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송년호다. 한해의 베스트영화를 꼽으며 결산하는 시간이다. <씨네21>의 기자와 평론가들이 선정한 2017년 1위 영화는 바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한국)와 <덩케르크>(해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홍상수 감독이 1위 자리로 복귀(?)했다는 사실이다. ‘<씨네21>이 홍상수만 편애한다’는 얘기를 또 듣게 될 것 같다. 참고로 홍상수의 지난해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5위권에도 들지 못해 충격을 안겨줬었다. 개인적으로는 비평적인 관점에서, <씨네21> 연말결산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1위를 차지할 때 상대적으로 그해 다른 상업영화 감독들이 얼마나 부진했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지표가 된다고도 여겨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지지를 보낸 많은 평자들이 하나같이 홍상수 감독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며 다시 1위를 차지한 것과 더불어, 2017년 연말결산에 의미 부여를 하자면 아마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과거의 결과를 살펴봐도 그렇다. 2000년대 이후로 한정하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을 포함해 2001년 윤종찬 감독의 <소름>, 2003년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 2009년 봉준호 감독의 <마더>,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1위를 차지한 적 있다. 그외의 1위 자리는 거의 모두 홍상수 감독의 차지였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2011년 <북촌방향>을 시작으로 2012년 <다른나라에서>, 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4년 <자유의 언덕>, 그리고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까지 무려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이창동 감독이었다. 2000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1위를 차지했을 때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은 2위였고, 2002년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 1위를 차지했을 때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2위였다. 그리고 2007년과 2010년에는 각각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시>가 1위를 차지했다. 그처럼 이창동 감독의 최근 두 영화가 모두 1위를 차지하고 보니 내년 개봉예정인 그의 6번째 영화 <버닝>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린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이미 완성한 영화 두편 <클레어의 카메라>와 <풀잎들>이 내년 개봉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2018년 연말결산 결과가 궁금해진다.
올해 가장 아쉬운 결과는 역시 여성감독의 영화가 10위권 안에 단 한편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의 경우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 각각 3위, 5위를 차지했다. 당시 결산 시점까지 <씨네21>의 21년 역사에서 여성감독 영화 두편이 5위권 안에 자리한 것은, 2001년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각각 2위, 5위를 차지했던 이후 무려 15년 만의 일이어서(당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과 공동 5위였다) 무척 반가운 결과였다. 그러다 다시 1년 만에 여성감독의 영화가 리스트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비밀은 없다>와 <우리들> 이전으로 거슬러가도 여성감독의 영화를 리스트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최근의 경우가 무려 2014년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가 5위를 기록했을 때다. 당장 떠오르는 2018년의 영화도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이언희 감독의 <탐정2>(가제) 정도뿐이다.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