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 반스는 189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1920년대에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다. <나이트우드>에 영감이 된 셀마 우드와의 뜨거운 연애도 이 시기의 것이다. 한명은 시인, 한명은 조각가였던 둘의 연애는 9년간 이어졌지만 서로에게 비극으로 끝났다. 20세기 초 레즈비언의 연애라서가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같은 성정을 가진 두 예술가의 연애라서이다. 사실 주나 반스의 작품보다 작가 개인의 인생사가 독자에게는 더 흥미로울지도 모른다. 폴리가미(다자연애)를 추종했던 아버지 때문에 부모, 배다른 형제, 아버지의 연인들과 한집에서 자랐고 역시 아버지의 뜻으로 공교육을 받지 못했다. 집을 탈출해 학업을 이어갔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을 부양하기 위해 뉴욕 신문사들에 글을 기고해 돈을 벌었다. 자유와 예술을 좇아 파리로 떠났던 그가 파리에서의 경험과 사랑을 반영해 쓴 소설이 <나이트우드>다. 1936년에 출간된 퀴어 소설, 당연히 발간 초기에는 동성애를 연상케 하는 문장들이 대폭 삭제되어 출간됐다. 시인이었던 작가의 영향으로 <나이트우드>는 얼마쯤은 산문시처럼 읽힌다. 여자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소년의 몸을 지녔다’고 여기는 로빈 보트와 그녀의 남편 펠릭스 남작, 그리고 로빈을 사랑한 노라 플러드와 여장을 즐기는 산부인과 의사 매슈 오코너가 주요 인물들이다. 로빈은 주변 사람의 삶을 망가트린다. 그녀는 파괴자다. 이야기는 주로 밤에 진행되고, 인물들의 독백은 은유적이고 모호하다. 퀴어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솔직히 <나이트우드>에서는 로맨스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나 반스를 노라에, 그녀를 파괴하러온 ‘나의 구원자’에 셀마 우드를 대입시킨다면 소설이 훨씬 쉽게 읽힐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다. 이것은 20세기 초 각자의 삶을 살아갔던 개인주의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고통 속에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로빈과 노라가 상실한 것은 그들 자신이고 서로였다.
밤의 독백
위대함을 생각하는 건, 설령 그게 사방팔방 막무가내인 위대함이라 해도, 네모반듯 깔끔히 포장된 하찮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월등히 나으니까요.(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