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툰에 대한 오해. 소재를 일상에서 찾으므로 스토리가 필요 없고, 그림을 못 그려도 된다. 작가의 일상에서 소재를 포착한 일상툰은 가끔 이렇게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일상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픽션이 아닌 일상만화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쉽게 흘려보내기 쉬운 매일의 시간 속에서 소소하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해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맞아 맞아, 나도 이런 일 있었어”라고 공감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은근 짜릿해>는 보통의 하루에서 약간 짜릿하게 기분 좋았던 순간들을 포착한 일상툰이다. 그 예시들은 ‘애걔?’ 싶을 만큼 평범하다. 냉장고 속 자투리 야채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배달의 유혹까지 이겨냈을 때, 맘에 쏙 드는 좋은 서적을 중고로 저렴하게 샀을 때, 마트에서 1+1의 유혹을 떨치고 메모지에 써간 물건만 샀을 때, 급하게 나왔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버스를 타서 약속에 늦지 않았을 때, 언젠가 쓸모 있을 것 같아 버리지 않았던 물건을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할 때… 등등. 진짜 별거 아닌 것 같은 에피소드들을 ‘은근씨’의 하루로 풀어낸 만화는 너무 내 이야기라 작가에게 표절 시비를 걸고 싶을 정도다.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착하고 긍정적인 에피소드들이 다소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의 하루에 작은 노력을 더해 조금 더 괜찮은 하루를 만들어내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다. 아, 일상툰으로 보였던 은근씨의 하루가 갑자기 연애물로 둔갑한 중간부터는 약간의 배신감과 두근거림이 동반되니 주의를 요한다. 혼자 살며 고양이를 키우는 은근씨에게 동질감을 느낄 때쯤, 갑자기 나타난 은근씨의 ‘썸남’이 바로 배신감의 원흉이다. 길냥이 밥을 챙겨주다 우연히 만난, 취향까지 통하는 이상형 남성과의 연애라니…. 일상툰인 줄 알았더니 판타지였다. 배신감 때문에 별점은 하나 빼겠습니다. 은근씨, 너마저!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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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짜릿해> 글·그림 슷카이 /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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