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돈> 유지태 - 말하지 않는 순간의 에너지
2019-03-19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올해 유지태는 밀도 높은 캐릭터로 관객을 만났고, 만날 예정이다. 언론배급시사회 전까지 출연 사실이 숨겨져 있던 <사바하>에서 반전의 키를 담당했던 그는, <돈>에서는 신입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에게 위험한 제안을 하는 작전 설계자 번호표를 연기한다. “유지태 정도 경력 있는 배우가 후배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캐릭터를 맡는 게 좀 의외”라고 말하자, “내 기준은 좀 다르다. 주연만 하려고 하면 우울해지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배우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29~30살 때였고, <돈>이나 <올드보이>(2003), <뚝방전설>(2006) 모두 촬영 회차는 비슷했다며 분량보다는 캐릭터의 힘을 강조했다.

-<올드보이> 때부터 인연이 있던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와 다시 만났다.

=“거절해도 돼. 참고로 주인공은 아냐. <올드보이>의 기시감이 들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한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 사람들이 기억을 못할 거야”라며 시나리오를 주더라. (웃음) 알았다고, 대표님 짱이라고 하면서 읽었다. 이건 해야겠다고 바로 결심이 들더라. 먼저 시나리오의 극적 완성도가 높았고, 내가 연기할 번호표 캐릭터가 멋진 게 그다음이었다. 워낙 제작사에 대한 믿음이 큰 데다 (한)재덕이 형은 내가 감독을 하면 시나리오를 한번 보여줘야겠다고 늘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올드보이>는 물론 <심야의 FM>(2010), <뚝방전설> 등에서도 악역의 캐릭터성을 목소리로 보여줬다.

=사실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염려하긴 했다. 타입 캐스팅이 가장 위험하다, 배우는. 그런데 그 역할과 작품에 계속 집중하면 사람들이 배우의 과거 작품은 금방 잊어버린다.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다르게 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접근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배우 혼자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설정하는 순간 그 연기는 가짜가 되고, 재미없어진다. 제대로 인물을 연구해서 그 사람 인생을 담다 보면 결국 다른 인물이 나온다.

-드라마 <굿 와이프>, <꾼>(2016)을 끝낸 이후 <돈> 출연을 확정했다. <심야의 FM>에서 악인을 연기한 후 후유증이 있었다는 과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연달아 나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조금 걱정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한계를 짓다 보면 활동을 못한다. 고인 물보다는 흐르는 물이 낫다. 그리고 10년 전과 달리 내가 개인의 삶과 연기를 좀 구분할 줄도 알게 됐고. 같은 악역이라도 치열하게 재창조하면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일 수 있고, 관객은 그 열정을 알아본다. <심야의 FM> 때는 3개월 동안 독방에 갇혀서 지냈다.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내몰았다 싶었지만, 사람의 느낌이 변하더라. 배우는 일정 부분 이런게 필요하다. 단순 스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매번 캐릭터만의 독특한 느낌을 만들려고 한다.

-처음 번호표 캐릭터에는 어떻게 접근했나. 유명한 영화광답게, 과거에는 작품을 할 때 참고한 영화들을 빼곡하게 언급하던데.

=영화광이라니, 그냥 영화광이 되고 싶은 거지 뭐. (웃음) 이번에는 작품보다 사람을 봤다. 비중보다는 캐릭터만의 독특한 인생이 더 중요해서, 번호표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되는 실존 인물 한분을 연구했다. 그리고 <돈>에서는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현장에서 좀 못 담는다 하더라도 ADR(후반녹음) 때 보충해서라도 완벽하게 만들고픈 욕심이 있었다. 대사는 좀더 컴팩트하게, 설명 부분은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반복적으로 설명하면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또 말을 안 하면 안 할수록 에너지가 생기는 번호표 같은 인물은 대사를 칠 때 무게감이 중요하다. 인물이 많이 나올수록 오히려 신뢰감이 떨어지니, 분량도 줄여달라고 했다.

-감독이자 배우이자 영화 애호가다. 평소의 영화 취향과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얼마나 다르고 겹치는지.

=개인적으로는 작가영화를 좋아한다. 상업영화를 계속 찍다 보니 상업적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래서 상업작가영화를 지향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앞으로는 영화 패러다임이 좀 바뀔 거다. <로마>나 <7월 22일>처럼 인터넷 기반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영화가 오히려 작가의 성향을 잘 담을 때가 있고, 극장영화는 보다 엔터테이닝에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영화는 큰 화면의 디테일이다. (웃음) <돈>은 관객이 극장에서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가영화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으로 MBC 드라마 <이몽>에서 의열단 김원봉을 연기한다.

=어릴 때 부모가 일본인에게 살해당한 후 일본의 수양딸로 살아가는 영진(이요원)이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성장 드라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독립운동가가 등장한다. 제작비 250억원의 대작이고, 사전 제작 후 5월부터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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