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18 겨울 블록버스터 한국영화②] <마약왕> 우민호 감독 - 파멸의 인물을 통해 보여준 부패의 시대
2018-12-19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신나게 찍었다.” 우민호 감독은 몸은 힘들지만 <마약왕>이 배우와 스탭 모두가 만족한 현장이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장장 6개월간 100회차 촬영을 마친 <마약왕>은 1970년대 초 부산 지역에 실재했던 거대 마약 유통 사업의 중심에 있던 ‘마약왕’ 이두삼(송강호)의 10여년간의 행적을 그린 시대극이다. 이두삼의 성공과 몰락 과정은, 부패한 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 그 자체다. <내부자들>(2015)의 700만 관객에 감독판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2015)의 200만 관객까지 더하는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우민호 감독에게 <마약왕>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차기작인 <남산의 부장들>의 부산 촬영으로 한창인 우민호 감독을 잠깐 짬이 난 틈에 만났다.

-다시 또 한편의 청소년 관람불가(이하 청불) 영화로 연말 개봉을 기다린다.

=<내부자들> 이후에 청불 영화는 만들지 말아야지 했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 ‘청불 감독’으로 유명해서 얼른 벗어나야 하는데. (웃음) 물론 이 영화를 ‘세게 가야지’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내부자들>이 권력을 악용한 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 세게 한번 보여줘야지 하고 작정하고 매달렸다면, 이 영화는 단 한순간도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고자 했다면 오히려 <마약왕>을 하지 않았을 거다. 자연스럽게 살짝 느슨한 마음으로 힘을 빼고 매달렸다. 방향을 잡기까지 배우들의 영향도 컸다.

-지난 이맘때쯤 후반작업할 때 만났다. 당시 인터뷰에서 “찍은 걸 들어내야 하는 고통이 크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에픽 영화가 가지는 편집의 어려움을 몸소 체감했을 것 같다. <내부자들>의 순서 편집본이 3시간40분이었는데 이번엔 어느 정도 분량이 나왔나. 최종 러닝타임이 139분이 나왔는데, 감독판을 더 기다려야 하나.

=인물이 상당히 많고, 그 많은 인물들을 아우르며 가야 하니 만만치 않더라. 그래도 순서 편집본이 <내부자들> 때보다는 10분 줄어 3시간30분이 나왔다. (웃음) 뭘 가지고 가냐, 포기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산만한 부분을 최대한 줄이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더 선명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난해 10월 크랭크업을 했는데, 연말 개봉이니 개봉이 늦어진 데는 그런 이유도 있나.

=방대한 분량만큼 편집 시간이 길어졌다. 후회 없이 편집했다. <마약왕>의 영화적인 톤이 겨울과 맞는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였다.

-<내부자들>이 호평과 흥행을 거듭하면서 <마약왕>에 긍정적으로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나. 전작의 부진 이후 만든 <내부자들> 때보다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을 것 같다.

=시대극이 워낙 물량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 데다 애초 태생부터 청불 등급으로 갈 수밖에 없는 영화였는데, 고민 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내부자들>의 흥행 덕분이었다. 총 100회차에 공간이 계속 바뀌니 미술 작업량도 엄청났다. 인물의 서사를 10년 가까이 따라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몽타주 신만 총 4번 나오는데 영화에서 1, 2초 나오는 장면도 찍을 때마다 공간을 다 달리해서 가는 거라 볼거리들이 압축되어 있다.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처음 소재를 접한 건 <내부자들> 촬영 때였다. 김원국 대표(<내부자들>을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1970년대에 그 정도 규모의 마약 유통 사업이 있었다는 게 가능한 건가? 억압이 극에 달한 유신시대인데 그런 불법 유통이 허용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커지더라. 그래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를 하다보니 ‘그 시대라서’ 정치권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때라 오히려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둘 드러나더라.

-에픽 형식의 스토리라인, 마약을 중심으로 한 범죄자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대부>(1972)와 <스카페이스>(1983)에 한국적인 서사와 캐릭터를 가져오는 시도이자 욕망으로도 읽힌다. 앞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나 유하 감독의 <강남 1970>(2014)도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점차 범죄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인물들의 욕망을 그린 작품이었다. 어떤 톤을 염두에 뒀나.

=두 영화 모두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욕망을 그린 작품이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마약왕>과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마약왕>도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잘 살아보자’는 화두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 미명하에 잘못된 것들도 그냥 눈감고 살았던 시대다. 당시 건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그 시대에 함께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부>나 <스카페이스>는 훨씬 더 장중한 이야기다. (송)강호 선배와 내가 이야기한 이두삼은 달랐다. <마약왕>의 색깔을 규정 짓는 캐릭터인데, ‘너무 엄숙주의에 빠지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무게를 덜고 가자는 거였다. 그런 면에서 톤은 마틴 스코시즈의 <카지노>(1995)나 <좋은 친구들>(1990)을 더 염두에 두었다. 그 시대의 에너지와 생기를 담아 촬영방식, 음악의 사용을 만들어갔다.

-<내부자들>의 원작은 웹툰이었다.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적 결말을 만들었다면, <마약왕>은 당시 실제 사회문제로 대두된 ‘마약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원작이 있는 작품과 실제 사건이 있는 작품의 접근법이 달랐을 텐데.

=<내부자들>에서 많은 분들이 별장 성접대 신의 경우 감독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원작 그대로였다. 원작이 있어서 구현이 더 힘들었다. 반이라도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마약왕>은 당시 자료가 많긴 하지만 좀더 자유롭게 썼다. 특정 사건을 그렸다기보다 한 인물을 좇아가는 가운데 그 인물의 흥망성쇠를 담은 거라 창작의 여지가 더 허용되더라.

-시나리오 취재 과정도 궁금하다. 당시 기사에 언급됐던 인물들을 만나보았나.

=시나리오 쓰기 전에 미리 진행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그려볼 법한 범법자 ‘마약왕’처럼 안 생겼다. 마약왕이라고 알고 보니 마약왕이지 모르고 보면 평범한 사람과 구분이 안 가겠더라. 당시 히로뽕 제조 유통업에 있었던 업자들이 위장 신분이었고 대부분 중독자였다. 그중 유명했던 사람이 있는데,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직접 하나하나 맛보다가 중독됐다고 하더라. 이들이 신기한 게 ‘수출이 국력이다’라고 믿는 시대를 살았고, 인터뷰를 보니 자신들의 행위가 ‘진짜 애국’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는 거다.

-‘마약왕’이라고 수식되는 이두삼의 실제 모델이 있었나. 당시 마약 거래를 하던 실존 인물들을 조합했을 것 같은데.

=70년대는 말 그대로 ‘밀수전성시대’였고, 초반에는 엄격하게 규제하는 분위기였다. 범법자들이 감옥 가서 들은 이야기가, ‘일본에 히로뽕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에서 처음 히로뽕이 개발된 게 2차대전 때였다. 가미카제 특공대가 맨 정신으로는 할 수 없으니 군인들의 고통을 잊게 하려고 만들었다는 것, 군수품 생산을 밤새 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준 게 히로뽕이었다고 한다. 막상 전쟁이 끝나고 중독자들만 남은 거지. 그래서 당시 일본은 국가적으로 엄격하게 히로뽕을 규제했고, 제조를 하다 걸리면 사형선고를 받을 때였다. 그러니 한국에, 특히 부산에서 O.E.M 방식으로 제조를 하게 됐던 거다. 그렇게 히로뽕에 눈뜨는 계기가 된 거다. 유통 사건의 중심을 조사해보니 부산 지역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여럿 있더라. 그 여러 명의 특성을 모티브 삼아 이두삼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이두삼의 10년을 돌아보면 가족을 건사하는 가장에서부터, 밀수를 저지르는 다소 소박한 범죄자, 그리고 대형 마약 유통업에 종사하는 거물급 야심가로 변모하고 이후 점차 파멸의 길에 들어선다. 지난 송강호 연기의 연대기와도 같을 정도로, 100회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두삼을 어떻게 그릴까, 처음에는 복잡하게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가보자, 굳이 힘을 주고 가기보다는. 찍으면서 톤을 하나하나 잡아갔다. 무엇보다 배우 송강호를 믿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카페이스>와는 다른 한국적인 마약 소재의 영화가 나와야 하고, 실제 똑같은 사건이 아니지만 당시 실재했던 대규모 마약 유통업을 바탕으로 한 거라 당시의 사건들을 연상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걸 송강호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 채워줬다. 많은 감독들이 배우 송강호와 작업을 꿈꾸는데, 이번에 정말 행운처럼 함께하면서 그게 무엇인지, 그 저력을 확인했다. 특히 후반부 중독자의 모습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강호 선배에게서 지금까지 어떤 작품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 나오더라. 놀라웠다. 자신만의 다른 결을 찾아가더라. 이두삼은 나쁜 인물이지만 거부감이 드는 인물로 치부해버리지 않도록, 그 인물이 겪었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배우의 해석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마약 거래로 일본까지 배경이 확장된다. 야쿠자와 대결까지 펼치는데.

=찍을 때도 조심스러웠던 게 이게 ‘조폭 액션’류로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였다. 이두삼의 액션 신에서는 일종의 액션물보다는 그의 모험담처럼 톤을 잡았다. 일반적인 액션영화라면 액션을 강화하고 긴장감을 주고 박력을 더했을 텐데 오히려 액션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쓰고, 동작에도 전혀 기교가 없고 이두삼이 싸움을 잘하지도 못한다. 보면서 피식피식 웃을 수 있는, 마약 밀매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그런 모습을 담으려 했다.

-송강호 배우와는 작품으로는 처음 만나는데, 원래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다.

=중앙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당시 런던에서 한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에 단편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2000)를 출품했는데, 그때 심사위원으로 박찬욱 감독님과 강호 선배가 초청되었다. 상금이 2천만원이나 되는 대상을 탔는데, 하필 그때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여서 직접 상을 받지는 못하고 전달만 받았다. ‘언젠가 내가 당당해지면’, 꼭 그때의 인연을 이야기해야지 했다가 이번에 첫 촬영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했다. (웃음)

-이두삼이 밀수에 가담하고 처음 마약에 손대면서 벌어지는 초반의 경쾌한 톤을 히로뽕의 중독성, 어두운 색채보다 ‘뽕끼’라는 조악한 단어가 연상된다.

=‘뽕삘이 난다’ 이런 속어를 쓰는데, 전반부에 이런 분위기를 살려주려고 했다. 노래도 김정미의 <바람>을 썼다. 음악감독과 듣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 ‘바람같이 날아 아무도 몰래 그를 지켜보며 날아가고파’라는 가사도 흥망성쇠를 겪는 이두삼 캐릭터와 딱 맞더라.

-오히려 촬영은 기교와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걸 택했다. 카메라 한대를 써서 촬영했다고.

=애너모픽렌즈를 써서 한대로 했다. 보통은 두대를 쓰는데, 이 영화는 최대한 정직하게 찍어보자는 생각에 하나의 카메라로 갔다. 전체 톤은 최대한 화려하게 가려고 했는데, 그 화려함이 ‘촌발 날리는’ 그런 톤을 염두에 둔 거였다. 붉은색 같은 원색도 과감하게 썼다. 몽타주 신이 크게 4번이나 있어서 그 장면을 어떻게 할지가 전체 영화의 톤을 결정하게 되겠더라. 잘못 찍으면 평범하고 지루해지는 장면이라 이걸 어떻게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부자들>의 우장훈 검사(조승우) 역은 원작에는 없고 새로 창작한 캐릭터다. 우장훈 검사가 깡패 안상구(이병헌)와 완전한 대치,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면, 이번에는 이두삼을 견제하는 우장훈 같은 포지션의 김인구 검사(조정석)가 한발 물러서 온전히 이두삼 중심으로 간다. 그게 영화의 톤을 바꾸는 결정적 지점이기도 하다.

=<내부자들>처럼 대결 구도를 피했다. 김인구 검사에게 이두삼은 잡아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마약왕’이라는 이 사회의 변종 괴물을 바라보는 ‘제3자의 눈’이기도 했다. 김인구 검사의 입(내레이션)을 통해 이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가 설파되는 구도를 취했다. 1970년대, 시류에 편승해 죄를 짓는 이두삼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타협하지 않고 할 일을 하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김인구의 말이 앞서면 너무 거창해질 것 같아 중요한 이야기이되 힘을 빼고 하길 바랐는데, 정석씨가 잘해줬다.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지켜준 거다. 기존에 도드라진 연기를 하던 정석씨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내부자들>의 결말은 부패한 관료를 단죄하는, 장르적 통쾌함으로 나갔다. 현실은 씁쓸할지언정 일종의 ‘힐링 쾌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번은 명백히 실패한 이두삼의 서사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다르다.

=영화뿐만 아니라 내 삶에 있어서도 <내부자들>은 일종의 힐링이 됐다. (웃음) 현실과 다른 판타지적인 면모를 충분히 부각하려고 했다. <마약왕>은 ‘추락’의 이미지를 염두에 뒀다. 정점에 있던 사람이 추락하는 걸 볼 때 그 안에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상승해서 올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어떻게 추락할 것인가 그 모습을 보는 게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

-마침 지금 촬영 중인 <남산의 부장들>도 <마약왕>과 같은 1970년 남산 중앙정보부 고위급들이 꾸미는 정치적인 밀약을 소재로 한다. <내부자들>에 이어 부패한 사회의 조명이기도 하고, 또 <마약왕>에 이은 1970년대가 배경이다. 그 시기를 연달아 조명하는 이유와 더불어 어떻게 반추할 생각인가.

=1970년대라는 ‘부패의 시대’가 가진 속성이 영화적으로는 상당히 매력 있는 시기임에 분명하다. 지나고 보니 내 아버지가 한창 활동했던 70년대는 격변의 시대였고, 그 시기에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거였을까,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땠을까 싶더라. 내가 1971년생인데 당시 9살 정도였고, 어려서 그 분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를 찍다보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더라.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 인물들의 파멸을 따라가지만 찬란한 시절을 담고 싶었다. 이두삼은 단칸방에서 음악 틀어놓고 가족들이랑 막춤을 출 때가 가장 행복했을 텐데 거기서 멈추지 못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시대, 70년대가 그런 시대였지 싶다. 왜 저 사람은 파멸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런 것들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으면 좋겠다. 관객에게 이두삼이 어떻게 남을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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