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걸 그랬네요.” “저승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그겁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에서 망자 김자홍과 그의 국선변호사 진기한이 나누는 이 대화의 요지는 결국 지옥에 이르러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거다. 후회해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을만큼 아프지만 죽지는 않는” 형벌뿐이니까. 생전의 삶의 궤적이 사후의 삶의 궤적을 결정한다는, ‘이생망’ 세대에겐 야속할 수도 있는 권선징악적 세계관은 <신과 함께>의 핵심 모티브다(그래서 교육용 만화로서의 가치도 평가받아 출판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세계관 자체는 매우 유연하게 작동한다. 도덕성 회복을 주장하기 위한 계몽적 태도로 인간의 죄와 벌을 다루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변호사 진기한의 진기명기 변론쇼를 통해 독자들이 보고 느낀 건 인간에 대한 신의 애정,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신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김자홍은 보통의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다. 직장생활에서의 지나친 음주로 암에 걸려 결혼도 못하고 39살에 죽은 회사원(이것은 우리의 미래?)은 특별히 착한 일을 하며 살지도, 특별히 나쁜 일을 하며 살지도 않은 평범한 캐릭터다. 그런 김자홍이 지옥의 관문을 차례로 통과하며 환생에 가까워질 때 독자들은 미생이 완생이 되도록 응원하게 된다.
저승을 구현한다는 미션
웹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길게 늘어놓은 것은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이 웹툰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선 원작의 영화 판권을 일찌감치 구매한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제작 초기 인터뷰(<씨네21> 923호)에서 ‘저승은 한국영화에서 다뤄본 적 없는 세계이며, 원작은 스스로 인생을 반추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 말은 저승을 구현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동기이자 관건이었다는 것이고, 판타지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의 태동을 기대하라는 얘기였다. 영화에선 빠졌지만 시나리오 첫장에 적힌 문장도 이렇다. “악마가 말했다. 신에게도 지옥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이 구절은 김용화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꽂힌 문장이라고 한다. 인간사에 개입하는 저승차사의 이야기도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결과다. 웹툰과 영화는 이처럼 권선징악이라는 거대한 세계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공유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는 웹툰과 달리 강렬한 신파성, 최루성 드라마로 완성됐다. 그 과정에서 웹툰의 세태 풍자나 키치적 유머는 많이 제거됐다. 웹툰의 담담한 톤 앤드 매너도 싹 바뀌었다. 원작과 다른 노선을 택했다는 건 그만큼 영화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선언을 한 것과도 같다. 그렇다면 <신과 함께>가 영화적으로 취한 것은 무엇일까. 심플한 감정과 강렬한 스케일. 혹은 감정의 카타르시스와 시각적 스펙터클이다.
<신과 함께>는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으로 구성된 웹툰에서 ‘저승편’의 이야기를 가져와 다룬다. 웹툰에선 김자홍과 진기한 변호사가 저승에서 49일간 7개의 재판을 거치는 동안 저승 삼차사 강림, 해원맥, 덕춘이 이승에서 원귀가 된 유성연 병장을 쫓는 “두 시점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영화에선 김자홍(차태현)의 저승길을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이 호위하고 변호까지 한다. 김자홍은 불길에 휩싸인 빌딩에서 아이를 구하다 세상을 뜬 소방관이다. 저승차사들에겐 자신들이 호위해야 할 48번째 망자이자 19년 만에 나타난 의로운 귀인. 환생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이들은 한몸이 되어 저승에서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친다. 이승에서 덕을 쌓고 죽은 사람은 저승에서 귀인 우대를 받는다. 덜 까다로운 판관이 배정된다거나 해당 지옥마다 단 하나의 죄만을 묻는 재판 특혜가 보장된다거나. 귀인으로 분류된 소방관이기에 지옥문을 손쉽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은 빗나간다. 예상 적중 스토리로 두 시간을 채우는 건 예산 낭비라는 듯, 영화는 자홍 앞에 거대한 난관을 준비한다. 그 난관은 ‘효자’ 자홍의 말 못할 과거다.
웹툰은 자홍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과연 이번에도 지옥문을 통과할 수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가 귀신 잡은 꼴이랄까. 그렇게 웹툰은 이승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평범한 의인 자홍이 난관을 하나씩 클리어할 때마다 괜한 안도감을 느끼며 다음회를 클릭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정확히 그 반대다. 귀인에 대한 저승차사와 관객의 기대는 배신당한다. 그 배신은 당혹감을 불러오고, 당혹감은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끝에 감정의 솟구침이 있다. 그것은 웹툰이 제공하기 힘든 영화적 카타르시스다. 사후세계의 거창한 모험담마저 결국 이 카타르시스에 복무시키고 마는 강력한 신파. 그건 김용화 감독의 두말할 필요 없는 장기다.
데뷔작 <오, 브라더스>(2003)부터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 <미스터 고>(2013)까지, 김용화 감독은 언제나 ‘대중’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영리한 대중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그가 보편적 재미와 감동을 직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란 것을 말한다. <신과 함께>에서도 그는 ‘가족’과 ‘효심’이라는 테마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자홍과 자홍의 동생 수홍(김동욱) 그리고 이들의 아픈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얽히고, 이 가족의 비밀이 온전히 드러날 때 관객의 수도꼭지도 잠금해제된다. 참고로 김용화 감독은 <오, 브라더스> <국가대표>에서도 가족이라는 치부를 신파의 장치로 사용한 바 있다. 어떻게든 감정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김용화 감독의 쿨하지 못한 화법은 그러나 차라리 솔직하다 해야 할 것이다. 감독의 욕망이 솔직하고, 영화의 욕망이 솔직하다고 말이다. 때론 감정을 숨기는 것이 쿨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감정에 솔직한 것은 사실 건강한 것이다.
“제대로 판타지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가 TV드라마와 다르고, 웹툰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강력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김용화 감독이 준비한 것은 압도적 스케일이다. <미녀는 괴로워>의 특수분장, <국가대표>의 스키점프 CG, <미스터 고>의 디지털 캐릭터 등 김용화 감독은 그 누구보다도 난도 높은 영화기술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시각특수효과(VFX) 장인들과 함께 차린 회사 덱스터는 김용화 감독의 기술적 야심을 실현하게 해주었고, <미스터 고>는 흥행 실패를 떠나 한국영화기술의 현재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대중영화 감독 김용화와 덱스터의 대표 김용화는 <신과 함께>로 다시 한번 SF 판타지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영화계에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기려 한다. <신과 함께>는 제작 전부터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은 프로젝트였는데, 우려라는 건 결국 낯선 룩에 대한 염려였다. 저승차사와 염라대왕과 인간이 마주보고, 원귀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사후세계는 이제껏 한국에서 구현된 적 없는 세계였다. 저승을 상상하는 일에는 레퍼런스가 있을 수 없고, 그것이 행여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 영화는 제 무덤을 파는 꼴이 되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신과 함께>가 구현한 사후세계는 독창적이진 않아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기술적 한계가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몰입을 저해하는 일은 없다. 지옥에 입장하기 위한 망자들의 행렬은 <반지의 제왕>의 부감 전투 신을 연상케 하고, 모포를 뒤집어쓴 원귀가 시공을 초월하며 날아다니는 장면에선 <해리 포터>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실감하게 되는 건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만큼 새로운 룩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이자 판타지를 시현하는 매체다. 그런데 그간 한국영화들은 스스로 상상력을 가둬온 것 같다. 제작비의 압박이라는 이유로 혹은 한국에서 판타지는 통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으로. 그래서 김용화 감독의 영화적 야심과 배짱이 반가운 건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판타지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영화라는 판타지에 대한 순정이 이토록 반가운 것이다.
원작과는 다른 길을 가다
<신과 함께>는 웹툰에서 출발했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하나의 창작물이다. 웹툰과 비교할 순 있어도 웹툰의 장점을 왜 그대로 계승하지 않았냐고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 <신과 함께>는 가장 영화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김용화 감독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웹툰은 웹툰의 길이 있고, 영화는 영화의 길이 있다. 웹툰의 장점이 영화의 장점이 되진 않는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신화적 세계관을 펼쳐놓는 웹툰의 방대한 스토리가 영화적 스토리로 바뀌는 과정에서 영화는 자기만의 취사선택을 한다. 김용화 감독은 그것이 감정의 스펙터클, 시각적 스펙터클이라고 답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