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긍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불행한 비관주의자보다는 행복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신인 만화가 슷카이의 일상툰 <은근 짜릿해>의 주인공 은근씨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짜릿한 즐거움’을 찾는 데 도가 튼 능력자다. 저게 뭐 짜릿한 일인가 싶지만, 매일 조금씩 즐거운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은근씨의 일상은 첫장보다 마지막장에서 앞으로 나아가 있다. 반면 마치 비관주의자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우울한 밤이 계속되는 <나이트우드>도 소개해야겠다. 듀나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 주나 반스의 소설 <나이트우드>를 읽으며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가 연상됐다. 알다시피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기도 한 <핑거스미스>가 서스펜스가 추동하는 퀴어 소설인 반면, <나이트우드>는 그보다 더 시적이고 은유적이며 음울한 서정을 간직하고 있다. 성별, 계급, 이름으로도 가둘 수 없는 주인공 로빈은 자유롭지만 억압되어 있고 더불어 불행하다. 심리학자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호르몬의 거짓말>은 호르몬에 대한 ‘만들어진 인식’이 여성들을 억압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여성을 우울하게 하는 것은 호르몬이 아니라 젠더불평등이라고 명료하게 단정하는 문장을 읽고 한참 속이 후련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타임슬립으로 흑인을 노예로 사고팔았던 시대를 오가는 현대의 여성 다나가 주인공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낮에 길에서 강간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야만의 시대로 돌아간 다나는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차별과 공포, 위협을 몸으로 살아낸다. 다나가 그 시대를 오가며 느끼는 공포는 지금의 독자에게도 생생히 전달된다. 온탕과 냉탕, 혹은 낙관과 비관을 오가는 책들을 읽으며 꼭 평온한 평균치의 상태를 이룰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10월의 북엔즈 역시 키워드는 ‘여성’이었다. 일상에서 작은 행운을 찾는 여성 은근씨, 자신이 소년의 몸을 지녔다 생각하는 로빈, 여성은 호르몬에 지배당하는 감정적인 성별이 아니라고 말하는 여성,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흑인 여성의 자아를 스스로 지키려는 여성. 여성의 삶을 말하고 기록하는 책들 사이에서 10월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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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짜릿해> <호르몬의 거짓말> <나이트우드>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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