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2018-07-17
글 : 김송희 (자유기고가)
사진 : 백종헌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 비채 펴냄

길에서 우연히 전남편을 만나 악담을 들었다. 또 다른 전남편에게 그새 새 여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는다. 온 힘을 다해 키운 아들은 비행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동네에서 가장 품행이 나쁜 여자를 데려와 결혼을 선언한다. 딸아이는 갑자기 이혼하고 싶다고 울며 ‘나’를 찾아온다. 가족의 비밀을 엿들은 옆집 여자는 보수적인 동네에 소문을 낼 태세다. 아버지 병문안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택시 기사가 ‘같이 침대로 가자’고 유혹한다. ‘나’는 덜컥 임신을 한다. 부부싸움을 하는 여자, 남편이 바람을 피운 여자, 성에 차지 않는 며느리를 맞이한 여자, 자식의 미래를 계획해주었지만 모든 게 뜻대로 안 되는 여자, 가족의 비밀이 이웃에게 새어 나갈까봐 고민하는 여자….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집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 실린 17편의 중·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단편들은 인물의 서사보다는 장면을 보여준다. 불쑥 남의 인생에 덧문을 열고 들어가 식탁에 앉아 삶을 엿보는 것 같다. 느닷없이 시작된 이야기는 대개 발단 없이 전개만 보여주다가 확 결말을 지어버리거나 발달, 전개 없이 절정의 한 장면만 보여준 채로 끝나기도 한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다음 소설의 인물이 이전 페이지의 이야기를 이어받는 것인가 싶어 앞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도 된다. 하루키가 추천사에 썼듯이 ‘곱씹어보게 되는 중독성 강한 문장’이다. 연결성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하루를 읽다보면 그것이 한편으로 끝나는 게 나중에는 당연하게 읽힌다. 알다시피 인생은 대부분 ‘평범한 줄 알았던 하루’ 때문에 모든 게 변화하기도 하니까. <나무에서 쉬는 페이스>의 이 문장처럼 말이다. “바로 이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계기로 나는 방향을 틀었고, 헤어스타일을 바꿨고, 일자리를 시 외곽으로 옮겼고, 삶의 방식과 말투를 바꿨다.”

여자들

어린 자식들까지 딸린 마리아는 힘든 시기를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내려고 애썼다. 동네에 있는 가까운 친척집 몇곳을 옮겨 다니면서 매번 열심히 일해 그 집 살림을 도왔다. 마리아는 일도 잘했지만 빵을 맛있게 굽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리아는 한동안 좋은 친구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아주 훌륭한 빵을 구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집 남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마리아가 구운 빵은 아주 근사해. 당신은 왜 저런 빵을 못 굽는 거지?” 그러고는 아마도 마리아의 다른 면에 대해서도 칭찬한 것 같다.(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