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G-시네마 9인 감독들①] 박정범 감독·이마로 감독·강동헌 감독 - 한국 사회를 담아내기 위하여
2018-08-1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이 세상에 없는> 박정범 감독·<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이마로 감독·<기도하는 남자> 강동헌 감독
박정범, 이마로, 강동헌(왼쪽부터).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박정범) “온전히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반갑고 기쁘다.”(이마로) 경기도 다양성영화 지원 사업 G-시네마의 제작·투자 지원을 받게 된 박정범, 이마로, 강동헌 감독은 ‘G-시네마’의 지원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현재의 열악한 제작 여건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신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쓴소리도 함께였다. 세 감독의 영화, <이 세상에 없는>과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남자>는 상업영화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한국 사회 속 개인이 마주한 위기를 대변하는 세 영화의 인물들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다양성영화의 뜨거운 에너지를 담고 있는 이들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 작품 모두 사회파 드라마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 영감을 준 특정한 사회적 사건이 있는지.

=박정범_ 차기작으로 10대 여자 역도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다가 그 나이 또래의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던 중 가출 청소년들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들이 매춘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시스템이 있더라. 포주는 바뀌는데 아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폭력을 써야 하는데 그 폭력은 개인의 도덕적 의지와 충돌하는 딜레마를 보았다. 2년간 사전 조사를 했음에도 걱정이 많이 된다.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어떤 것을 보여주면 안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마로_ 한국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루아침에 눈밖에 난 직원을 자판기 옆자리로 이동시켰다는 식의 일화가 많잖나. 언젠가 사무직 여자 노동자를 갑자기 남자들만 일하는, 육체노동이 필요한 현장으로 보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녀의 마음이 좀 이해가 되더라. 이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했던 건 그런 상황에 처한 이들이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였다.

강동헌_ 몇년간 상업영화 준비를 해오다가 지난해 3월 말쯤 최종 투자심사에서 떨어졌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끊임없이 반영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만들려던 영화와 저만치 멀어진 느낌이었는데 최종 심사에서 떨어지기까지 하니 억울하더라. 그래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예전에 짧게 써둔 메모가 있었는데, 영화감독과 개척교회 목사가 비슷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돈으로 인해 고통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 직업군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출 청소년, 결정권이 없는 사무직 여성,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목사.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을 영화가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박정범_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애정결핍자다. 이들이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란 질문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이제까지 내 영화에서 중요했던 질문은 ’누가 누구를 구원하느냐’였다. 이 영화의 세 인물은 누군가를 구원할 힘이 없고 구원을 시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과정 자체가 내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담아내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다.

이마로_ 영화의 롤모델인 분이 부당한 발령을 받은 뒤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했고 5~6년간의 투쟁 끝에 지난해 승소했다. 누군가는 사표를 내고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렸을 시간에, 불리한 상황을 감수하고 끝까지 가보려 했던 인물의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 영화에 “사는 게 다 알바죠”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요약하는 한 문장이 아닌가 싶다. 30대 중·후반의 여성이 삭막한 작업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난, 그 속에서 발견한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강동헌_ 처음에는 개척교회 목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갔다. 취재차 몇명을 만났는데 겹치는 이미지가 없더라. 배우 강동원을 닮은 분도 있고, 나와 비슷한 분도 있고, 연령대도 3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특성에 딱히 제약을 두지 않고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려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친구, 선배 등을 만나며 계속 돈을 구하는데 그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현실 중에서 결국은 현실 편을 들어주는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요즘 대중영화를 보면 수많은 직업이 등장하지만 늘 나와는 상관없는, 영화 속 인물들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은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결국 그건 내 모습이기도 할 거다.

-다양성영화의 제작 환경이 개선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나.

박정범_ 기준을 지키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현재 상업영화 현장은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지금의 독립영화판에서 이런 원칙을 지키면 영화를 아예 못 만든다. 현재 다양성영화에 지원되는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스탭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도 그들에게 독립영화의 열악한 상황을 강요하며 영화를 찍을 순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지 10년째인데 아직도 대학원생 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친구를 가르치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을 고려하며 이야기를 수정하고 있다보면 자괴감이 든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합당한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강동헌_ 지금의 다양성영화 제작 환경에서는 원칙을 지키면 감독이 빚을 지게 된다. 최저임금과 하루 12시간 작업시간을 지키면 당연히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10회차 이내로 찍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빚을 내서라도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상 중 나는 자의적으로 빚을 선택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고통을 덜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 <이 세상에 없는>은 어떤 영화? 부모를 잃고 세상을 등진 중년 남자와 경찰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 인형뽑기방 점원이 된 청년, 10대 가출 소녀의 기묘한 만남을 다룬 영화.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적 시스템과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 <무산일기>(2010), <산다>(2014) 등을 연출한 박정범 감독의 신작.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어떤 영화? 정리해고가 한창이던 어수선한 시절, 7년간 사무직으로 일한 정은이 현장으로 발령을 받으며 겪게 되는 일들을 조명한다. 갑자기 바뀐 업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성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영화 <소년 감독>(2007)을 연출하고 만화 <밝은 미래>의 스토리 작가로 참여한 이마로 감독의 영화.

● <기도하는 남자>는 어떤 영화? 개척교회 목사 태욱은 큰 돈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는 지인들에게 돈을 구해보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태욱은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된다. olleh국제스마트폰영화제 집행위원이자 <도화지: 두 번째 이야기>(2014), <아침>(2011) 등을 만든 강동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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