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허스토리> 문숙 -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기
2018-06-19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엑스트라만 시켜줘도 좋아요.” 전작 <뷰티 인사이드>(2015)로 충무로에 복귀하기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문숙은 배우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이만희 감독의 뮤즈였던 그가 지금 젊은 감독들과의 작업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무척 궁금했었다. <삼포 가는 길>(1975) 이후 40년 만에 돌아온 그가 <뷰티 인사이드>, <그것만이 내 세상>(2017)에 이어 출연한 영화가 <허스토리>다. 문숙이 연기한 서귀순은 엑스트라는커녕 일본 재판부를 상대로 당당하게 진실을 얘기하는 주인공 할머니 넷 중 하나다.

-어떤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나.

=강해 보이는 외모 때문인지 전작 <뷰티 인사이드>가 끝난 뒤 기업 회장 같은 센 역할이 주로 들어왔다. 평소 하이힐은 안 신는데 말이다. (웃음) 민규동 감독은 나를 다른 식으로 뒤집어보고 싶어 한 것 같다.

-그게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바지락을 파는 서귀순 할머니인가.

=바지락도 팔고 막일도 하고 다 해. 할머니 넷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혼자 살고. 또 겁이 많아, 겁쟁이야. 재판을 같이한다고 나서다가도 혼자 뒤에서 숨고, 재판할 때는 또 겁이 없는 것 같고. 귀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나.

=수백, 수천명의 남자들이 내 몸을 짓밟고 갔다는 사실을 아무리 상상해도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분명한 건 할머니들 대부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큰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온전히 알기 힘들지만 이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자신이 겪은 일을 부정하고, 가끔 이상하게 웃는 것도 그래서다.

-재판을 “꼭 해야 하나”라고 마주하지 않으려는 모습 또한 그가 겪은 고통의 한 단면 같았다.

=그러면서 혼자 스트레스를 다 받지 않나. 차곡차곡 쌓아둔 스트레스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스멀스멀 올라온 상처와 기억이 감당도 안 되고. 특히 우리 세대는 그거 다 기억하면 제정신에 못 살지. 당시 할머니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얘기하려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왜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서 시끄럽게 하냐’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나. 최근 미투(#MeToo)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게 다 가부장제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돼 나온 거다. 지금은 21세기니까 얘기해도 괜찮다. 귀순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해숙, 예수정, 이용녀 등 동료들과 부대끼는 장면이 많던데.

=과거 그들과 일을 함께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줄곧 연기를 해왔잖아.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킨 그들에게 깊은 존중심이 들었다. 반대로 나는 이도저도 아니고 연기를 잘 모른다. 그들보다 일은 먼저 시작했지만 그들이 나보다 당연히 선배라고 생각했다. 말을 절대 놓지 않고, 뭐든지 물어보고, 나를 접고 무조건 맞췄다.

-촬영이 끝난 지금, <허스토리>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나는 캐릭터가 확실한 사람이다. 책(<마지막 한해> <문숙의 자연 치유> <문숙의 자연식>)도 썼고, 뭐든지 확실해. 그런데 이 영화에선 나의 모든 것을 버렸다. 껍질을 벗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게 걱정된다. 어쨌거나 감독님을 믿고 시키는 대로 했다.

-영화계에 복귀해 지금까지 줄곧 연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가.

=기회가 주어졌으니 나를 놓고 그냥 하고 있다. 젊은 감독님들도 내게 큰 기대를 하겠나. 선생님이 한국에 들어왔으니 한번 써보자 그랬겠지, 궁금하기도 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들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다. 열심히 해봐야 예순이 넘은 내게서 더 나올 게 없다. 모두 후배잖아. 노는 데 끼워줘서 고마워, 이거 하나다. 그냥 노는 거다. (웃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