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어주세요. (옆에 있던 아역배우에게도) 이건 맛있는 거야.” 김지영 감독이 주문하자 배우들이 음식을 맛깔나게 먹는다. “컷” 사인과 함께 감독과 배우들이 모니터를 확인하러 간 사이 대체 무슨 음식인지 궁금해 테이블 앞으로 갔다가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접시에 가득 담긴 음식의 정체는 풍뎅이, 애벌레, 굼벵이, 귀뚜라미 등 온갖 곤충이었다. 옆에 있던 한 스탭이 “진짜 먹을 수 있는 벌레”라고 웃으며 귀띔해준다. 흰옷을 입은 채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이들이 대체 왜 벌레를 먹고 있는 걸까.
지난 7월 11일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한 폐업 놀이공원의 폐건물은 근미래의 아포칼립스로 변모해 있었다. 벽 여기저기가 뜯기고 천장이 몰골을 앙상하게 드러낸 이곳에서 촬영하고 있는 단편영화 <벌레>는 전쟁, 환경오염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식량이 부족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한 남자가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만이 먹을 수 있는 고단백 음식 벌레를 우연히 얻게 되면서 어떻게 처리할지 갈등하는 이야기다. 총 2회차 만에 촬영을 끝내야 하는 단편영화인 까닭에 제작진은 식당에서 주인공 남자가 한 가족에게 벌레를 서빙하는 신, 남자가 자신의 옷 속에 뛰어든 풍뎅이를 먹을지 고민하는 신 등 여러 신들을 몰아서 찍었다. 김지영 감독은 “지금은 음식이든 뭐든 넘치는 시대이지 않나. 가축을 키워서 먹든, 공장에서 사육해서 먹든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소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며 “이 문제제기와 더불어 대기오염으로 황폐한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쓰레기들이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오염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벌레>를 구상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는 2회차 촬영을 마쳤고 후반작업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