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감독 7인⑤] <박화영> 이환 감독 - 과장이 아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2017-10-30
글 : 송경원
사진 : 유명한 (객원기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중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영화를 꼽으라면 <박화영>의 자리는 제일 앞줄이 될 것이 틀림없다.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받고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녀 박화영에 대한 영화다. 제목 그대로 박화영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 소녀의 주변을 둘러싼 폭력적인 환경이다. 상영시간 내내 쏟아지는 욕의 홍수를 견뎌야 하는 이 영화를 두고 이환 감독은 사실적인 재현임을 강조한다.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영화적 수사를 더한 건 하나도 없다. 배경이나 상황은 요즘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들의 말투를 배우기 위해 취재도 부지런히 했다.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영화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이환 감독은 장편 데뷔작 <박화영>을 들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장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하지만 이환 감독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미 배우로서 수차례 무대 위에 섰고 관객과 만나왔기 때문이다. “적게 잡아도 일고여덟번 넘게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는데 이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완전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낯설고 새로운 면들을 발견한다.” 그건 배우 이환으로서 작품을 소개할 때와 연출의 위치에서 관객을 바라볼 때의 온도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환 감독이 연출을 결심한 계기는 좀더 많은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건 깊고 충실한 경험이다. 하지만 감독의 비전을 구현한다는 제한적인 측면도 있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었다.” 2013년에 단편영화 <집>으로 연출을 시작한 이환 감독은 이후 이야기를 좀더 깊게 파고들어 <박화영>을 만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집>을 장편화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원래는 20대 성장영화를 준비중이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인큐베이팅을 받아 발전을 시키던 중이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럼 조금 작은 이야기로 가보자는 생각에 <집>의 이야기를 확장해나갔고 지금의 <박화영>이 나왔다.”

<박화영>은 상영시간 내내 박화영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정면 클로즈업으로 이뤄진 만큼 배우의 연기력과 존재감이 필수적이다. 새롭게 이야기를 쓴다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단편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제외하고 새로운 배우들로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박화영 역의 김가희 배우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처음에는 가희에게 가볍게 놀러오는 기분으로 오디션을 한번 보라고 권했다. 오디션만 무려 8개월을 봤다. 그런데 그 기간 내내 가희의 모습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후 가희를 다섯번 정도 더 만났는데 오디션이라기보다는 점점 이 친구가 맞구나 하는 확신을 하는 과정이었다.” 이환 감독은 김가희라는 배우가 박화영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온전히 박화영의 시선을 따라가는 만큼 캐릭터와 일체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의 3개월 가까이 명필름에서 제공해준 기숙사에서 합숙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이 정도까지 한 작품을 위해 몰입하고 투자할 수 있는 배우는 찾기 어렵다.” 김가희 배우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살을 10kg 이상 찌웠고 욕설은 물론 담배도 배워야 했다.

이환 감독은 배우들의 심리를 관리하는 데 촬영 내내 신경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영화를 표면적으로 둘러싼 키워드들은 담배, 침 그리고 욕이다. 배우 대부분이 비흡연자라 담배를 피우는 연기를 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명필름랩 2기 작품인 <박화영>은 철저한 관리 속에서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폭력적인 상황을 재현할수록 제작 환경은 신중해야 한다. 연기는 연기여야 한다. 폭력적인 상황의 밀도가 높은 만큼 배우들의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다행히 명필름은 그런 부분에 대해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덕분에 배우들의 심리치료를 꾸준히 병행했고 촬영이 끝난 지금도 지속적으로 관리중이다.” 쏟아지는 욕설에 대해서도 이환 감독은 자극을 전시하기보다는 사실적인 재현에 초점을 맞춘 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요즘 학생들은 욕이 없으면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다. 일부러 과장한 건 거의 없다. 오히려 욕을 통해 관계의 단단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여린 측면이 반영된 현상인 것 같다. 인물들의 불안을 표현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자주 봤다.” 그런 의미에서 이환 감독은 카메라를 제3의 배우로 상정하고 인물들 옆에 놓고 함께 숨 쉬도록 했다고 밝혔다. 가혹한 장면들을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 덩그러니 놓인 인물의 반응에 집중하는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강도 높은 표현에 시선을 뺏길 수 있지만 <박화영>의 속살은 결국 사람과 관계에 대한 탐색이다. 이환 감독은 꼭 짚어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나 성장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온전히 표현하고 싶은 것도 관계에 대한 질문들이다. 혼자 연기할 때는 제한적인 것들이 주고받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형태를 잡아나가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성장담에 끌리는 것도 그런 지점들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화영>은 이상한 성장영화다. 성장할 수 없는 인물을 통해 강조되는 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책임을 지려 하는 화영의 발버둥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이질감이 있는, 일그러진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사람을 뭉개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럴까봐 이야기를 쓸 때마다 조심하고 있다. 부조리한 상황은 인간의 민낯을 끌어내는 장치일 뿐 인물이 비틀려선 안 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처럼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 사람을 관찰하고 싶다. 물론 주제를 정해놓고 가진 않는다. 해소하고 싶은 이야기나 감정들이 떠오르면 영화를 통해 내뱉으려 한다.”

<박화영> 시놉시스

여기 엄마라고 불리는 여고생이 있다. 18살 박화영(김가희)은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다. 엄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엄마를 자칭하며 주변 친구들을 챙긴다. 아이들은 화영의 집을 아지트로 삼지만 화영을 무리에 끼워주진 않는다. 유일하게 화영을 상대해주는 건 얼짱 연예인 지망생 미정이다. 미정이 자신에게 기댈수록 화영은 미정을 위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진짜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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