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은 일가친척을 일컫는 킨드레드(kinred)의 줄임말이다. 소설 <킨>의 내용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고. 1976년 6월 9일은 다나의 생일이었다. 약혼자 케빈과 동거를 시작한 다나는 짐 정리로 분주하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쓰러진다. 정신을 차리자 다나는 한 소년(루퍼스)이 호수에 빠진 것을 구해내고 있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그녀에게 총을 들이대고 다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다나가 타임슬립한 그곳은 1815년 메릴랜드주. 흑인이 노예생활을 하던 시대였다. 그녀는 매번 소년이 죽을 뻔한 상황에 과거로 소환되고, 자신이 죽을 뻔한 상황에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백인인 루퍼스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로 간 다나는 흑인 자유민인척하고 살아남는다. 그것은 백인인 케빈이 그녀와 함께 타임슬립을 경험하면서 그나마 가능해진 일이다. 케빈이 함께 과거로 돌아갔을 때, 케빈은 다나보다 수월하게 그 삶에 적응한다. “여긴 굉장히 살기 좋은 시대일 수도 있어. 여기에 머무는 게 얼마나 큰 경험일지 계속 생각하게 돼. 서부로 가서 이 나라의 건설을 지켜보고, 옛 서부 신화가 어느 정도 사실인지도 보고 말이야.” 케빈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다나가 느낀 당혹감이 전해진다. 죽도록 맞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간을 마음대로 팔아넘기고 강간할 수 있는 노예제가 존속하는 사회의 공포를 케빈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 시대 흑인 여성을 강간하기 위해 그 남편을 팔아버리는 일, 굴종시키기 위해(혹은 그저 돈을 얻기 위해) 그녀의 아이들을 남김없이 팔아버리는 일을 다나는 목격한다. 노예뿐 아니라 여성들의 지위가 낮은 사회. 오로지 폭력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다나는 경험을 통해 그 모든 것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돌파한다. 오싹할 정도로 생생하게, 과거의 야만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게 하는 소설.
야만의 시대
나는 눈길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 것 같더니, 세라의 눈동자에 깃든 표정은 어느새 슬픔에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이 죽고, 자식 셋이 팔려가고, 넷째에게는 장애가 있는데 그녀는 그 장애를 두고 신에게 감사해야 했다. 그녀에게는 화내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할 이유가 있었다.(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