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에서 배우 김해숙이 연기한 배정길 할머니는 영화가 담아내는 고통의 역사의 가장 한복판에 서서 관객의 관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역할이다. 마치 성장영화 속 캐릭터처럼 길고 긴 법정 싸움의 와중에 더욱 단단해져가는 인물이 바로 정길이다. 그녀를 연기한 김해숙은 인터뷰 내내 “감히 뭘 준비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하며 <허스토리>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그동안 세상의 어떤 엄마란 엄마는 다 연기해봤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마음조차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인 배정길 할머니는 그렇기에 더더욱 김해숙이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했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국민 엄마배우라는 표현 자체도 이번 영화 앞에서는 어쩌면 사치스러울지도 모른다.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중요한 캐릭터인 배정길을 연기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애쓴 그녀에게 촬영 과정에 대해 물었다.
-아픈 과거를 지닌 배정길을 연기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허스토리>만큼 큰 부담감을 안고 ‘과연 내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되물은 영화가 없었다. 그녀의 감정, 상황에 대해 나는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배우로서의 어떤 사심도 없이 온전히 배정길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다가가보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직접 만나봤지만 모든 이들의 사연이 다르기에 배정길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극중 정길은 오랫동안 문 사장 곁에서 함께 지낸 인물이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그녀에 관해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겁 없이 도전했던 나 자신이 건방지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
-현장에서 누구보다 문 사장 역의 김희애 배우와 가장 많은 연기의 합을 보여준다.
=희애하고는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다. 김희애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배우이지 않나. 굉장한 연기파 배우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보다 희애가 아마 더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배우 김희애의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함께 출연한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배우들과는 현장에서 어땠나.
=웃음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정확하게 연기해야 했으니까 다들 즐겁다기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서로 즐겁게 여유를 즐길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린 정말 행복했다.
-영화의 후반부, 재판 장면을 연기할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모습도 직접 옆에서 봤을 텐데 어떻던가.
=매일 한명씩 재판 장면을 찍어나가는데 그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더라. 모두가 배역에 다가가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이지 내 촬영날이 다가오는 게 겁이 나서 현장에 가기 싫을 때도 있었다. (웃음) 결국 내 장면을 찍고 나서 탈진했다.
-관객에게 <허스토리>가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라나.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허스토리>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모두 손을 잡고 동지가 되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우리가 서로 기쁨도 나누고 함께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돌아가길 바란다. 배우들도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임했으니 지난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길 바란다.
-다음에는 또 어떤 영화로 만날 수 있을까.
=곧 tvN 드라마 <나인룸> 촬영에 들어간다. 김희선과 영혼이 바뀌는 사형수 역할이다. 그외에 영화 시나리오는 검토 중이다.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아직도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쉬면 안 되는 사람이다. 쉬면 병이 난다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