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가 사뭇 터프하게 변한 것 같다. (웃음)
=현장에선 전혀 안 그렇다. 얼마 전 모니터를 보다가 자그마한 걸 하나 놓쳐서 무전기로 “그거, 다시 체크해봐”라고 얘기했더니 옆에서 지켜본 (조)진웅씨가 “그럴 때는 ‘야, 똑바로 못해’라고 하는 거야” 그러더라. (일동 폭소) (귀여운 말투로) “난 그런 거 못해” 이랬지.
-허명행 무술감독과 함께 총기 액션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니 다소 낯설던데. (웃음)
=현장에서 특별히 낯선 건 없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전작과 다른 느낌은 있었다.
-처음 시도하는 장르라서 그런가.
=장르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인 것 같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제도판 위에 모눈종이를 올려놓고 자로 선을 그어가며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는 내 취향이나 감성적인 촉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면 이번에는 아귀가 잘 맞아야 해서 좀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게 많았던 것 같다. 안 썼던 근육들을 많이 썼다.
-용필름으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이야기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늘 영화적인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임승용 용필름 대표에게서 구두로 시놉시스를 전달받았을 때 마약, 범죄 같은 단어가 다소 낯설었지만 동경을 총족시켜줄 수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초기작 세편(<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 내 영화 인생의 첫 번째 시기라면 <독전>은 두 번째 시기를 여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재지 않고 곧바로 용필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진웅의 어떤 점이 원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원호는 마냥 착하고 정의로운 형사가 아니다. 이 선생을 집요하게 쫓을 때는 독한 구석도 있고, 때로는 도가 지나쳐서 악해 보이는 면모도 있다. 그럼에도 조진웅이 연기를 하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건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고, 그래서 관객이 끝까지 지지하고 감정 이입해 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류준열이 맡은 락은 속을 도통 알기 힘든 캐릭터던데.
=락의 레퍼런스가 된 캐릭터를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텐데…. (웃음) 락은 무표정한 이미지의 청년에서 출발한 인물이다. 달리 말하면 무표정한 얼굴이 상대방에게 안 읽혀야 하는데 (류)준열이의 얼굴이 걸맞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조기 축구를 하고 온 동생 같은데 카메라 앞에 서면 정말 놀라운 느낌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까무잡잡한 피부, 하늘 위로 뻗친 헤어스타일 등 김주혁의 인상이 꽤 강렬하더라.
=하림이 진짜 이상하고 미친 캐릭터다. (김)주혁 선배가 되게 ‘댄디’하고 친근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2015)에서 악의 기운을 뿜어내시더라. 이경미 감독이 주혁 선배를 두고 “진짜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웃음) 김주혁이라는 배우에게서 시도해보고 싶었던 모습들이 이미 <공조>(2016)에서 많이 드러났다. 가슴 근육도 많이 보여주셨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뭘 여쭤보면 주혁 선배가 “몰라,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씀하셔서 속으로 걱정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첫 촬영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내셔서 깜짝 놀랐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하고 신기한 악의 캐릭터를 만들어 오신 거다.
-배우들과의 작업이 만족스러운가보다.
=다른 건 몰라도 캐스팅 하나는 잘한 것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