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주에서 만난 감독들⑤] <비행> 조성빈 감독,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18-05-23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조성빈 감독의 <비행>은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전과자 출신의 남한 청년과 한국 사회에 정착하려는 탈북자 청년이 마약 범죄에 얽혀드는 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청춘의 초상을 냉혹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졸업작품으로 <비행>을 만든 조성빈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인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없는 초조함으로 가득했던 그의 20대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비행>의 모티브가 된 실화나 소재가 있는지 궁금하다.

=명확한 영향을 받은 영화는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1996)이다. 평소 서브컬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러던 중 돈이 필요해 마약을 팔게 되는 한국 20대 남자 두명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두 주인공 중 한명이 탈북자라는 점이 이 영화를 흥미롭게 한다. 탈북자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나.

=두 인물의 차이를 고민하던 결과에서 나왔다. 전과자 출신의 지혁을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인물로 설정하다보니 반대로 한국에 가장 간절하게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하게 됐다. 물론 그 주체가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탈북자야말로 한국영화만이 취할 수 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약 밀매를 조사하다보니 실제로 북한에서 마약 제조가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그 마약이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껌통에 마약을 넣어 거래하는 장면 등 등장인물이 범죄를 행하는 모습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취재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들은 마약을 ‘빙두’ , ‘얼음’이라고 부른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웹상에서 판매자와 연락이 닿았는데, 마약 범죄에 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니 다들 미친 사람 취급하며 연락을 끊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한분이 자신의 삶과 영업 방식에 대해 거의 자백하듯 말해줬다. 그에 대한 취재를 토대로 경찰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학교(청주대학교) 앞 경찰서의 경찰 한명이 실제로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신변보호관이었다. 탈북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아 완성했다.

-관객마저 통증을 느낄 것 같은 맨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액션의 기본 컨셉에 대해 듣고 싶다.

=지혁과 근수가 맞붙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호흡을 끊어서 가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엉겨붙어서 끙끙거리는 모습을 긴 호흡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그들이 도시 한복판을 맨발로 달리는 장면이 가장 중요했다. 방금 지나온 나의 20대에 대한 소회가 그 한 장면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주변의 도움 없이 맨발로 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중요한 건 그런 나를 아무도 쫓지 않았다는 거다.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압박하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그렇게 절박하게 달렸던 이유는 나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런 나의 마음을 담은 장면이다.

-<비행>은 청주대학교 졸업작품이다. 청주 올 로케이션 영화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영화 속에서 자주 봤던 장소는 아니다.

=아직도 ‘충청도 영화’ 하면 다들 <짝패>(2006)를 떠올리곤 한다. (웃음) 청주는 공기 좋고 조용하고, ‘교육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의외의 다른 면도 있는 것 같다. 신입생 시절 처음으로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내렸는데, 주변이 전부 유흥시설이라 놀랐던 기억이 난다. 교육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그런 이질적인 풍경이 우리 영화에 담기지 않았나 싶다.

-영화가 굉장히 비정하다. 등장인물들에게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느낌이랄까.

=‘비행’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하늘을 난다는 의미와 더불어 잘못된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이상의 문제가 있다. 그렇게 선인장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결말이 좋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나의 성향을 반영하는 결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학 졸업 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최근에는 돈을 벌기 위해 광고 일을 하고 있다. <비행>을 2016년 1월에 촬영했는데, 살던 집(극중 근수의 집)의 보증금을 빼 제작비로 썼다. 촬영을 마치고 나니 아무것도 없더라.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조연출 집에 얹혀 3주를 살았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사람이 완전히 망가지겠다 싶었다. 영화의 편집도 마치지 않은 채 서울로 올라와 ‘써드아이비디오’라는 광고 프로덕션을 차려 친구들과 함께 운영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문득 완성하지 못한 영화가 생각나더라. 내가 저질러놓은 일인데 그래도 내가 수습해야 하지 않나 싶어 여행에서 돌아온 뒤 회사 일을 다 미루고 <비행>을 편집했다. 지난해 29살이었는데, 20대 때 저지른 일을 30살까지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앞으로도 ‘영화만 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진 않다. 영화와 광고, 파인아트 등의 작업을 오가며 영상산업 전반을 넘나드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비행>은 어떤 영화?

근수(홍근택)는 이제 막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이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헤어진 형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한국에서 새 출발을 하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전과자 출신의 중국집 배달부 지혁(차지현)을 알게 된다. 지혁은 근수를 부추겨 마약을 운반하는 일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다른 탈북민들의 마약을 훔친 두 사람은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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