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국 드라마 <나르코스>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이에게 탈북 산업만큼 흥미진진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탈북자 한명을 탈출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림잡아 1천만원.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 10만여명의 탈북자들이 숨어 있다니 탈북 비즈니스는 10조원 규모의 거대 산업인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굿 비즈니스’인 것도 그래서다.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 중 한편인 <굿 비즈니스>는 유명한 탈북 운동가인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가다 부모를 잃은 두 자매를 탈출시켜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는 다큐멘터리다.
<조선일보> 기자이기도 한 이학준 감독은 12년 동안 탈북자 인권 문제를 쭉 취재해왔다. 밀입국만 16번을 감행하고, 밀항선도 2번이나 탔으며, 죽을 고비를 서너 차례 넘겼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만든 작품이 3부작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2011)였다. 1부는 탈북자들이 배로, 버스로 중국 국경을 넘는 과정을, 2부는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문제를, 3부는 러시아 벌목장에서 노역하는 탈북자들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냈다(한국에선 2부까지만 방영됐고, 3부는
이 감독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탈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통일 문제에 거창한 사명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탈북자와 탈북 브로커 그리고 탈북 운동가에게서 나오는) 강렬한 감정과 욕망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유학을 가야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99년 <국민일보>에 입사했다. (웃음) 사회부, 경제부를 차례로 돌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2001년 종군기자로 자원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됐다.” 밤에 폭격기가 휘몰아치면 낮엔 폐허가 돼 있던 그곳에서 그는 “전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한 한국군과 미국군을 추적했고, 2005년 <조선일보>로 옮긴 뒤 탈북자들을 쫓게 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욕망에 관심이 많았다. 탈북 사업도, 전쟁도 욕망이 함축돼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탈북 문제를 가지고 승부를 보기 위해 카메라를 든 작품”이 바로 <굿 비즈니스>다. “중국 공안에 이미 세번이나 체포된 전적 때문에 비자 발급이 잘 안 되고, 기자의 감으로는 다시 하면 잡힐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 잘할 자신이 없었음에도 ‘내일은 없다’는 심정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참 대책 없다. 이 대책 없는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줄거리만 보고 험난한 탈북 과정을 좇는 감동 스토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김성은 목사와 그와 함께 일하는 탈북 브로커들 그리고 그들이 구출하는 탈북자 사이에서 오가는 돈과 그로 인해 생긴 욕망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김성은 목사를 따라간다. 김 목사는 유명한 탈북자 인권운동가다.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탈북 문제를 취재하는 해외 기자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사람을 통하면 탈북 확률이 높다. 비결은 탈북 브로커들에게 돈을 두둑이 챙겨주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돈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는 다른 한국 인권운동가와 달리 김 목사는 돈 얘기만큼은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김 목사님에게 ‘왜 그렇게 돈 얘기를 많이 하냐’고 물어본 적 있다. 그는 ‘돈이 없으면 사람을 못 산다’고 대답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어보니 그는 ‘잘하는 게 이 일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 말은 돈 문제만큼은 깔끔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김성은 목사, 여러 탈북 브로커 등 영화 속 인물들은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아니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돈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코드명이 ‘레드맨’인 브로커(영화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등장하는 브로커)가 탈북자를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활약한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편집 작업에서 끝내 빠졌다. “이야기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영화는 편집본만 5개가 있다. 처음 완성한 버전은 60분짜리인데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들어가지 못했고, 3시간짜리 긴 버전도 있었는데 너무 한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였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 그때 김민철 총괄 프로듀서가 소개해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헥터 바리오스 편집감독은 다섯 가지 편집본을 다 본 뒤 이학준 감독에게 영화를 러닝타임 100분 이내의 누아르영화처럼 편집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감독의 생각도 그와 똑같았다. “인간의 이중성이나 선과 악의 모호함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 이같은 치열한 고민 덕분에 <굿 비즈니스>는 <나르코스> 같은 범죄물이나 누아르 같고, 실화를 다루는 까닭에 웬만한 누아르 못지않게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친다.
걸그룹 나인뮤지스를 다룬 첫 장편다큐멘터리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2012)에 이어 내놓은 <굿 비즈니스>가 이학준 감독의 마지막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나니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흔 넘어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위로가 된 말이 있다. 세상에 이해 못할 인생도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삶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의 사연을 듣고나니 그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나들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의 다음 도전은 극영화 연출이다. 이미 전주에서 일본 프로듀서와 만나 다음 작품과 관련된 구체적인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첨밀밀>(1996) 같은 독하고 예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굿 비즈니스>는 어떤 영화?
발각되는 순간 죽음이다. 생사의 갈림길인 중국과 라오스 국경 지역에서 수많은 탈북자들과 탈북 브로커 그리고 인권운동가들이 국경을 넘고 있다. 목숨을 건 채 말이다. 유명한 탈북 인권운동가인 김성은 목사도 그중 하나다. 미국에서 북한고아복지법이 통과되면서 김 목사는 북한 고아를 미국 가정으로 입양시킬 계획을 꾸민다. 그때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두 자매의 소식을 알게 되고, 김 목사는 탈북 브로커들과 함께 그 아이들을 중국 국경에서 탈출시키는 모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