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감독, "이런 대규모 예산의 영화라면 감정을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12-18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공교롭게도 겨울 한국영화 대작 세편의 언론시사가 3일 연속으로 진행됐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1987>에도 하정우 배우가 출연하는데, <신과 함께> 촬영 중에 <1987> 캐스팅 제안이 들어와서 나한테 물어보더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두 영화의 개봉일이 이렇게 근접하게 붙을 줄도 몰랐고 <1987> 역시 의미 있는 작품일 것 같아서 하라고 했는데 개봉일이 이렇게 정해질 줄은 몰랐다. (웃음) 어쨌든 원작 웹툰의 팬층이 워낙 두텁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판타지에 대한 갈증과 기대치가 있다 보니, 그런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웹툰 <신과 함께>의 영화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미스터 고>(2013) 준비할 때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다. 웹툰을 구매했는데 연출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더라. 웹툰을 읽어보니 에피소드 형식이라 영화보다는 TV드라마로 만들기에 더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필사적인 인물의 감정의 극대치를 2시간 동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화하려면 많은 각색이 필요할 것 같았고 그 당시엔 기술적 구현도 어렵겠다 싶어서 연출 제안을 고사했다. 그러고 3년쯤 뒤, <미스터 고>를 끝낸 시점이었는데, 다시 한번 <신과 함께> 연출 제안을 받았다. 물론 그동안 이 작품이 여러 작가 및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제안한 건, 시점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최소한 2부작의 시리즈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미스터 고>를 비롯해 여러 블록버스터영화의 시각특수효과(VFX) 작업을 수행하면서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웹툰의 파편화된 이야기를 집중력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았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에 변화가 생겼다. 진기한 변호사가 빠지면서 그의 역할을 저승 삼차사가 떠안았고, 김자홍(차태현)의 직업도 평범한 회사원에서 소방관으로 바뀌었다. 캐릭터의 변화가 서사의 큰 줄기를 바꿔놓았다.

=원작의 캐릭터성은 그대로 가져왔다. 김자홍의 경우 도시 소시민의 우유부단함을 가진 캐릭터인데,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김자홍의 캐릭터성은 가져오되 직업을 바꾸면 새로운 상승작용이 생길 것 같았다. 두개의 시점을 하나로 합치는 경우, 저승차사는 변호사 역을 할 수 있지만 변호사는 저승차사 역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저승차사 강림(하정우)에게 변호의 역할까지 맡겼다. 나로선 일곱번의 재판을 논리 정연함 혹은 통쾌함으로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원작은 그게 가능했냐. 그렇지 않다. 웹툰 역시 해학과 풍자, 만화적 상상력으로 돌파해나간다. 웹툰만의 관용도가 따로 있는 거다. 톰 크루즈 주연의 <어 퓨 굿 맨>(1992)을 좋아하는데, 그 영화처럼 2시간 동안 재판 하나를 끌고 가는 것도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곱번의 재판을 통과해야 한다.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게 되는 소시민을 데려다가 1부터 100까지 죄를 묻는 이야기도 아니고, 소시민의 죄를 일일이 통쾌하게 변론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이야기가 패턴화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다면 칭송받아 마땅한 ‘귀인’ 김자홍에게 딱 하나의 장애물이 주어지는 플롯을 만드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런 극적인 목적에서, 평범한 회사원에서 의인이자 귀인인 소방관으로 설정을 바꿨다. 물론 웹툰이 왜 사랑받았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다. 이승에서 지긋지긋한 삶을 살다가 저승에 갔는데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고 변론해주더라,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렇다면 원작의 정신과 세계관을 잘 가져오면 되는 것이지 원작을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는 거다. 영화가 재미있냐 없냐, 감정의 터칭이 이루어지느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거니까.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개의 죄 중 천륜의 죄를 가장 크게 묻는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 죄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 건가.

=이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미녀는 괴로워>(2006) 때부터 함께한 노은희 프로듀서가 ‘감독님 <신과 함께> 해야 할 것 같아요, 용서에 관한 이야기로 풀면 멋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라면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더라. 그동안 성공을 위해 달려오면서 외면했던 사람들, 도움을 뿌리쳤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제대로 사과 한번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고. 그러면서, 살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는데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사실 <신과 함께>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부모님이 두분 모두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많이 아프셨는데, 그때 영화에서와 비슷한 상상을 한 적 있다. 그때부터 영화의 영감이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죄는 누구나 짓고 산다. 그래서 저승에선 누구나 죄가 있다는 유죄추정의 원칙을 따른다. 자신의 죄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진심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싶더라. 용서라는 가치에 대해 4시간, 5시간짜리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부제는 ‘죄와 벌’인데 막상 영화는 ‘용서와 구원’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지옥에서의 형벌 묘사도 최소화했다. 권선징악을 강조하려면 형벌 장면의 표현 수위를 더 세게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표현의 수위는 영화의 서사와 감정을 제대로 실어나르기 위해 선택하는 건데, 굳이 청소년 관람불가의 영화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더라. 원작에서처럼 잔인하게 혀를 뽑아서 밭을 갈고 똥물에 튀기는 묘사를 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다. 영화는 은유의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은유를 통해 관객이 충분히 상상하게 만들면 된다.

-저승의 입구 초군문 장면 등에서, ‘우리도 <반지의 제왕> <인디아나 존스> <해리 포터> 같은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패기 같은 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힙합이 이렇게 유행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힙합이 대중음악 신을 휩쓸고 있지 않나. 그런데 영화만큼은 아직까지 로컬한 것 같다. <신과 함께>의 도전이 얼마만큼의 성공과 실패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기술적 성취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스크린에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SF 판타지 영화 제작이 전무하다시피한 현실에서 리스크를 감수해가며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스케일이 큰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 또한 크기 때문인가.

=맞다. 영화 시장을 좀더 키워보겠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 환경의 변화를 무시하고 성공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성향)에 젖는 게 무섭다. 내가 과거에 성공한 이유는 과거의 일을 매우 잘했기 때문이다. 지금 실패하지 않으려고 과거의 방식을 더 열심히 수행했다. 앞으로도 유구한 인생을 살아갈 텐데, 익숙한 장르와 형식을 답습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물론 감독은 죽을 때까지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만든다지만. (웃음) 도전을 한다는 건 리스크를 감수하는 거다. 더군다나 한국에선 SF 판타지 장르 자체가 거대한 허들이고. 단적인 예로 판타지 배경에 미국인이 들어가면 자연스러운데 한국인이 들어가면 그림이 이상하다는 편견도 크다. <신과 함께>를 만들면서도 최대한 그런 이물감을 없애려 했다. 그건 원작이 내게 준 자신감이기도 하다. 이런 판타지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활동적 타성에 젖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건 언제였나.

=<국가대표>(2009) 끝나고였다. 인생에 두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탓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고 싶었다. 영화감독으로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한 게 웃긴 일이지만. (웃음) 두 번째는 사람들을 즐겁게, 웃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도 감독상을 받아보겠다는 거였다. 운이 좋게도 <국가대표>로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뤘다.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선 트로피와 돈을 꺼내 보는데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제대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나 싶어서. 남들이 도와달라고 할 때 회피하고, 부모님한테는 효자인 척하고, 고작 이것 때문에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았나 싶더라. 그때 결심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성장해야겠다. 그래서 덱스터를 차렸다. 한국의 1세대 VFX 슈퍼바이저들과 함께 조지 루카스의 ILM, 피터 잭슨의 웨타 디지털, 제임스 카메론의 디지털도메인 같은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사재를 다 털어서 만든 회사다. 지금은 왜 그랬나 싶지만. (웃음)

-방대한 사후세계 표현 등 <신과 함께>의 기술적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

=<신과 함께>가 103개국에 선판매됐는데 바이어들도 이 영화의 CG를 보고 아시아에서 이런 수준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놀라워하더라.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이 영화의 신파가 한국적이라 생각했는데 해외에서도 반응이 있다는 거였다. 예산 대비 감정의 충만도를 생각했을 때, 이런 예산의 영화라면 감정을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아무튼 해외에서의 반응도 궁금하다.

-주·조연 및 특별출연 배우까지 초호화 캐스팅인데, 처음부터 캐스팅에 힘을 많이 실으려 했나.

=예산이 편당 175억원 정도 들어가는 영화니까, 신뢰도와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캐스팅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강림의 경우 하정우 배우에게 강림 역으로 시나리오를 준 건 아니었다. <미스터 고>의 실패에서 이미 회복해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정우씨가 찾아와서 나를 위로하며 울더라. “감독님, 왜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했어, 나랑 하지.” (웃음) 그러다 <신과 함께> 얘기가 나와서 시나리오 보고 할 만한 역할있으면 하나 하라고 그랬더니 다음날 전화 와서 “강림이죠, 뭐” 그래서 정우씨가 강림을 하게 됐다.

-2부도 촬영을 다 마쳤다. 영화의 마지막에 에필로그처럼 2부의 이야기를 맛보기로 보여주는데, 2부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나.

=2부에선 이승과 저승 이야기가 평행구조로 진행된다. 수홍(김동욱)을 구해내기 위한 강림의 저승 이야기와 이승에 내려가서 성주신(마동석)과 동거를 해야 하는 해원맥(주지훈)과 덕춘(김향기)의 이야기가 평행해 흘러간다. 저승 삼차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의 비하인드를 추적하는 이야기도 있고. 개봉은 내년 여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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