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G-시네마 9인 감독들④] 고훈 감독·하윤재 감독 - 감독의 개성이 담긴 생생한 로컬영화
2018-08-15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어멍> 고훈 감독·<빵꾸> 하윤재 감독
고훈, 하윤재(왼쪽부터).

고훈 감독의 <어멍>과 하윤재 감독의 <빵꾸>는 각각 제주도와 남해를 배경 삼아 선명한 지역색을 표출한다. <어멍>은 관광지가 아닌 척박한 삶의 터전으로서 제주의 생명력을 이끌어내고, <빵꾸>는 으레 지나칠 법한 어느 국도의 카센터를 블랙 코미디 장르의 색다른 무대로 삼는다. 이는 도시인의 신변잡기적 서사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전략적으로 아이템을 선별한 결과물이 아니다. <어멍>은 제주 태생 고훈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해 대를 잇는 해녀 문화에 대한 존경과 자긍심을 반영한 결과물이며, <빵꾸>는 하윤재 감독이 11년 전 여행에서 직접 경험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다양성영화라 불리는, 점점 수면 위 공간이 줄어드는 섬에서 고훈 감독과 하윤재 감독이 써내려간 두개의 섬 이야기는 오롯이 자신만의 생태계를 유지 중이다. 창작자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야기들이 오랜 시간을 쌓아온 두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 또한 특별한 기대를 낳는다.

-경기영상위원회 G-시네마 제작·투자 지원 선정작으로 당선된 소감은.

=고훈_ 제주영상위원회와 제주도개발공사의 지원금을 합쳐서 3500만원 정도 되는 금액으로 영화를 찍어야 했다. 예산이 적다보니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후반작업이 무척 힘든 상황이었는데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목이 너무 마른데, 누군가 물을 적셔주는 기분이었다.

하윤재_ 내 경우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과 외부 펀드를 포함해 4억원 정도가 준비된 상황이었다. 문제는 영화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카센터 세트를 지을 비용이 없다는 거였다. 근방에 인가가 없고 계획한 동선을 구현할 수 있는 로케이션을 찾는 데 실패한 터라 오로지 세트 제작만이 정답인 상황이었다. 시나리오를 써둔 지 10년 만에 드디어 영화를 찍는다니까 친구가 5천만원을 빌려주더라. 여기에 G-시네마 지원금을 합쳐 세트를 지었다. 고훈 감독님 말대로 일종의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어멍>은 제주의 해녀 문화, <빵꾸>는 남해 국도 카센터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들을 조명했다. 특정 지방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고훈_ 첫 영화는 반드시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와 어머니를 비롯한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제주도라는 환경이 그랬다. 해녀의 삶이 미디어를 통해 종종 낭만적으로 포장되는 것과 달리 우리 집안의 해녀들에겐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아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강인함은 일종의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어머니의 힘겨움도 차츰 이해하게 됐다. 지금도 제주도에 살고 있고, 다른 영화를 하기 전에 나 스스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라고 느꼈다.

하윤재_ 2007년에 남해에 놀러 갔다가 실제로 차가 펑크난 적이 있었다. 성수기여서 보험회사가 2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때 저 멀리, 아주 현란하게 ‘빵꾸’라고 적힌 카센터가 보였다. 혼자서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보는데 ‘왜 이런 곳에 카센터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이미 국도가 죽고 있던 시기였다. 평상에서 카센터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머릿속에서 시놉시스가 다 나왔다. 좀더 ‘엣지’ 있는 감독이었다면 그 무대를 배경으로 <악마를 보았다>(2010) 같은 이야기를 생각해냈을 테지만. (웃음) 서울에 돌아와 밀려나는 국도 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열흘 만에 작성했다.

-공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새로운 시선이 기대된다.

고훈_ 대한민국에서 잘 알려진 여행지가 제주도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있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제주도는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어멍>에선 실제 제주도민들이 살고 있는 집을 대여해서 촬영했고, 관광 포인트가 아닌 해녀들이 주로 바다에 입수하는 장소라든가 밭 한가운데에 있는 묘지 같은 현지의 생활에 밀착된 공간을 보여줄 예정이다. 땅도 파고 이것저것 해야 해서 실제 우리 가족 공동묘지에서 몰래 촬영했다. (웃음)

하윤재_ 귀촌한 외지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내는 밀폐된 공기가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남해가 아닌 강화도 석모도에서 찍었고, 오픈 세트를 지었는데 20~30년의 시간이 묻어나는 일명 ‘간지’를 내려다보니 비용이 꽤 들었다. 미술팀이 열의를 가지고 2달 가까이 잠도 안 자고 세트를 지었다. 근로기준법에 맞춰 굴러가는 요즘 현장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행운이었다.

-다양성영화의 제작 환경을 처음 경험해보니 어떤가.

고훈_ 다양성영화를 상업영화로 가는 발판처럼 생각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조금 의아한 입장이다. 나란하고 동등한 토양으로서 다양성영화 시장도 더욱 안정적인 자생력을 가지길 바란다. <어멍>의 내용과 로케이션 덕분에 지역 영상위나 기업체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지역색을 살린 콘텐츠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작은 예산을 가지고도 계속해서 작품을 만드는 감독과 그것을 믿고 소비하는 관객층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하윤재_ 상업영화 제작사들이 다양성영화를 개발하는 데에도 힘을 보태면 좋지 않을까. 일부러 천만영화 제작사에 내 시나리오를 보내보기도 했는데, 대체로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식의 반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멍>의 최선중 PD(로드픽쳐스 대표.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 제작)가 대단하다고 본다. 같은 에너지와 시간을 상업영화 개발에 쏟을 수도 있지만, <어멍> 같은 영화도 키우려는 것 아닌가. 이번 영화뿐 아니라 작업물을 들고 가면 자주 ‘돈이 될지 의문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창작자 입장에선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유혹에 자꾸만 놓이게 되는 셈이다. 작가의 색채가 저마다 다른데, 그들이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도태되지 않는 환경이 절실하다.

● <빵꾸>는 어떤 영화? 도시에서의 실패를 뒤로하고 남해로 귀촌한 자동차 수리공 재구(박용우)와 아내 순영(조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고로 타이어 ‘빵꾸’가 난 차들에 바가지를 씌우던 부부는 어느덧 직접 도로에 못을 뿌리기에 이른다. 그러다 이들의 레이더망에 인근 리조트 대표인 예리가 걸려들면서 <빵꾸> 속 작은 카센터는 예기치 못한 소동극의 현장으로 변신한다.

● <어멍>은 어떤 영화? 무명 시나리오작가인 아들과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해녀 엄마의 모자 드라마인 <어멍>은 한라산과 남태평양을 껴안은 독특한 섬문화를 인물의 생활과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죽음을 앞둔 해녀는 쉼 없이 물질을 하고, 꿈을 좇기 바빴던 아들은 질긴 핏줄 앞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제주 출신의 배우 문희경이 해녀를 연기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