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하고 싶어지는 계절이 있다. 그때마다 친하지도 않은 이들을 졸라 만들었던 어색한 만남의 자리들. 전 직장동료의 학교 선배의 친구, 동생 친구의 남편의 친구와 같은, 멀고 먼 사람들과의 만남을 억지로 만들었다. 그 자리들은 여간 어색한 게 아니라서, 어깨가 굉장히 결렸고 팔뚝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던 기억만 남았다. 김봉곤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읽다가 ‘아, 연애의 계절은 끈적이는 여름이로구나! 연애의 공기 만만세!’를 외쳤다. 교환학생으로 간 일본 교정에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교수, 외모가 ‘나’의 취향일 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대화 역시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 혼자 그를 의식하고 있는 사이 우연히 그를 희롱하는 사진과 글을 보게 된다. 교수가 게이들의 ‘데이팅앱’에 올린 사진을 폭로한 아우팅. 그것을 보고 ‘나’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그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그도 나와 같은 게이임을 확인하고 설레는 뒤죽박죽의 감정. <컬리지 포크>는 교토에서 만난 교수와 잠깐의 연애를 하는 남자의 여름 한때를 그렸다. 버스에서 그의 체취로 황홀했던 기억, 함께 등산을 하며 은밀하게 서로를 만졌던 추억, 자취방에서 처음 안고, 창밖으로 본 교토의 밤 풍경. 모두 완연한 여름이었다. 재회한 구 남친과 한강에 풍덩 빠져들어 강의 유속을 즐기는 <여름, 스피드>에서도 연애의 감정은 한여름에 무르익는다. 함께 소월길을 걷다가 “너에게 이 계절을 주고 싶다, 날씨를 주고 싶어, 그건 내가 아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문장에 들어서면 이 연애의 당사자라도 된 듯 마음이 흐물해진다. 6편의 소설 모두 퀴어, 연애 소설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연애, 이별, 기억, 사랑, 글쓰기와 영화, SNS와 여행… 디테일한 공간명과 마쓰다 세이코의 <여름의 문>, 심지어 <씨네21>이라는 명칭까지 이 소설집에는 애틋하게 새겨져 있다. 마치 누구의 청춘을 기록한 일기장 같다.
너에게 줄게
너는 다시 돌아서서 앞으로 걸어간다. 바지가 맞지 않는지 추켜올리고, 바람이 구름을 천천히 가르며 지나가고, 당신은 가을이 되면 바시티 재킷을 입고 겨울이면 레터맨 스웨터를 입겠지? 그 뻔한 패션을 나는 다시 볼 수 있을지, 정신을 잃을 만큼 습하고 더운 올여름을, 소월길의 안개와 승강장의 바람을,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이 계절을 주고 싶다, 날씨를 주고 싶어, 그건 내가 아는 최고의 선물이고(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