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 북한 쿠데타와 북핵이라는 이슈를 대담하게 끌어들이다
2017-12-18
글 : 김성훈 |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 북한 쿠데타와 북핵이라는 이슈를 대담하게 끌어들이다

조선공화국이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핵무기로 공포를 조장해서라도 북·미 수교를 맺어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인정받고 싶은 조선공화국에 영화 <강철비>는 비현실적이다 못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경애하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고귀한 업적 덕분에 부강번영하는’(<로동신문> 12월 11일자 345호 인용) 조선공화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그 사태로 인해 북한 1호(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거구의 체형이 딱 봐도 김정은이다)가 남한으로 피신하는 이 영화의 설정은 누구라도 쉽게 상상 못할 사건이다. 이처럼 <강철비>는 도발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머지않은 미래의 한반도. 병사 제대한 북한 최정예 요원 출신 엄철우(정우성)는 리태한 정찰총국장(김갑수)으로부터 “일부 군 세력이 쿠데타를 공모하고 있으니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임무를 마치면 공화국을 지킨 영웅 가족으로 대접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대선이 막 끝나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남한에서 곽철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곽도원)은 “곧 북에서 대규모 숙청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입수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의성 대통령(김의성)에게 보고한다. 엄철우는 리태한의 지령을 완수하기 위해 개성공단으로 향하고, 마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또한 중국 기업의 개성공단 개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개성으로 간다. 개소식날, 엄철우는 표적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때 미국의 저비용 대량 살상 무기 스틸레인(MLRS)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개성공단은 순식간에 피의 아수라장이 된다. 엄철우는 그곳에서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발견해 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다. 미국이 선제공격한 것으로 받아들인 북한은 정전협정을 철회한 뒤 선전포고를 한다. 남한은 계엄령을 선포한다. 곽철우는 남한에 내려온 엄철우와 북한 1호를 만나고, 전쟁을 막기 위해 엄철우와 힘을 합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는 2011년 다음 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된 웹툰 <스틸레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스틸레인>은 양우석 감독이 데뷔작 <변호인>(2013)을 연출하기 전 제피가루 작가와 함께 선보였던 작품이다. 박재익 청와대 행정관이 CIA 북한 지부장 제임스 백(백채서)으로부터,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첩보를 받고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다. <강철비>는 북한 군부에서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한반도가 전쟁 위기로 치닫는 원작의 큰 설정을 따르되, 세세한 설정들은 최근의 상황과 영화 매체에 맞게 각색됐다. 가령 박재익의 시점에서 서사가 진행됐던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남한의 곽철우와 북한의 엄철우가 거의 동등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남과 북의 정치 상황 또한 원작과 다르다. 남한의 경우, 대통령이 집권 중인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김경영 대통령 당선인(이경영)이 옵서버로 청와대 안보회의에 참석해 이의성 대통령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의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과 생각이 드러난다. 북한의 경우, 원작이 (김정은이 집권하기 전인) 김정일 사망을 정치적 배경으로 다루었다면 영화는 김정은 체제로 설정됐다. 또 북한 1호가 개성공단을 방문한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 박근혜 정권이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개성공단이 재개된 것으로 보인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설정에서 출발하고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영화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상황은 충분히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쉬리>(감독 강제규, 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2000) 이후 남북 관계를 그린 한국영화의 상당수가 첩보전(<쉬리>, <베를린>(감독 류승완, 2013), <용의자>(감독 원신연, 2013), <공조>(감독 김성훈, 2017),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 2017) 등)이나 남파 간첩(<간첩 리철진>(감독 장진, 1999), <이중간첩>(감독 장윤현, 2003), <그녀를 모르면 간첩>(감독 박한준, 2004), <의형제>(감독 장훈, 2010), <간첩>(감독 우민호, 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 2013))을 소재로 다루어온 게 사실이다. 또 ‘남남북녀’를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휘파람 공주>(감독 이정황, 2002), <남남북녀>(감독 정초신, 2003))나 멜로드라마(<국경의 남쪽>(감독 안판석, 2006))도 몇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들이 과거나 현재를 배경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였다면 <강철비>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혹은 앞으로도 벌어지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할 상황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북한 쿠데타와 북핵이라는 이슈를 대담하게 끌어들인다. 한동안 수위를 거듭 높였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공방전,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 시진핑 체제의 경제 제재조치, 북핵 문제를 개헌의 밑받침으로 이용하려는 아베 일본 총리의 속내 등 각국의 현실 정치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당연히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곽철우가 비선으로 만나는 미국, 중국 외교 라인과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주변 국가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사실이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곽철우의 질문에 중국국가안전부 남한총책인 리 선생은 “중국의 일관된 입장은 미국이나 미국의 군사 동맹국과 절대로 국경을 맞대지 않는 것”이고 “북한이 핵폭탄으로 망하면 우리가 (북한을) 껴안을 것”이라고 말한다(실제로 샤오린 전 주일중국대사 제1서기는 “중국은 통일 한국과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에 대한 우려로 인해 현상 유지 정책을 선호하지만 최근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정권의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 바 있다(‘오래된 와인을 새 병에? 중국의 한반도 문제’라는 글에서 인용-.편집자)). 미국은 “핵 선제타격이야말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경제적 효율성을 주장하면서도 한반도보다 핵우산 동맹(일본)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곽철우가 리 선생으로부터 소개받은 일본 내각조사실 사카이 다카시는 “1호(김정은)는 미친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나라를 운영하고 있으니 그걸 알고 북한을 대해야 실수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청와대는 이의성 대통령과 김경영 대통령 당선인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의성 대통령은 “저들(북한)을 믿고 대화하느니 우리와 함께 고심하는 우방들과 대화할 거고, 핵 선제공격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김경영 당선인은 “평화적 통일을 위해 성실한 의무를 다해야 하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실제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핵 위협 관리에 있어 경제적 제재와 압박, (킬체인, 핵우산 같은) 억지와 (사드를 포함한) 군사적 방어, 선제공격과 핵무장 정책 등이 모두 실패했다. 북이 악마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대화와 협상만이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북핵 위협을 관리하는 법: 대화와 협상을 옹호하며’에서 인용-.편집자)).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물고 물리는 영화 속 상황은 한국에 북한이, 북한에 미국이, 미국에 중국이, 중국에 일본의 재무장이, 일본에 북한이 위협인 현실과 아주 다르지 않다.




두 아저씨 캐릭터의 정서적 동질감의 필요



남과 북이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영화가 북한이라는 이슈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건 남의 곽철우와 북의 엄철우, 이름마저 같은 운명의 두 남자다. 이 둘의 공통점은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엄철우는 아내, “남조선의 세계적 가수 지디”를 좋아하는 딸 인영과 함께 살고 있다. 곽철우에게는 이혼한 아내와의 관계에서 낳은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다. 군 제대한 엄철우가 “쿠데타 세력을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아들인 것도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고, 곽철우가 북 쿠데타가 일어난 뒤 밤낮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가족을 전쟁에서 지키기 위해서며,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두 철우가 서로에게 속내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한 것도 가족 얘기를 주고받으면서다. 두 아저씨에게 가족과 ‘아재’ 개그(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두 아저씨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장치다)는 정서적 동질감이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이자 장치다. 마치 <공동경비구역 JSA>의 남북한 병사나 <공조>의 북한 형사와 남한 형사처럼 말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두 철우의 모습은 버디무비로서 쾌감이 있는 동시에 한배를 탄 남과 북을 상징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강철비>는 북한 쿠데타라는 파격적인 가정과 북핵이라는 지난 20년간 반복된 문제에서 대담하게 출발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첩보전(혹은 액션 신)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뒤, 곽철우와 엄철우 두 아저씨의 연대를 드라마로 풀어내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상업영화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의 대사대로, “핵무기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원자폭탄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특정 장면을 두고 한국적 욕망이 점철된 이야기라 읽을 수도 있겠으나, 조건 없는 대화만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녹일 수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강철비>가 던지는 반전 메시지는 묵직하고 대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