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 연휴 영화③] <뺑반> 한준희 감독 - 카체이싱이라는 장르, 경찰이라는 리얼리티
2019-01-30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형사물과 카체이싱의 결합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뺑소니 사고를 전담하는 경찰 특수반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 <뺑반>은 당신의 예상을 기분 좋게 비껴갈 것이다. <차이나타운>(2015)에서 누아르의 전형을 신선하게 비틀어낸 바 있는 한준희 감독은 이번에도 익숙한 장르의 결합에서 기어코 새로운 지점들을 찾아내 선보인다. <뺑반>은 장르와 리얼리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시도하는 영화다. 대규모 추격전이나 현란한 카체이싱 장면이 시각적 쾌감을 극도로 추구하는 가운데 경찰들의 고달프고 열악한 수사 환경과 투철한 직업정신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인, 사람의 얼굴을 한 카체이싱 액션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형사물, 카체이싱 모두 한국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뺑소니 사고만 다루는 경찰 특수반을 조명한 건 처음이다.

=일상에서 뺑소니는 심각한 범죄지만 영화에서는 마약, 기업 비리 등에 비해 대수롭지 않게 그려지곤 한다. 뺑소니는 현실에 밀착된 무서운 사건, 사고이고 그런 부분을 다뤄보고 싶었다. 김경찬 작가의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 것은 직업에 대한 관심이었다. 형사물, 카체이싱 등 장르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속 경찰은 멋있거나 나쁘거나 무능하거나 셋 중 하나로 정형화되어 있다. 실제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를 파보고 싶었다. 특히 뺑소니 전담반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검거율 100%를 자랑하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다.

-<차이나타운>에서 누아르의 공식을 비틀었다면 <뺑반>에서는 카체이싱물의 공식을 뒤집는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걸 찾아내는 방식에 유독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차이나타운>도 출발은 사채업이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뺑반>은 형사물이 아니라 경찰에 대한 영화다. 장르는 부차적인 문제다. 기존 카체이싱이나 형사물에서 익히 봤던 장면이나 설정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건 인물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핵심은 인물 한명 한명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그 다양한 표정들 안에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거였다. 말하자면 이건 경찰이라는 직업과 경찰관이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기존 카체이싱 연출이 장르의 쾌감과 속도에 주로 집중했다면 <뺑반>은 대규모 추격전이나 현란한 레이싱 기술을 자랑하는 장면뿐 아니라 진짜 현실을 넘나드는 위험과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보다는 <베이비 드라이버>(2017)처럼 클래식하고 사실적인 카체이싱에 가깝다. 갑자기 비행기에서 차를 떨어트리거나 하진 않는다. (웃음) 한국의 도로에서 가능할 법한 상황들을 그렸고, 컷을 잘게 쪼개 속도감을 높이는 대신 롱테이크로 전체적인 동선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였다. 무조건 스피드를 올리는 것보다는 완급 조절과 리듬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건 다양한 목표와 사연을 가지고 충돌하는, 서로 다른 속도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재철 역의 조정석은 연기 인생 처음으로 신선한 악역을 선보인다.

=조정석 배우는 10년 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봤을 때부터 팬이었고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이걸 누가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복잡한 악역이었는데 너무 잘 소화해줘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이유 없는 악에는 관심이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지는 복합적이고 아이러니한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보기에 따라선 관객의 동의를 구할 수도 있는 양면성이 필요했기에 악역을 안 해본 사람이 했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조정석 배우는 실제 F3머신 주행을 배워서 소화하는 등 다방면으로 열정을 보여줬다. 이런 배우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건 감독으로서 행운이다.

-좌천되어 내사과에서 뺑소니 단속반으로 배치된 은시연은 원리원칙주의 형사로 나온다. 공효진 배우가 형사로 출연한다니 어떤 독특한 얼굴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공블리’로 유명하지만 사실 은시연이 공효진 배우의 실제 성격과 가장 가깝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새로운 모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어찌 보면 만화적인 상상력이나 과장된 부분도 있는데 공효진 배우가 화면에 있는 것만으로 진짜로 일어날 법한 일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배우로서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알고 보면 경찰대 수석 출신인 뺑반의 리더 우 계장(전혜진)이나 내사과 과장 윤지현(염정아) 등 영화 속 능력 있고 소신 있는 경찰들은 대개 여성인데, 아직은 덜 성숙한 은시연이 뺑반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민재(류준열) 순경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뺑반의 에이스다. 직감과 추리력으로 사고 현장을 시뮬레이션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드라마 <셜록>이 생각나게 한다.

=셜록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초능력자는 아니다. 다만 사건을 너무 많이 접해서 척하면 척하고 답이 나오는 전문가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뺑반의 경찰들이 그랬다. 일상의 고수랄까. 대한민국에는 서민재 같은 사람들이 많다. 결국 뺑반은 평범한 소시민들이 본인의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그 중심에 서민재가 있다. 류준열은 진지한 태도로 영화에 대해 세밀하게 연구해오는 배우다. 어떨 땐 나보다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시간과 경험을 거쳐온 베테랑 배우 같은 든든함으로 모두를 보살핀다. 현장에서 다들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카체이싱은 단순히 차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아니라 자동차에 타 있는 사람의 감정까지 자동차의 움직임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조정석 배우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의 문제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핸들을 붙잡고 있을 때와 쫓기고 있을 때는 다르지 않나. 그 감정 상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운전자의 얼굴을 인서트 컷으로 빠르게 집어넣기도 하고 자동차의 동선에 담긴 느낌들을 롱테이크로 찍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차가 나오는 장면은 사실적인 표현에 충실했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도로를 만들어서 찍을 수는 없으니까. (웃음) 솔직히 자동차가 나오는 장면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힘들었다. 하루 종일 세팅하고 딱 3초밖에 찍지 못할 때도 많았고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됐다. 아, 말하다 보니 그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웃음) 액션팀부터 조명팀 막내까지 모두 전문가들이었기에 그들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찍었다. 영화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결국은 앙상블이다. 장르적인 요소는 그런 지점들을 배가해줄 양념에 불과하다. 물론 <뺑반>에는 관객이 기대하는 만큼의 볼거리가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다만 우리 영화의 진짜 강점은 배우들의 표정, 말, 동작에 있으니 부디 오셔서 사람을 보고 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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