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G-시네마 9인 감독들②] 고명성 감독·김희정 감독 - 시간과 공간 구현할 가능성 얻었다
2018-08-1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남산 시인 살인사건> 고명성 감독·<프랑스여자> 김희정 감독
고명성, 김희정(왼쪽부터).

<남산 시인 살인사건>의 고명성 감독과 <프랑스여자>의 김희정 감독은 해외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거친 연출자다. 고명성 감독은 일본영화학교 출신으로 <군함도>(2017)에 해외 코디네이터로 참여했으며 북한으로 간 재일 조선인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요나라 안녕 짜이쩬>(2009)을 연출한 일본통이다. <설행_눈길을 걷다>(2015)와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 <열세살, 수아>(2007)를 연출한 김희정 감독은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서 7년간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이국에서 보낸 한철은 이들에게 한국영화 속 시공간을 참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 같다. <남산 시인 살인사건>은 1950년대 명동 다방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시대극이며, <프랑스여자>는 1997년과 2015년이라는 시간, 서울과 프랑스라는 공간이 뒤섞이는 판타지 드라마다. 두 작품은 저예산 다양성영화에서 선뜻 시도하기 힘든 시공간을 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김희정_ 자신의 땅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의 불안한 심리에 늘 관심이 많았다. 나 역시 7년간 폴란드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해외에서 오랫동안 체류한 분들이 주변에 꽤 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의 이상한 쓸쓸함이 있다. 해외 국적을 얻었지만 그곳에 완전히 속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은, 이 쓸쓸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고명성_ 예전에 알고 지내는 작가가 이중섭 화가의 부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적이 있다. 당시에 그분으로부터 1950년대 문인과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명동을 주축으로 한 당대 문화계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또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근대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나 과거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들이 참 많다. 명동과 남산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무대로 기득권 세력에 의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진실을 영화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프랑스여자>는 서울과 파리, 2015년의 현재와 1997년의 과거를 오가며, <남산 시인 살인사건>은 1950년대 명동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이러한 시공간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뭔가. 이러한 설정을 저예산의 프로덕션 안에서 소화하는 데 무리는 없었나.

김희정_ 사회적 사건에 영향을 받는 개인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IMF 직전의 1997년과 파리 테러사건이 일어난 2015년이라는 시간대를 선택했다. 내 영화에서 시공간이 합일되지 않는 건 유학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설정인 것 같다. 생김새가 너무나 다른 사람들 사이를 걷다가 한국에 오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는 게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공간의 차이를 통해 나이듦과 젊음, 현실과 환상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영화의 예산이 4억원인데, 파리에 가기는 한다. 노르망디에 있는 ‘물랑 예술가의 집’(창작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을 세트로 대체할 수가 없어서다. 프랑스 느낌을 내는 공간을 국내에서 찾기 위해 박정훈 촬영감독(<악녀>(2017), <열세살, 수아>)이 수고가 많았다. 무엇보다 경기영상위원회 G-시네마의 제작·투자 지원으로 세트를 지을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저예산영화에서는 예산의 한계 때문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제대로 뒷받침해줄 공간을 구현하는 게 어려운데, 이번 영화의 경우 경기영상위원회의 지원금이 큰 도움이 됐다.

고명성_ 내게는 1950년대 다방이라는 공간이 매력적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이야기하는. 그런데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3년에 낭만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기에 더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아까 한국사 얘기를 잠시 했는데, 왜 우리가 아직까지도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울분을 토할까 생각했을 때 나는 그 시발점이 1950년대에 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남산 시인 살인사건>은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프리퀄이 되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문제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이 예산을 가지고 시대극을 찍는 건 무모하다고들 얘기하더라. 1950년대와 흡사한 공간, 장소가 남아 있지 않다보니 세트를 구현해야 했다. 최대한 제한적인 공간에서 영화적으로 어떻게 다양함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될 명동 다방은 커피향 그윽한 따뜻한 느낌의 공간으로 시작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차가운 정서를 가진 곳으로 변모하게 될 거다.

-다양성영화에 대한 제언을 부탁한다.

김희정_ <프랑스여자>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여성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이 세대 여성들이 누군가의 와이프나 연인이 아니라 완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를 맡기에 기존 상업영화 시스템은 한계를 보여왔다. 다양성영화에 대한 지원에는 메인 스트림에서 소화할 수 없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양성영화=저예산’이 아니라 감독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시네마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고명성_ 영화는 많은 자본이 드는 예술이기 때문에 사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상업영화 시스템이 점점 더 검증된 사람들만을 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친구들이 영화계 안으로 새롭게 진입하기란, 또 감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기란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본의 논리에 기대지 않는 국가적, 사회적 시스템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적어도 영화감독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겠나. 미국처럼 규모의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예술영화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 <프랑스여자>는 어떤 영화? 프랑스 파리에서 20여년을 산 40대 중반의 한국 여성 미라는 프랑스인 장 피에르와 이제 막 이혼한 상태다. 2015년 파리 테러가 벌어지자 미라는 통역 일이 줄어들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는 20년 전 덕수궁 안에서 함께 연극을 배우던 친구들을 만나는데, 오랜만에 찾은 단골 술집에서 미라는 서울과 파리의 시공간이 뒤섞이는 체험을 한다.

● <남산 시인 살인사건>은 어떤 영화? 1953년 늦가을, 어느 시인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명동 오리엔탈 다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살인사건의 수사를 맡은 육군 소속 김상사는 다방에 모여 있던 문인과 예술인들을 상대로 단서를 찾아 나서고, 사람들간의 갈등과 오해, 의심은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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