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킹덤> 김은희 작가 - 시대에 부합한다면 표현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2019-02-13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비밀 유지 계약 때문에 다음 시즌에 관해서는 일절 이야기할 수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시즌1 공개와 더불어 시즌2 제작까지 공식 발표한 만큼 다음 시즌 대본을 이미 탈고한 김은희 작가에게 속시원히 답변을 듣고 싶은 질문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모든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싸인>(2011), <유령>(2012), <쓰리 데이즈>(2014), <시그널>(2016)에 이르기까지 연속해서 일종의 사회파 스릴러 드라마를 흥행시킨 그가 갑자기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좀비와 사극의 만남이라는 파격적인 도전을 감행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는 시대와 소재는 조금씩 달라도 삭막한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자와 짓누르는 자 사이의 경계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줄곧 써왔다. <킹덤> 역시 마찬가지다. 무너져 내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물어뜯는 좀비 떼의 습격 뒤에 거대한 빅 픽처가 숨겨져 있다. 김은희 작가를 만나 아직 회수되지 않은 떡밥과 제작에 얽힌 이야기를 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가 출현한다는 이야기는 <킹덤>의 원작인 만화 <신의 나라>(2015,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발한다. 2011년 무렵부터 구상한 이야기라고.

=SBS 드라마 <싸인>을 끝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좀비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아무런 리액션이 없더라. (웃음) 다들 제작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좀비영화를 보면 공포의 대상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좀비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야 할까, 식욕만 남은 존재라는 점이 슬퍼 보였다. 그들을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처참한 조선시대로 옮겨 놓으면 배고픔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기에는 이야기가 워낙 방대해 애초에 드라마로 써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표현 수위가 잔인할 수밖에 없고 또 제작비 등 여건상 쉽지는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만화는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드라마 1회 대본 쓰듯이 써나갔었다.

-단행본 <신의 나라> 후기에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좀비라는 현대 재난영화의 소재를 배고픔과 그로 인한 역병이 창궐한 조선시대로 옮겨 놓은 부분이 <킹덤>의 바탕이 됐다.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언급하는 괴질이 발생해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거나 하는 역병이 배고픔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거다.

-<신의 나라>에서 마지막에 세자가 이런 대사를 한다. “처음으로 사람이 사람을 먹으려 했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 때문에 생긴 병이 아닐까.” 즉 역병은 애초에 배고픔에서 발병했다는 뉘앙스다. 그런데 <킹덤>에서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조학주(류승룡)가 위독한 왕에게 생사초를 처방하면서 벌어지는 참극으로, 그 병의 기원과 방향이 원작과 다르다. 마치 위정자들의 암투에 백성들이 희생되듯 말이다.

=백성들이 배고픈 이유, 그 시초를 생각해보면 결국 백성들이 잘못해서 배고픈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백성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위정자들의 또 다른 배고픔, 즉 권력을 향한 탐욕과 백성들의 배고픔이 만나는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의 나라>에서 왕이 세자에게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섬긴다”고 하는데 두 작품 모두 결국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킹덤>은 조선의 특정 시기를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연산군일기>나 <광해군일기>, <순조 실록> 등에 기록된 여러 역병의 사례를 종합해 만들어낸 가상의 시대다. 그럼에도 전란을 겪은 직후의 상황이라는 점에서 세자 이창(주지훈)의 처지가 광해군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광해군이 바로 연상된다면 전란을 겪은 설정을 뺄까도 고민한 적 있다. 특정 캐릭터보다는 그 시기 전체의 상황이 더 중요했다.

-좀비라는 소재가 조선시대 배경으로 유입되면서 재난영화 혹은 괴수영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 혹은 메시지를 여러 방면으로 변형할 여지가 많았을 것 같다. 대본을 쓰면서 장르적으로 어떤 재미를 강조하고 싶었나.

=재미나 메시지보다는 보고 싶은 장면이 떠오르긴 했다. 예를 들어 <시그널>에서 “적어도 20년 후에는 세상이 달라져 있겠지?”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장면을 내가 보고 싶어 썼던 것처럼 <킹덤>에서는 왕부터 조정 대신, 양반과 상인, 백정과 기생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사람들 모두 좀비가 된 세상을 보고 싶었다. 계층이 사라지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평등해 보이는 식욕밖에 남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보고 싶었다. 시즌1에 정확히 그런 장면이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를 풍길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본에는 없지만 만약 쓴다면 “어떤 세상이 더 나쁘고 처참한 세상일까. 위정자들로 인해 위태로워진 세상일까, 역병이 퍼진 경상 땅일까”라는 물음도 던져보고 싶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좀비영화에서 현실의 사회문제를 빗대어 풍자하지 않나.

=그래서 더 조선시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계급의 차이는 현대보다 조선시대가 훨씬 더 뚜렷하다고 생각하니까. 양반과 상놈의 차이, 유교사상이나 남아선호사상에 관한 묘사, 또 조선시대는 신체 훼손이 불가능한 시대였으니까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대화할 여건이 되는 공간 배경이다.

-넷플릭스는 완성된 대본을 보고 계약을 결정한 것인가. 내용에 관한 자율성을 실제로 얼마나 보장해주던가.

=계약과 동시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본사와 화상회의를 주로 진행하는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 이야기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생사초’가 생소한데 어떤 풀이냐는 질문 정도를 받았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아무래도 정주행하는 드라마를 선호하는데 회당 70분 이상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50분 내외로 맞춰달라는 정도의 요구가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시즌1에서는 세자 이창의 비중이 높다. 6부 전반에 걸쳐 이창이 각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창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를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킹덤’이란 제목이 보여주듯 말도 안 되는 지옥 같은 나라를 바꿀 힘은 누구에게 있을까 하는 의미에서 왕세자가 진정한 좋은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아마도 시즌2는 이창을 중심으로 안현대감(허준호)이나 영신(김성규), 범팔(전석호), 서비(배두나) 같은 주변 인물들이 한양으로 어떻게 돌아오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면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의녀 서비는 생사초에 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시즌2에서 벌어질 결정적 변화를 감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앞으로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캐릭터인데 시즌1에서는 서비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능적으로는 좀비의 특징이 실제로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이 역병을 어떻게 해야 치료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물, 역병을 퇴치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중전(김혜준)은 자기 자식을 내세워 존재감을 키우려는 인물인 반면, 서비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하고 희생하면서 성장해나가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왕 다음으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인물이 조학주다. 조선시대의 궁궐은 굉장히 복잡한 구도에서 싸움을 벌이는 다양한 안타고니스트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인데도 조학주라는 인물로 그 구도를 단순화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세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설정인가.

=그렇다. 궁궐보다는 역병이 중요한 이야기니까 노론과 소론, 서인과 남인 등을 보여주면서 시간을 오래 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당쟁 문제를 선악 구도로 몰아가기도 어렵고.

-드라마 공개 후 국내에서 나온 여러 반응 중 대사의 톤 앤드 매너에 대한 지적이 많다. 사극에서 자주 쓰이는 말투에 현대극의 말투를 섞어 쓰는 분위기다. 또 현장에서 촬영 도중에 대본보다 더 현대적인 말투로 고쳐진 듯 보인다.

=사투리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적용해 전부 다르게 쓸 수는 없었다. 배두나 배우의 연기에 관해서도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가 생각하는 서비는 착한 심성을 지닌, 게다가 죽을 고비도 넘긴 인물인데 그것을 배우가 잘 해석했다. 동래 지역의 이방이나 범팔 같은 탐관오리 캐릭터에게서도 현대적인 말투가 튀어나오는데 그들의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방이나 범팔은 왕실의 말투보다는 평민들하고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기에 어느 정도 자유로운 말투가 허용 가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대본은 정답이 아니다. 시대에 부합한다면 표현은 충분히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차별로 다루는 캐릭터와 배경, 이야기의 흐름은 어떤 목적을 두고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나도 6부작 분량은 처음 써보는데 16부작으로 치면 시즌1은 3부 중반쯤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시그널>을 예로 들면 여러 미제 사건을 두고 그로 인해 인물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진행이었다면, <킹덤>은 동래를 등장시키는 전반부와 상주가 배경인 후반부로 나누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짜보자고 생각했다. 처참한 상황의 궁궐은 계속 등장하는 동시에 동래에서는 무능한 관리를 등장시키고, 상주에서는 그래도 이 상황을 막을 수 있을 만한 희망적인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6부작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그동한 발표한 오리지널 드라마 중에서는 짧은 편에 속한다.

=사실은 8부작으로 기획했다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줄였다. 8부씩 두번에 나눠 16부로 기획하기보다는 6부작이 밀도가 높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대본 지문에 액션 신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2부 후반부 지율헌 창고에서 범일(정석원)과 이창이 겨루는 장면은 몇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둘의 합을 다뤘다.

=대본에 굳이 자세하게 쓰지 않아도 되는 액션 신이 있다. 이를테면 그저 둘이 싸운다 정도만 언급해도 되는 장면. 그런데 분명한 포지션이 있는 액션의 경우에는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자세하게 쓸 수밖에 없다. 꼭 지문대로 찍지는 않아도 되는데 액션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에서만 대본에 쓴다.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액션 장면 중 특별히 마음이 가는 장면이 있나.

=5부에서 상주 강가 갈대밭에서 위기에 처한 이창과 영신, 서비 등을 구하기 위해 안현대감과 가노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좀비들에 맞서 상복을 입은 채로 몸을 던지는 모습의 비주얼이 엄청났다. 그리고 4부에서 이창이 수레를 끌고 지율헌으로 향할 때 우사인 볼트급의 속도로 뒤쫓아오는 좀비로 분한 배우의 액션이 정말 놀랍다. (웃음) 배우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연기하는구나 하고 감동받았다.

-아직 회수되지 않은 떡밥에 관한 질문이다. 1부에서 조학주가 이승희 의원에게 “3년 전처럼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시즌2에서 많은 부분이 소개될 예정이다. 개연성 없이 뒤통수를 치고 싶지는 않다.

-영신은 캐릭터 자체가 의문투성이다. 그의 왼쪽 등에 있는 문신은 착호군이라는 표식 같은데 그렇다면 그는 왜 3년 전 전란 때 죽은 자의 호패를 들고 다니는 것일까.

=영신이 착호군이었다는 것 외에는 말할 수가 없다.

-수망촌에서 벌어진 일도 3년 전의 전란과 연관이 있는 것인가.

=이 부분도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아마도 이 모든 의문이 풀리는 시즌2는 훨씬 템포가 빠를 것이다.

-조학주는 왜 안현대감이 반기를 들 수 없다고 단언하는가.

=둘만의 어떤 비밀이 있다. 안현대감과 조학주의 관계 역시 시즌2에서 속시원하게 풀릴 예정이다.

-전 회차를 통틀어 4부에서 인물별로 중요한 대사가 나온다. 이창은 백성들을 이끌고 지율헌으로 향하며 “난 다르다”고 외친다. 조학주는 분노에 사로잡혀 “다 죽일 것이다, 모두 다”라고 외치며, 중전은 “아들을 내가 낳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세 인물의 욕망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이를 모두 한 회차에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 그리고 이 자리에 왜 서비의 욕망 내지는 서비의 말이 드러나지 않을까 아쉽기도 했다.

=한 회차에 그들의 대사를 등장시켜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다. 사실 70~80분 분량의 16부 대본을 쓰다가 6부작을 쓰려다 보니 도중에 장면이나 대사가 여기저기로 옮겨 배치하는 과정을 좀 거쳤다. 워낙 인물이 함께 등장하고 이창과 조학주의 대립이 강하게 부각되다 보니 서비의 목소리가 작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서비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생사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서비의 목소리다. 그런데 이렇게 병자를 구하겠다는 목적을 지닌 캐릭터라고 해서 느닷없이 그 대사를 서비에게 외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가장 강한 캐릭터는 서비다. 그녀의 존재감을 더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이 시즌2에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자의 이름은 왜 이창인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을 좋아하기도 했고 외자 이름을 써야 했다. 한자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실존한 왕의 이름을 쓸 수는 없어서 최대한 피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이제 시즌1을 마무리했지만, 시즌2에서 모든 사건과 갈등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다. 더 큰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애정 어린 캐릭터를 가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공간 배경이 달라질 거라는 상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작 여건이 허락한다면 시즌10까지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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