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김윤석 -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2017-12-26
글 : 이화정 | 사진 : 오계옥 |
<1987> 김윤석 -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 빨갱이로 간주하겠어.”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폭력의 하수인.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대학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 박 처장은 독재와 폭력의 시대를 대변하는 ‘못난’ 얼굴이다. 늘 그랬듯, 김윤석은 이번에도 무시무시한 연기로 박 처장이 가진 눈빛, 몸짓, 사고방식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이 또 하나의 인물을 창조해낸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이후 장준환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이다.



=시나리오를 초고부터 봤다. 솔직히 재미없더라. (웃음) 우린 동지고, 그래서 서로 직언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아닌가. 그래서 거절했다. 다시 받았는데 초고와는 완전히 달라졌더라. 인물이 서사에 맞추어가는 게 아니라 서사에 맞춰 각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게 각색고에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과연 이걸 누가 투자해줄까. 그때만 해도 정권이 바뀌기 전이었고 세상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하정우, 강동원, 나 이렇게 셋 정도가 출연을 결정한다면 투자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온 거다.



-한국현대사의 분기점을 마련한 6월항쟁의 재연. 배우로서 욕심과 명분이 생기는 프로젝트였다. 1987년 당시 박종철 열사와 같은 청년기를 보내기도 했다.



=내가 딱 386세대다. 대학생 때였는데 그땐 늘 최루탄이 터졌고 휴교령이 내렸다. 교문 앞에 전경들이 깔려 있어 들어가려면 다툼을 해야 했다. 매일 학교 앞 막걸리 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는데, 굉장한 사명감을 갖고 운동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운동권으로 불리는 사람이 아니어도 그 시대 전체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에 데모 한번 안 해본 사람 없을 거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은폐하는 인물인 박 처장을 연기할 줄 알았겠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그 유명한 말을 배우로서 내가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웃음) 소위 ‘애국심’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박 처장을 보면서 섬뜩하더라. 그럼에도 단순히 이 사람을 전형적인 악의 모습으로 흑백논리 안에서만 묘사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시대와 제도 안에서 만들어진 악을 표현하려고 했고, 비하인드 자료들을 많이 찾아 나섰다. 한 인간이 이렇게 철저하게 세뇌당하는 과정을 만들어줘야 다시는 이런 인간이 나오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다.



-박 처장은 비뚤어진 신념 아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매도하고 처단하는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박 처장의 말투, 행동, 표정에 그 시대의 공포를 드러내야 했다.



=당시 자료들을 보면 그 사람만 모든 자료가 삭제됐다. 남은 사진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거구에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이라더라. 헤어 라인을 좀더 드러나게 밀고, 하관이 발달한 인상을 주려고 마우스피스를 제작해서 착용했다. 몸이 두꺼워지게 스펀지를 착용하고, 사진으로 유추한 걸음걸이도 연습했다. 듣자니 이 사람은 화가 나면 평안도 사투리를 써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더 무서웠다고 하더라. 사투리 연습도 많이 했다.



-<남한산성> <1987> 등을 보면 구체적이고 강한 공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을 표현한다. 최근의 작품 선택에서의 변화라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나 아니면 안 되겠구나’까지의 오만함은 아니더라도 ‘내가 해야지 무게가 실리겠구나’ 이런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악이 아니라 자기 신념을 따라가는 사람들, 그래서 외톨이인 사람들이다. 그런 캐릭터는 우리 선배들이 해왔다. 그런데 경력과 나이가 되니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리더가 되는 역할을 좀 하게 된다. 슬퍼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올해는 멜로부터 사극, 사회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쳤다. 내년은 어떤 도전을 하나.



=내년 농사는 이미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을 찍어놨다. 감옥에 갇힌 살인범이 추가 살인을 자백하면서 형사와 살인범간의 심리전을 그린 스릴러다. 형사 역인데 액션은 없고, 머리와 논리로 끈기 있고 차분하게 사건을 풀어나간다. 말도 차분하게 하고 져주면서 하나씩 정보를 얻어가는 인물이라 나 역시 새로운 도전이고, 수사극으로 시도해볼 장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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