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18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④] <스윙키즈> 강형철 감독 -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거야
2018-12-19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춤과 노래, 그중에서도 특히 흘러간 대중가요와 팝송은 강형철 감독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재료다. 그의 네 번째 장편 <스윙키즈>라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이번에는 배경에 삽입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를 택했다는 점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쟁과 춤의 조합이라니.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는 누가 봐도 춤과 노래와는 가장 거리가 먼 곳임에 틀림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에서 삶과 음악은 늘 가까우면서도 이질적인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전쟁통에도 심지어 포로수용소에서도 꿈을 꿔보겠다며 춤바람에 빠져든 군인들을 통해 강형철 감독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삶의 유형을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 <스윙키즈>라는 흥미로운 기획의 시작과 방향에 대해 직접 만나 물었다.

-장훈 감독의 추천을 받아 뮤지컬 <로기수>를 접했다고 들었다. 뮤지컬의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나.

=평소 내가 구상했던 것들이 신기할 정도로 그 안에 많이 담겨 있었다. 뮤지컬은 한마디로 이념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쟁통에도 행복을 찾기 위해 춤추는 사람들의 이야기. 평소에 춤영화도 하고 싶었다.

-이념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봐야겠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유라도 있나.

=어릴 적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전쟁통에 미망인이 되셨는데 재능도 많고 예쁘셨던 분이 4남매를 힘들게 키운 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그분의 삶이 안타까웠다. 도대체 왜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남은 사람들은 가족을 힘들게 이끌어가게 됐을까. 남은 사람들에 대한 삶을 할머니를 통해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이념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뮤지컬을 직접 각색하면서 고민한 작품의 방향은 무엇이었나.

=우선 신파로 풀고 싶지 않았다. 뮤지컬에는 형제애가 진하게 담겨 있다. 로기수의 형 로기진이 처음부터 등장해서 형제애를 강조한다.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의 특이함을 좀더 보여주길 바랐다. 이념, 성별, 인종, 언어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는 것을 극대화했다. 그렇다면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이 누굴까. 바로 로기수(도경수)라는 북한군 소년과, 포로들의 관리자였던 미국 흑인 하사 잭슨(재러드 그라임스). 두 사람의 버디무비로 가야겠다, 그들이 춤으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뼈대가 됐으면 했다.

-도경수 배우와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그는 로기수를 어떤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로기수가 어떤 인물이길 바랐나.

=대본에는 수용소를 휘젓고 다니는 망나니 같은, 그런 호기로운 느낌을 지닌 사람이길 바란다고 써놨었다. 도경수가 그 부분을 잘 캐치해줬다. 경수 뿐만 아니라 배우들 전체에게 줬던 기본적인 디렉션은 “감정을 표현하지 맙시다”였다. 춤영화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걸 나 스스로가 좋아하지 않고 또 강요당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타당성을 갖고 객관적으로 움직이자고 주문했다. 나머지 감정은 내가 콘티로, 촬영으로 알아서 표현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도경수 배우와 함께 뮤지컬을 관람하지는 않았나.

=대본을 다 쓰고 만났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누가 경수를 연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가만, 경수가 아니라 기수인데, 내가 이렇게 경수, 기수를 헷갈려 한다. 캐릭터와 똑같은 배우를 만나가지고. (웃음)

-배우가 원하는 로기수의 캐릭터 방향도 있었을 텐데.

=경수는 오히려 자신이 연기했던 전작 속 캐릭터와는 다르게 호방한 면을 주의깊게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친구가 변신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만드는 영화마다 음악 선곡이 독창적이다. <스윙키즈>에도 비틀스, 데이비드 보위, 베니 굿맨 등 팝송이 등장하는데 장면에 맞는 곡을 찾아두나.

=오히려 그 반대다. 평소 음악을 듣다가 어떤 장면에서 쓰면 좋겠다고 생각을 모아놓고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아이디어를 꺼내서 적용한다.

-비틀스측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곡 사용을 허락해줬다고.

=비틀스의 노래는 운이 좋아야 쓸 수 있다고 하더라. 영화도 안 봤는데 텍스트만으로 주제의식을 공감해줘 고마웠다. <Free as a Bird>라는 곡의 가사가 주는 의미도 의미지만 곡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예전부터 어떤 영화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을 하나로 엮어주는 엔딩곡으로 이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가 흐르면서 로기수와 양판래(박혜수)가 춤을 추며 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나쁜 피>(1986)에서 안나(줄리엣 비노쉬)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 알렉스(드니 라방)가 라디오에서 <Modern Love>가 흐르자 골목을 뛰쳐나가 질주하던 장면의 오마주인가.

=<프란시스 하>(2012)에서도 같은 장면을 오마주했는데 <나쁜 피>의 그 장면이 <Modern Love>의 페이소스를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다. 드니 라방의 터질 듯한 감정을 담은 장면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존경하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두 사람의 교차편집 방식을 쓰는 식으로 업그레이드해서 표현했다.

-전체 음악 저작권료로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출했나.

=정확한 금액은 잘 모르겠다. <써니>(2011)가 7년 전 당시에 한국영화로서는 음악 관련 저작권료를 가장 많이 쓴 영화였다고 하는데 이번에 내가 그것을 경신했다고 하더라. (웃음)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의 역사적인 고증도 거쳤어야 했을 텐데 실제 사료가 남아 있던가.

=찾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찾았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의 자료들도 찾아봤고 실제로 수감됐던 목사님의 증언도 참조했고 증언록 같은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았다. 수용소 운동장에 있던 자유의 여신상은 실제로 있었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춤이라는 판타지적인 혹은 뮤지컬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기본 배경은 고증을 철저히 가고자 했다.

-전작을 통틀어 가장 직접적으로 아이러니를 전달하는 대사가 많은 듯하다. 특히 “퍼킹 이데올로기”라고 외치는 대사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힘을 실어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한 대사가 있다면.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접 해라.” (웃음) 실은 그보다는 대사 대신 춤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은유적인 장면이 많기 때문에 감정을 대사로 전달해야 할 때엔 직접화법을 써서 전달하면 균형이 맞겠다 싶었다. 만철이 기수에게 “나라 가르고 사람 죽이는 게 미친 거지”라고 말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한 대사다.

-도경수 배우가 로기수를 표현하는 장면 중에 장난꾸러기의 면모가 인상적으로 표현된 장면 중 하나는, 춤을 그만두려고 하다가 댄스단원들로부터 “네가 춤 대장이잖아!”라는 칭찬을 받을 때의 클로즈업된 표정이다.

=콘티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로기수의 모습을 그려놓았었다. 극중 로기수의 표정이었는데 경수가 그것을 보더니 콘티의 그림대로 비슷한 뉘앙스로 표정연기를 지어 보였다. (웃음)

-로기수가 탭댄스를 출 때는 다른 캐릭터가 출 때와 달리 몸동작이 크고 특히 손동작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던데.

=로기수는 과거에 북에서 러시아의 민속춤인 칼린카를 배웠다는 설정이 있다. 칼린카가 발레의 일종인데 경수가 춤을 워낙 잘 추기도 해서 아무래도 상체를 많이 써야 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밀정>(2016), <남한산성>(2017)의 김지용 촬영감독과 작업했다. 한시도 카메라가 가만히 있질 않는다고 해야 할까. 음악과 함께 카메라도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우리끼리는 지용이라서 지디라고 부르는데. (웃음) 전부터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촬영감독이었다. 우선 무빙이 많고 색감이 특이하다. 춤 장면을 찍을 때는 촬영감독도 댄스단의 일원이 되어 움직여줘야 한다면서 박자감에 대해 혼자 공부를 엄청 하더라. 촬영장에서 나 몰래 혼자 춤추듯 동선 짜고 하는 모습을 몇번 봤다. 조명은 화려하게 다룰 것 같았는데 멋부리는 장면이 많지 않다. 기본 조명만으로 찍은 장면이 대부분이다. 촬영과 조명 모두 뻔한 거 하지 말자, 너무 안정적으로 가지 말자는 방향이 있었다.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영화의 첫 무도회 장면은 본격적인 톤 앤드 매너를 마치 선언하듯 보여준다. 로기수가 칼린카를 추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앞으로 적절한 판타지가 섞일 예정이니 대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며 봤는데 예상만큼 판타지가 강조되지는 않는다.

=너무 막 나가지 말자는 뜻이었다. 이와 관련해 <스윙키즈>에서 뮤지컬의 재해석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를테면 뮤지컬에서 대사를 하다가 노래로 이어지는 특징이 있잖나. 우리는 시대에는 맞지 않으나 인물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튀어나와 관객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해보고 싶었다. 보위의 <Modern Love>나 정수라의 <환희>가 쓰인 장면 등 곳곳에 뮤지컬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초반에 톤 앤드 매너를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었다.

-로기수의 꿈을 방해하는 인물이 두명 등장한다. 광국(이다윗)의 갑작스러운 등장 이후에 형인 로기진(김동건)이 뒤이어 등장하는데, 갈등의 양상이 다르긴 하지만 악역이 분산되는 느낌이 드는 인물 배치라는 우려는 없었나.

=두 사람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바가 분명했다. 광국을 통해서는 잃어버린 자기 청춘에 대한 분노, 허무한 복수 같은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에는 꿈이 꺾인 기수를 다시 한번 힘들게 할 끝판왕의 등장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광국이나 로기진 두 사람 중 한명에게만 임무를 줬다면 효과를 보긴 어려웠을 것이다.

-광국의 등장 이후에는 좌충우돌 댄스단이 과연 꾸려질 수 있을지, 그들의 연습에 주목하던 초반의 정서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광국의 등장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실험은 플롯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념이란 것은 해방 이후 갑자기 들이닥쳐 나라를 갈라놓고 부모와 형제를 원수로 만들지 않았나. 댄스단원이 서로 어떠한 준비도 없을 때에 캐릭터가 치고 들어와서 서로를 위협하는 이념의 공포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예전에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3)를 보는데 주인공이 도중에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받은 기억이 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이념의 실체를 극의 호흡상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새로운 얼굴의 조연배우를 찾아냈다고 해야 할까. 만철 역의 이규성, 샤오팡 역의 김민호 등 신인배우들의 할약이 돋보인다.

=김민호는 오디션에서 알게 됐다. 춤을 잘 추는 통통한 배우가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몇번의 오디션을 거듭하는 동안 점점 살이 쪄서 오더라. (웃음) 고등학생 때 댄스동아리를 한 경험도 있던 터라 점점 적역이 되어간 경우다. 만철 역의 이규성 배우는 원래 다른 단역으로 캐스팅됐었다. 촬영을 며칠 앞두고 만철 역을 캐스팅하지 못해 고민하던 와중에 가까이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 발탁한 배우다. 비록 단역배우일지라도 얼마나 훌륭한 배우들이 숨어 있는지를 그가 방증해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주연배우들을 찾을 때 연기만 되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배우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 <과속스캔들>에서 차태현은 노래하는 배우이고, 박보영은 직접 노래를 했고, <써니>의 배우들은 전부 춤도 춰야 했다. 심지어 <타짜-신의 손>에서도 최승현은 가수였다. 배우들을 볼 때 어떤 지점에서 보나.

=할리우드 배우 중에는 춤과 노래, 악기 등 다방면으로 잘하는 배우들이 많다. 한국 배우들도 그들 못지않게 충분히 다재다능한 면을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그들을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장르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오히려 역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윙키즈>는 여러 배우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강형철 감독의 시그니처숏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 변화를 보여주는 패닝숏이 언제 등장할까 궁금했는데 후반부를 멋지게 장식한다.

=가진 밑천이 별로 없어서 이번에 또 써먹었다. (웃음) 장면 전환을 다루는 패닝숏은 특히 좋아하는 장면 언어다. 무언가를 함축해서 보여줄 수도 있고, 시각적인 재미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윙키즈>가 다루는 춤과 전쟁이라는 소재는 전작들과 단순 비교해봐도 가장 무겁고 어두운 정서적 기반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야 했을 텐데, 되돌아보면 이번 영화는 어떤 작업이었다고 여겨지나.

=춤도 전쟁도 모두 새로 해보는 영역이어서 신인감독과도 같은 자세였다. <스윙키즈>는 반전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직접화법으로 서로 안 어울릴 법한 춤과 전쟁을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데 써먹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전쟁을 이야기할 때 수치로 피해 규모를 말하는데 그보다는 내 주변 인물 중 한명이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사실이 더욱 참혹하게 다가오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댄스단원들의 이야기를 더욱 사랑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영화의 배경이 전쟁영화라는 것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고, 이런 일을 실제로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한때 꿈을 가졌던 댄스단원들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나.

=나도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궁금하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이것저것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다. 어울리는 노래도 생각나고. 춤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열망이 로기수를 만났던 것처럼 이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틀이 잡히면 또 뭔가 시작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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