 쓸쓸함”을 느꼈다고도 한다. “영화에 그런 대사가 있지 않나.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왜 다른지 모르겠어.’ 그 말이 참 와닿더라. 내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하고, 내 마음과 다르게 누군가와 멀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종관 감독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화, 홍련>(2003) 10주년 기념 상영회에서 김종관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으면서 그 인연이 <더 테이블>로 이어지게 됐다. <더 테이블>의 다른 세 배우와 달리 임수정은 그간 독립영화와의 접점이 많지 않았는데, “저예산영화든 독립영화든 기회가 되면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전부터 있었다”고. 임수정은 “큰 영화, 작은 영화를 떠나 영화 작업은 다 비슷하다”면서 “영화가 작다고 영화에 대한 애정도가 적고 공을 적게 쏟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더 테이블> 현장에서도 다들 엄청난 열정과 애정으로 각자의 파트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봤다. 나 역시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영화를 자유롭게 왕래하고 싶다. 케이트 블란쳇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캐롤>(2015)을 오가듯.”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여전히 어렵지만 시간이 흘러서 얻게 되는 자유와 여유도 있다. 임수정이 <더 테이블>에 출연하며 느낀 신선한 자극과 재미도 그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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