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요즘 홍콩영화③] <초연> 관금붕 감독, “영화는 공백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2019-07-24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참 오래 기다렸다. <초연>은 관금붕 감독이 전작 <장한가> 이후 13년만에 내놓은 장편이다. 그간 그는 자신의 영화를 계속 준비하면서 <먀오먀오>(2008) 등 후배 감독들의 영화를 제작해왔다. 지난해 신작을 들고 부산을 찾은 그는 다소 상기돼 보였고 표정이 밝았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 안부부터 물었다.

-신작을 내놓기까지 오래 걸렸다.

=오랫동안 제작자로 활동했다. 그동안 연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마땅한 투자를 받지 못해 진행되지 못했다.

-<초연>은 어떻게 출발하게 된 이야기인가.

=2, 3년 전 홍콩 정부가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대회당을 철거하려고 했다. 그때 많은 홍콩 사람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대회당은 1962년에 지어진 건물로 우리 세대를 포함한 홍콩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어릴 때 이곳에서 홍콩 영화제, 음악회, 연극, 경극 등을 본 추억들이 넘쳐난다.

-대회당이라는 공간에서 출발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연극을 이야기의 소재로 끌어올 수 있었나보다.

=전작에서 항상 연극은 인생과도 같고, 인생은 연극과도 같다고 생각해왔다. 연극을 하는 두 여성이 마음의 고난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 또한 촬영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태도가 젊었을 때와 다르게 느껴졌고, 그 변화를 작품에 반영하려고 했다. 7, 8년 전부터 나를 포함한 홍콩 영화인들은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그런 이유로 대륙으로 가서 영화를 찍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 변화가 영화 속 상황과 비슷해 이 영화를 찍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물에서 출발한 전작과 달리 공간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큰 변화다.

=대회당 철거는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홍콩 정부는 대회당을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홍콩 사람으로서 1997년 홍콩 반환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사회문제를 이야기 전면에 내세워 다루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홍콩의 변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영화의 주제는 아니다.

-수령을 연기한 정수문과는 전작 <장한가> 이후 13년 만에 호흡을 맞췄는데.

=오랫동안 여배우가 가진 영감과 때때로 보이는 그들의 연약함이 항상 내 마음을 움직였다. 정수문은 <장한가>를 찍을 때 역할에 너무 몰입해 촬영이 끝난 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했다. 우울증도 겪었다. 하지만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면서 그녀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녀의 마음과 생각은 점점 단단해지고, 신앙 생활을 통해 더욱 낙관적이며 사람들을 배려하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변화를 지켜보면서 여배우가 어떤 변화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수문을 보면서 수령이 삶의 굴곡을 겪고, 누군가에게는 손가락질을 당하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나오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옥문 역을 맡은 양영기와 작업하는 건 처음이다.

=양영기는 결혼하고 딸을 낳으면서 여성으로서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 2년 전 마카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적 있는데, 그때 양영기가 제작 총괄을 맡은 영화 <시스터 후드>를 보았다. 그 영화에서 양영기가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우정출연을 했는데 출산 직후 찍었던 까닭에 얼굴이 통통했다. 과거에 주로 예쁜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부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 연기하는 모습이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연극 <두 자매>가 수령과 옥문 두 여성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그들이 가진 상처와 고민이 연극을 통해 치유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영화는 공백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한 수령과 잘나가는 옥문, 두 여배우와 연극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들이 처한 현실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서사가 전개될수록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오랜만에 감독으로 현장에 나가보니 어떻던가.

=그동안 좀더 많은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홍콩 영화인들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과거 대륙 영화인들은 홍콩영화가 가진 감각이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홍콩영화 시스템, 인재 양성 방법 등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홍콩 영화인들을 대륙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중국 영화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륙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못하는 게 뭐가 있느냐고 얘기하고, 홍콩영화가 가진 장점 역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는 열심히 영화를 찍을 것이다. 1980, 90년대 홍콩영화는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지 않았나.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홍콩 영화인들이 영화를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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