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매혹하는 영화들④] <안녕 히어로>, 여기에 사람이, 그의 가족이 있다
2017-09-04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운씨
한영희 감독, 김정운씨(왼쪽부터).

길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사측의 대규모 정리 해고로 일자리를 잃었고 복직을 위한 기약 없는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77일간의 옥쇄 파업은 공권력 투입으로 진압됐고 1666명의 희망 퇴직자와 980명의 정리 해고자를 낳았다. 201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차 노동조합, 쌍용차 3자는 해고자, 희망 퇴직자 등의 단계적 복직에 합의했다. 그 자리에서 사측은 2017년 상반기까지 정리 해고 및 징계 해고 노동자 179명을 복직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2017년 하반기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속의 한영희 감독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 투쟁 관련 첫 번째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2016, 개봉 9월 7일)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쌍용자동차 복직 투쟁은 해고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해고 노동자의 가족까지 병으로 숨지는 비극이 계속된 경우다. <안녕 히어로>는 해고 당사자뿐 아니라 해고자 가족이 해고와 복직 투쟁을 곁에서 함께하며 어떤 심정이고 어떤 상태였을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해고 노동자 김정운씨의 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해고를 지켜봐온 맏아들 김현우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정운씨는 복직 투쟁 끝에 지난해 2월 복직돼 현재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서 일한다. 현장의 카메라로 다시 보는 쌍용자동차 해고 투쟁의 일면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과 김정운씨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현우가 쌍용자동차 평택 촛불 집회에 다녀와서 쓴 일기.

8월 28일 월요일,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과 김정운씨를 만나기 위해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찾았다. 정문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로 면한 도로에 ‘쌍용자동차 지부 CAFE 차차’라는 간판이 보인다. ‘차차’의 각 글자 옆에는 쌍용자동차를 뜻하는 자동차와 카페를 의미하는 찻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 지부의 김득중 지부장이 카페 지기가 돼 손님을 맞는다. <안녕 히어로>에도 등장하는 김득중 지부장은 이곳의 의미를 일러준다. “원래 식당이던 곳인데 6년 전부터 노조 사무실로 사용해왔다. 올해 7월 카페나 쉼터처럼 꾸며 분위기를 바꿔봤다. 쌍용자동차가 9년 장기 투쟁 사업장이다보니 연대해온 여러 단위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잇는 게 중요했다. 또 쌍용자동차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공장 안 동료들과 소통할 끈이 필요하다.” 중간 연결 공간으로 카페가 할 역할이 있다는 의미다. 김득중 지부장은 2015년 노·노·사 3자간 합의 이후에도 공장 밖에서 복직을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마침 <안녕 히어로>의 중심 인물인 김정운씨와 한영희 감독이 차례로 카페로 들어선다. 2016년 2월에 복직한 김정운씨는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 주야 교대 근무를 한다. 인터뷰 당일은 야간 근무조라 오후 8시반까지 공장으로 출근해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일한다. 복직은 했지만 김정운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아직 복직되지 못한 동료들의 복직을 위해 공장 안팎에서 동료들과 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그사이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해줬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다는 말에 김정운씨 마음은 또 한번 심란하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동 웃음) 난 조그마한 영상 하나 만드나보다 했지 이렇게 일이 커질 줄 꿈에도 몰랐지. 복직 투쟁을 하는 내 모습이야 언론에 얼마든지 나가도 되지만 가족들이 드러난다는 점이 많이 부담스럽다.” 김정운씨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영화의 만듦새가 어떤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저 ‘아이고, 이런 장면도 나왔네’라며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쑥스럽고 창피하고. (웃음)” 옆에 있던 한영희 감독이 거든다. “정말, 정말, 만에 하나, 개봉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독립 다큐멘터리가 제작지원을 받고 상영까지 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안녕 히어로>는 대단히 운이 좋았다. 그만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에게 이 영화를 알릴지를 고민한다. 그래서 요즘 할 일이 많다. (웃음)”

해고, 복직, 투쟁을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기

<안녕 히어로>는 2012년 11월 21일 첫 촬영을 시작했다. 쌍용자동차 지부가 송전탑 농성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한영희 감독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계속해 죽음을 맞는 상황에 충격을 받고 송전탑 농성장을 찾았다. 그때 김정운씨가 ‘아이들이 커가는데 내 상황을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게 안타깝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을 듣고 아이들이 보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섭외와 설득 끝에 김정운씨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한영희 감독은 김정운씨의 맏아들 김현우군이 촬영 승낙을 해준 이유를 짐작했다. “조용하지만 속이 깊은 현우가 어떻게든 아빠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정운씨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2008년 8월 이후부터 내가 거의 집에 못 들어갔다. 한상균 지부장 체제로의 선거가 끝난 뒤 파업하고 곧바로 내가 1년간 구속됐다. 출소하고 보니 2010년, 현우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내가 집에서 어디 나가려고만 하면 아이가 ‘어디 가느냐, 언제 오느냐’고 묻더라. 불안했던 거지. 한번은 ‘아빠, 근데 해고가 뭐야? 아빠는 도대체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라고 물었다. 나 나름대로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내 세계에 빠져서 이야기한 셈이었다.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김정운씨는 해고, 복직, 투쟁 같은, 설명하고 싶지만 말로 쉬 전달되지 않는 의미가 카메라를 통해 설명되길 바란다.

영화에는 13살 현우에서 시작해 16살 현우까지 등장한다. 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보는 현우군의 이해와 감정이 때론 정확한 언어로, 때론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전해진다. 한영희 감독은 “현우가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근데 그건 내가 현우의 의사 표현을 잘 못 알아들은 거다. 어느 순간 현우가 자기 영역을 지키며 말하지 않는 게 생겼는데 말하지 않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지 못했다.” 사려 깊고 너른 품을 가진 현우군. 아버지 김정운씨에게는 어떤 아들일까. “영화 보며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4~5학년 땐 친구가 거의 없었다는데 내 상황 때문에, 그게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내가 아이들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몰랐다. 작은아들 민서도 영화에서 내가 “우리가 가난해?”라고 할 때 불안을 언뜻 내비친다. 아이들이 아빠를 지지하지만 그 때문에 불안한 것 같아 마음 아프다.” 한영희 감독은 이렇게 말해본다.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이런 노동의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10대 청소년의 따끔한 지적이기도 하다. 현우가 느끼는 ‘우리 집이 어떻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만이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생존권이 달린 싸움이 왜곡되지 않고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때 내 권리를 요구하는 저항은 그 의미를 잃는다.”

‘함께 살자’는 말

지난한 투쟁의 과정에서 무엇이 김정운씨를 움직이게 했을까. “내가 언제까지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근데 내가 구속됐을 때 내 뒤에서 궂은일을 다 해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두나. 또 송전탑에 올라간 동료들이 있는데 어떻게 나만 살겠다고 하나. 그만두지 못하겠더라.” 그럼에도 2014년 11월 13일 쌍용자동차 해고가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을 땐 정말 뼈아팠다. “최대 위기였고 그때 또 뭔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노조 간부들 모두 강원도로 1박2일 여행을 갔다. ‘우리, 이날만큼은 아무것도 하지말자,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하며 바다를 보고 놀다 돌아왔다. 그 후 굴뚝 농성이 시작됐다.” 한영희 감독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해고 노동자 가족이 겪었을 심적 고통도 언급한다. “쌍용자동차 싸움을 지지하고 이 싸움이 지속돼야 한다고 보면서도 그 속에서 각 개인, 해고자 가정의 여성들이 겪었을 또 다른 고통을 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고 한 가정을 어떻게 꾸려갈지 그 책임을 온전히 혼자 떠맡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 내부의 갈등도 엄청났을 것이다.” 올해 5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가족이 유명을 달리했다. 김정운씨도, 한영희 감독도 숫자를 세는 일이 더없이 두려운 이 비극이 더이상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영화 말미에 김정운씨는 복직 후 첫 출근을 하며 묵묵히 통근 버스에 오른다. 2016년 2월의 일이었고 이후 1년이 더 지났다. 김정운씨는 “노·노·사 합의 이후 해고자, 희망 퇴직자, 해고자와 희망 퇴직자 자녀 등 102명이 복직했다. 2017년 상반기까지 사측이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언제가 될지. 회사는 경영 상황을 보자고 했는데 해고자에게 희망 고문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바람을 전한다.

이어 그는 “나뿐 아니라 해고됐다 복직된 동료들 모두 7~8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고 공장 안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한다. 공장 밖 동료들이 빨리 복직될 수 있게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진다. 그러면서 김정운씨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같다. 해고가 목적이 아니라 ‘함께 살자’고 했으면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해고 당사자든 경영진이든 경영 관리자든 다 같이 조금씩 양보했다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비정한 현실 앞에서 나는 살아서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나는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걸 말로, 글로, 행동으로 보여왔다. 그러다 구속됐지만 하다보니 힘드네 하며 그만둘 수 없었다. 내가 이야기한 걸 스스로 지키고 싶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고 해도. (웃음)”

<안녕 히어로>에 대한 김정운씨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해고자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나오는 일이 더이상 없길, 해고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아직 130명의 복직 대기자가 있다.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해고자들 역시 하루빨리 복직되길 바란다. 다 같이 노력하자.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연분홍치마는 영상을 매개로 한 여성주의 문화운동과 관객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2004년에 만들어진 단체다.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을 비롯해 현재는 <공동정범>(2016) 등을 공동연출한 김일란·이혁상 감독, <플레이온>(2017)의 변규리 감독 등이 속해 있다. 최근 위암 수술 후 회복 중인 김일란 감독의 소식과 독립 다큐멘터리 활동가들의 열악한 처우 및 제작 여건 등이 전해지기도 했다. 연분홍치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로 10월 2일까지 “연분홍치마는 월 600만원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가 되어주세요”라는 CMS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후원 링크(https://goo.gl/xyJ9BD), 후원 계좌(우리은행 1006-701-255845, 연분홍치마), 문의 전화(02-337-6541)를 통해 후원할 수 있다. 9월 27일(수)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는 하이델베르크하우스 신촌에서 연분홍치마 후원 주점도 열린다. 한영희 감독은 “동료들과 후원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 운동을 기획해 도전해보자는 연분홍치마의 큰 틀을 유지하며 계속 실험할 수 있는 큰 자산을 얻은 것 같다. 후원인들과 직접 만나 함께하는 프로그램들도 만들고 싶다”고 전한다. 현재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모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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