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주국제영화제⑥] '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 - 풍경과 아카이브
2018-05-02
글 : 김지훈 (중앙대학교 교수)
<녹색 안개>

영화의 본질 탐구와 영화 형식의 실험을 지향하고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의 장르적 경계선을 다시 그리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의 올해 상영작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풍경과 아카이브(archive)다. 물론 이 두 키워드가 올해 ‘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의 새로운 경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상영작인 <토포필리아>(피터 보 라파문드, 2015)와 <하늘은 흔들리고>(벤 리버스, 2015), 2017년 <북쪽의 모든 도시들>(다네 콤렌, 2016)과 <사막, 바다>(조슈아 보네타, J. P. 스나이데키, 2017)는 자연적 풍경 자체의 변화를 섬세하게 관찰하거나 문명과 관련된 자연적 풍경의 의미를 이미지와 사운드의 미학적 조합으로 성찰한 작품들이었다. 과거의 필름을 비롯한 기존의 미디어 이미지 자체는 물론 이러한 이미지의 수집과 조사, 변형과 재조합에 근거한 영화 제작 양식도 함축하는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은 <개의 심장>(로리 앤더슨, 2015), <F. 퍼시 스미스의 세계>(스튜어트 A. 스테이플스, 2016) 등에 반영된 바 있다. 풍경과 아카이브를 올해 ‘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이라는 지형의 탐색을 위한 나침반으로 설정한 이유는 이 섹션의 주제적, 형식적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이 두 키워드는 이 섹션의 주요 상영작이 최근 몇년 동안 영화관과 미술관을 가로지르며 제작되고 수용되어온 실험영화, 실험적 다큐멘터리, 에세이영화의 글로벌한 동시대적 흐름과 합류함을 식별하는 데 유용하다.

<우리가 사는 방법>

<두 개의 대성당> <지하디로 알려진> …

풍경은 분명 이러한 지형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제다. 최근 미술저널 <프리즈>(frieze.com)에서 출간된 “왜 작가감독들이 풍경으로 향하는가”라는 글에서 영화학자 에리카 발솜은 풍경이 이미지를 사유하고 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방식이 적용되는 세 가지 현실을 자연적 과정의 경이, 인간과 비인간적 생명의 교차(또는 인공적 풍경), 주체와 국가의 문제를 수반하는 지정학적 장소로 분류했다. 올해 ‘익스팬디드 시네마’ 섹션에서는 적어도 두 번째와 세 번째 현실에 해당하는 풍경을 다룬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도시적, 자연적 풍경 및 이와 연관된 문명의 지층을 조형적으로 탐구한 실험적 작업을 지속해온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두 작품은 형식적으로 언뜻 상반되지만 하나로 수렴된다. 코펜하겐의 신교 교회와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의 가톨릭 성당을 비교한 <두 개의 대성당>(2018)은 몬테비데오의 곳곳에서 이어지는 정신분석가와 예술가(감독 자신의 자아를 반영한 인물)의 대화를 담은 <스트리트스케이프(대화)>(2017)와 언뜻 달라 보인다. 하지만 두 인물의 모습을 주변의 자연적 풍경이나 건축적 구조물과 함께 담는 감독의 카메라는 종교적 건축물의 웅장한 규모와 복잡한 인테리어를 다양한 거리에서 포착하는 조형적인 프레이밍과 연결된다. 지난해 카셀 도큐멘타14에서 다채널 설치작품으로 처음 선보인 동명의 작품을 단채널 영화로 재편집한 벤 러셀의 <굿 럭>(2017)은 세르비아의 구리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노동과 수리남에서 불법 금 채굴에 종사하는 원주민 노동자들의 삶을 대비한다. 합법적 노동과 불법 노동, 밝음과 어둠, 서구와 비서구의 경관을 대비시키면서 러셀은 자연이 문명의 이기를 위해 가공되는 과정을 시청각적으로 기록하면서도 고된 노동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도 놓치지 않는다. 이 작품들이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 또는 인공적 풍경을 탐구한다면 에릭 보들레르의 <지하디로 알려진>(2017), 다네 콤렌의 <꿈의 문장>(2017), 후앙팡추안의 <순환>(2017)은 지정학적 장소로서의 풍경에 주목한다. 특히 IS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알제리계 프랑스 청년 아지즈의 스페인, 터키, 시리아를 포괄하는 종적을 재구성한 <지하디로 알려진>은 자막으로 제시되는 법정 기록과 아지즈가 방문했던 장소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교차시키면서 풍경을 이해의 대상을 넘어 보기와 읽기 행위의 질문을 수행하기 위한 무대로 설정한다.

<스펠 릴>

영화학자 캐서린 러셀에 따르면 아카이브 자료의 발굴과 조사, 변형을 근거로 작업하는 실천가는 그 자료 자체에 함축된 “시간성의 과잉과 의미 및 정서의 과잉”을 활용하고 탐구하면서 역사와 기억을 재건한다. 가이 매딘이 공동 제작한 <녹색 안개>(2017)는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한 <현기증>(1958)의 내러티브와 시각적, 주제적 모티브를 원작과 언뜻 무관해 보이는 많은 할리우드영화와 tv드라마의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다양한 영화에서의 시간을 가리키는 장면을 재편집하여 24시간 상영되는 영화-시계를 창조한 미디어작가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시계>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에서 샌프란시스코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의 이미지는 히치콕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 미디어에 재현된 메트로폴리스의 건축적, 지리적, 정서적 역사에 대한 시청각적 지도의 원재료로 탈바꿈된다. 3D 테크놀로지와 음극선관 tv모니터를 활용하여 자연과 기계, 촬영된 이미지와 습득한 자료, 재현과 추상을 왕복하는 <프로토타입>(2017)은 1900년 텍사스의 작은 마을을 파멸시킨 허리케인의 엄습을 기술적 진보를 향한 20세기의 강박적 욕망과 현재의 생태적 파국에 대한 대안적 역사쓰기를 촉발하는 원형(prototype)적 과거로 설정한다.

<프로토타입>

<스펠 릴>, 아카이빙의 개념을 확장하다

시간성의 과잉은 과거의 상상적 재구성뿐 아니라 과거에 실패했거나 잠재된 유토피아적 욕망의 섬광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점화하는 충동도 자극한다. 기니비사우에서 1960년대와 70년대에 제작된 혁명적 영화 필름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과정을 다룬 <스펠 릴>(2017)은 2014년 복원된 영화를 동시대 대중에게 이동 상영하는 모습을 포괄함으로써 아카이빙의 개념을 확장한다. 필름의 복원은 소실된 원본의 기술적 재건을 넘어, 영화를 사회 변혁을 위한 집단적 실천의 도구로 삼았던 미완의 기획을 현재에 새로이 환기시키는 실천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의 의지는 영화와 기차의 관계를 드러내는 필름의 단편들을 난민들이 열차 사이에서 스마트폰으로 위험하게 촬영한 영상과 병치시키면서 60년대와 70년대 비판적 뉴스릴의 전통을 동시대 미디어 행동주의로 갱신하는 <63개의 뉴스 릴, 그림자의 연결>(2017)에서도 발견된다. 결국 이미지의 아카이브에 대한 성찰은 이미지의 제작을 추동하는 욕망과 그 이미지를 형성하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습득영상 영화 제작의 베테랑 구스타프 도이치의 <우리가 사는 방법>(2017)은 유럽과 미국에서 수집한 홈무비와 스마트폰 및 스카이프(skype) 영상에 포착된 가족의 이미지를 포괄하면서 일상적 삶과 함께하는 도구로서의 영화, 가족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형성하고 전승하는 매체로서의 영화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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