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유해진 - 가장 보통의 남자
2017-12-26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1987> 유해진 - 가장 보통의 남자

서슬 퍼런 독재 치하, 단지 옳은 일이라는 믿음 하나로 위험을 무릅쓴 소시민들이 있었다. <TV가이드>와 <선데이 서울>을 ‘즐겨 읽는 척’하는 교도관 한병용도 그중 한명이다. 사건의 진실을 담은 옥중 서신을 잡지에 몰래 숨겨 실어나른 민주화의 배달원. 긴장의 시대 그 한가운데서 유해진은 특유의 소시민다운 면모로, 또 화면을 장악하는 존재감으로 <1987>의 시간을 때로 정감 있게, 때로 박진감 넘치게 하는 인물이다.



-<택시운전사>의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이번엔 1987년 6월항쟁으로 간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는 택시운전사 황태술(<택시운전사>)에 이어 이번에도 민주화의 진실을 담은 편지를 전하는 교도관 한병용으로 분한다.



=<택시운전사>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영화다. 대한민국에 아픈 현대사가 있었고, 그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조명한다. 민주화를 쟁취하기까지,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희생된 이들이 많았다. 내 역할도 그런 많은 인물 중 한명이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역할을 연달아 한다는 데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장준환 감독님이 이 역할은 내가 꼭 해야 한다고 자꾸 연락을 하셨다. (웃음) 선택을 하는 데 갈등이 없을 정도로 좋은 시나리오였고 너무 감사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택시운전사>와 바로 이어지다 보니 캐릭터가 다소 겹치지 않을까 조심성이 생기더라. 그렇게 이어지는 시대를 연달아 하니 한 인물처럼 보이면 안 되겠다, 다른 표현을 해야겠다,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1987년 당시 민주화운동에 대한 개인적 기억은 어떤 것이었나.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너무 어려서 인지를 못했고, 1987년에는 고등학생이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극단에서 연극하느라 바쁘게 다니던 때였다. 시위로 항상 어수선해서 수업에도 지장이 있었다. 시내 나가면 항상 최루탄 가스를 맡으며 다녔던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데모를 할까. 박종철 열사의 희생을 알았지만, 직접 내가 행동해야겠다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두 영화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과거 기억이 더 선명해지고, 그 고통의 시절을 대하는 감정도 더 진해졌다. 특히 영화를 준비할 때 자료조사와 캐릭터 분석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박종철 열사의 죽음, 상흔이 선명하게 마음으로 다가오더라.



-민주화운동을 하는 인사들 사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문서를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은 극의 스릴을 안겨주는 인물이다. 그 역할을 유해진 특유의 분위기로 무거움을 해소하면서 완성해나간다.



=<택시운전사>의 황태술처럼 밝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한병용은 조카 연희(김태리)와 누나와 함께 살며 티격태격하는 따뜻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이렇게 가정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이 영화가 가진 차가운 온도를 끌어올려줄, 쉼표 같은 따뜻한 역할이 한병용에게 주어진 것 같다. 작지만 큰 역할이지 싶었다.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 그 역할에 유해진씨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장준환 감독의 말이, 배우 유해진이 가진 하나의 속성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원래 내가 평범한 사람이니까. (웃음) 지금은 알려졌다고 해도, 불과 얼마 전 연극할 때만 해도 그런 평범한 시간을 보냈으니까. 내 안에 그런 평범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물론 내 외모도 그런 부분이 있는 거고.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보이지 않나. 내 생활, 외모, 사고방식, 이런 모든 요소가 합쳐져서 그런 분위기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유해진이 스크린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초 <공조>로 호평받은 뒤, 올해 최고 흥행을 거둔 <택시운전사>에 이어 연말을 <1987>로 마무리한다. 한해가 작품으로 꽉 찼다.



=산에 자주 가는데, 예전엔 음악을 들으면서 갔는데 지금은 자연 소리가 더 좋아서 그냥 오른다. 맹물처럼 맹하게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좋더라. 요즘은 어떻게 ‘하산’을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든다. 갑자기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안 되니까. 무릎 다치지 않게. (웃음) 방법은 나도 모르지만 그저 한발 한발 내딛는다. 개봉도 흥행도 내 선택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연기를 하면 되는 거 같더라. 그러면서 내 몸이 자동차라면 엔진 오일, 배터리 잘 체크하면서 계속 성의 있게 가야겠다.



-내년의 ‘한발’은 무엇인가.



=이제 리딩을 시작하는데,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에 출연한다. 4쌍의 친구 부부가 같이 놀러갔다가 조그만 장소에서 일어나는 소동극이다. 커플 중 한명으로 출연하는데,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