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락’(The Fall)이란 재앙을 겪은 지구는 초토화되고 기술 문명의 발전이 멈춰버렸다. 하지만 인류는 살아남아 폐허 위에서 또 다른 문명 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하고 사이보그 기술에 의존해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고철도시에 머물며 지식과 부를 가진 자들이 산다고 전해지는 하늘 위에 떠 있는 공중도시 자렘을 우러러보며 산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필생의 프로젝트로 알려진 <알리타: 배틀 엔젤>이 제시하는 미래는 암울하다. 그 속에서 생명 연장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웅이 탄생하니, 바로 10대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다. <아바타>(2009)를 탄생시킨 시각특수효과(VFX)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알리타는 제작 발표 때부터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까지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원작인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 속 캐릭터 ‘갈리’의 외형을 그대로 옮겨온 탓에 언캐니밸리(인간과 똑같이 생긴 다른 존재를 볼 때 느끼는 어색함과 불쾌감)를 느끼게 하는 눈의 크기가 부자연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후 제작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최종 완성된 알리타는 역대 CGI 캐릭터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알리타의 외모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은 어쩌면 이번 영화에서 꼼꼼한 각본 작업보다도 더 중요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공중도시 자렘에서 지상에 버린 쓰레기 고철 더미에서 기계 조각을 찾아낸 이도 박사(크리스토프 발츠)가 만들어낸 알리타가 처음 눈을 뜨는 순간, 관객이 그 존재 자체만을 보며 감정이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리타의 눈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이 영화는 알리타의 눈으로 보는 이야기다. 알리타의 시선에는 순수함이 있다. 그것은 촉감이 느껴지고 몰입하게 만들며 예기치 못한 순간이 있고 여러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다”라고 했다. 한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여러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원작 만화 <총몽>을 접한 계기를 밝힌 적 있는데, 그는 수십여년 전 알리타의 이야기에서 미래를 배경으로 모험과 액션, 자유를 향한 갈망과 자아의 발견이란 보편적인 메시지를 찾았다고 한다.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야기였다. 특히 작품을 볼 당시에 내 첫딸이 어려서 더 강하게 반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훌륭한 여성 임파워먼트 스토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알리타는 자신의 아버지 같은 존재 이도 박사 외에 헌터워리어라 불리는 사이보그 전사들과 또래 청년 휴고(키언 존슨)를 만나 온갖 일을 겪는데, 그녀가 얽히는 관계는 대부분 슬픔과 고통을 남긴다. 존 랜도 프로듀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두 가지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다. 알리타를 고쳐준 아버지 같은 존재인 이도와의 사랑, 그리고 사이보그 부품을 훔치며 살아가는 거리의 소년 휴고와의 사랑이다.”
알리타가 광전사(Berserker) 슈트를 구해 입고 악당들과 맞서 싸우거나 모터볼 경기에 참여하는 과정은 알리타로 하여금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한편,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블록버스터영화의 좋은 재료가 된다. 특히 광전사 슈트를 입은 알리타의 모터볼 경기 액션은 할리우드영화가 이뤄낸 또 하나의 성취다. 페이셜 퍼포먼스 시스템, 디지털 캐릭터를 실시간으로 배우에게 겹쳐주는 시뮬캠(Simulcam) 시스템 등을 비롯해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제작사 라이트스톰, 웨타 디지털이 <아바타>를 위해 개발한 모든 기술을 동원해 만들어낸 액션이기에 관객을 더욱 만족시킬 것이다. 경찰이 범죄를 막아주던 시대는 지나고 헌터워리어들이 골목을 누비며 범죄자 소탕에 열을 올리는 시대에 알리타와 이도 박사, 휴고와 대척점에 선 캐릭터는 공중도시 자렘에 오르는 열쇠를 쥐고 있는 벡터(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심복으로 하수구에서 자란 사이보그 그레위시카, 그리고 사이보그 헌터워리어 자팡 등이다. 그중 그레위시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무기 그라인드 커터를 장착하고 있어 알리타에게 큰 위협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큰 위협에는 큰 승리가 따르는 법. 알리타는 이겨낼 것이고, 할리우드가 이룩한 또 하나의 성취를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 작가 기시로 유키토의 원작 만화 <총몽>
199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사이버펑크 장르의 만화로 1부에 해당하는 9권의 이야기 <총몽>이 있고, 속편에 해당하는 <총몽 라스트 오더>가 완결됐으며, 단행본 <총몽 라스트 오더 외전>이 있다. 모두 서울문화사에서 정식 출간됐고, 마지막 시리즈로 알려진 <총몽 화성전기>는 현재 연재 중으로 출간 미정이다. 이 만화는 두편의 단편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북미 지역에는 <배틀엔젤 알리타>란 제목으로 소개됐다. 기예르모델 토로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꼭 보라며 건넸던 VHS 비디오가 바로 이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만화 <총몽> 1권에서 3권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총몽> 1권은 주인공 갈리, 즉 알리타가 자신을 살려준 이도가 자기 몰래 헌터워리어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질 나쁜 헌터워리어들과 싸우는 이야기고, 2권은 자렘으로 가고 싶어 하는 휴고와의 슬픈 러브스토리, 3권은 이도 곁을 떠나 모터볼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 만화의 액션은 기괴한 디자인의 사이보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알리타가 헌터워리어들과 싸우다가 사지가 잘려나가고 몸통이 부서진 가운데 한팔로 지탱해 필사의 전투를 벌이는 장면 등은 원작의 정서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작가 기시로 유키토는 알리타를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느냐의 문제를 더욱 강조”하는 캐릭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