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한국 장르영화의 흐름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악령을 좇는 구마사제와 격투기 선수의 조화, 즉 오컬트와 액션의 결합은 도전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제작진에 주어진 숙제는 현실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판타지의 영역을 과연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였다. 소재인 구마의식 자체는 영화적으로 낯선 소재는 아니지만 그것이 한국 장르영화의 흐름에 들어올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작진은 서울 하늘에서 벌어지는 구마의식, 즉 현실 기반의 판타지를 그럴듯하게 진짜처럼 구현해 보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조상윤 촬영감독, 이봉환 미술감독, 피대성 특수분장감독은 김주환 감독이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상상을 실제로 구현해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할리우드영화에 맞춰진 관객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면서도 본 적 없었던 새로운 룩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알아봤다.
오컬트의 도시로 거듭난 서울
<사자>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캐릭터의 구축과 함께 배경 설정에서부터 시작했다. 조상윤 촬영감독이 고민한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 카메라에 MSG를 넣지 않고 표현하려 했다”는 말의 뜻과도 같은 맥락이다. 조상윤 촬영감독은 이에 대해 특히 서울이 배경인 점을 고민했다. “마블 영화 등 이국적인 소재와 장르의 설정이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질 때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래서 서울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보다는 서울의 지역적 특징을 지우고 가공의 도시 느낌이 나도록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의 주요 공간이 실은 장르적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이지만 이봉환 미술감독이 고민했던 지점도 일맥상통한다. “실제 존재하는 이미지들, 즉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해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미술 방향을 고민했다.” 김주환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일러스트 작가를 고용해 영화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컨셉아트 형식으로 만들어뒀으며 각각의 팀들이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살을 붙여나갔다고. 이봉환 미술감독은 “흔히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 같은 영화를 비슷한 맥락에서 떠올릴 수 있겠지만 할리우드영화가 즉각적으로 떠오를 만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면서 한국적인 오컬트영화의 도시 배경 이미지는 오롯이 <사자>만의 것임을 강조했다. 구마사제가 등장하는 오컬트영화에 격투기 선수라는 현실적인 인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했던 미술과 촬영팀의 고민이 <사자>의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가톨릭
“인 노미네 예수 프래치피오 티비, 시 에스 히크 마니페스타 테(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 이름을 밝혀라)”라는 라틴어 문장은 구마사제들이 예식에서 행하는 일종의 명령어로서 실제 가톨릭 교회에서 바티칸의 공인하에 활동하는 사제들이 쓰는 말이다. 즉 <사자>에 등장하는 엑소시즘 장면은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판타지의 과장된 묘사가 수반된 것이라 이해하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당도 대부분 실제 성당에서 촬영했다. 용후(박서준)가 구마의식을 행하던 안 신부(안성기)와 최 신부(최우식) 일행을 처음 만나는 성당은 서울의 서초3동 성당 입구 거리에서 외관을 찍고, 내부는 대구의 복현성당(맨 위 사진)에서 촬영했다. 조상윤 촬영감독은 용후가 차를 몰고 성당 앞에 도착했을 때 까마귀 떼가 덮치던 장면이 “이 영화 전체의 상징적인 키숏이 될 거라고 여겨 공을 들였다. 서초동 골목에 스모그를 뿌려서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용후가 아버지의 혼을 만나는 환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성당은 강릉의 초당성당인데 조상윤 촬영감독에 따르면, “독특한 외벽과 디자인으로 굴곡진 벽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와이드렌즈를 써서 강조했”고 천천히 빛이 움직이는 걸 표현하기 위해 조명감독이 촬영 도중에 조명 크레인을 일일이 움직여가며 표현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당들은 전국적으로 다섯곳 정도를 섭외해서 촬영했다. 참고로 안 신부가 들고 다니는 구마 가방은 빛의 무기라는 뜻의 아르마 루치스(Arma Lucis) 구마사제단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고 설정했다. 가방 디자인은 십자가, 성수병, 성경 등의 소품을 가지런히 들고 다닐 수 있게 제작됐다. 구마사제단의 실제 심벌은 바티칸의 로고 이미지를 허가받아 사용했고 안 신부의 묵주반지, 은제 숯 케이스와 성수병은 해외에서 재료를 공수해오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가공해서 만들어냈다.
다크 히어로
“화려한 격투기 선수의 삶 뒤에 외로움을 간직한 인물이다.” 조상윤 촬영감독이 말하는 용후의 성격은 용후를 둘러싼 배경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방향키가 됐다. 이탈리아의 고급 슈퍼카 마세라티와 오토바이 두가티의 디아벨을 소유한 스포츠 선수의 삶 이면에 간직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로는 황량해 보일 만큼 미니멀한 인테리어의 오피스텔 배경도 한몫했다. “넓은 공간에 혼자 있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와이드렌즈를 많이 썼고 일부러 벽을 많이 활용했다”는 것이 조상윤 촬영감독의 설명이다. 물론 용후의 집 벽은 나중에 용후가 밤마다 자신을 지배하려는 악령들과 외로운 사투를 벌이게 될 때 쓰인다. 상대적으로 관록이 느껴지는 안 신부의 집은 “원래 바티칸에 있다가 홍콩을 거쳐 서울로 온 지 1년 정도 되는 안 신부가 잠시 머무는 거처란 설정이 있었다. 그래서 콘트라스트의 대비를 통해 그가 있는 곳은 흑백영화 느낌이 나도록 설정했다.”
일종의 다크 히어로로서 용후의 성장이나 각성을 보여주는 구마 능력은 오른손의 성흔을 통해 발현되는데, 이것은 특수분장과 촬영, 조명기술의 조화를 통해 탄생됐다. 피대성 특수분장감독은 구마의식의 핵심인 용후의 성흔을 만들기 위해 “박서준 배우의 손을 라이프 캐스팅해서 손금 디테일까지 일치하게 제작했다”고. “용후가 성흔에서 나오는 피의 힘으로 구마를 할 때는 인조피부 위에 혈흔 특수분장 작업까지 거쳤다.” 앞서 언급한 마세라티와 두가티 모델 모두 용후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소품이었다. 차체는 무광 작업을 거쳤는데 이는 김주환 감독의 뜻이었다고.
악마에 사로잡힌 부마자
피대성 특수분장감독은 시나리오를 읽고 “퇴마라는 소재에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조합한 이야기가 역동적이었고 특수분장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올 장르적 요소는 특수분장을 통해서 만들어진 부마자의 이미지일 것이다. 영화 곳곳에 덱스터 스튜디오가 참여해 만든 CG가 쓰였지만, “구마의식을 행할 때 부마자들에게 나오는 다양한 증상들은 아날로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은 장치가 동원됐다. 특히 부마자의 경우, 성스러운 구마의식 도구에 의해 자극을 받고 몸에서 악령이 빠져나올 때 얼굴에 불이 붙으며 사라지는 설정인데 이런 표현 역시 CG와 조명, 특수분장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슈퍼히어로영화에 비유하면 끝판왕 빌런에 해당하는 지신은 알비노 악어나 뱀 같은 새하얗고 투명한 생물체를 바탕으로 컨셉아트가 정해졌고 특수분장팀에서 배우의 신체를 음각으로 본뜨는 라이프 캐스팅 기법을 적용해 연성이 좋은 실리콘 소재로 보디 슈트를 제작했다. 피대성 특수분장감독은 “액션을 소화해도 몸이 다치지 않는 소재와 디자인이 중요했다”고.
바빌론
지신의 주요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럽 바빌론은 지상은 클럽, 지하는 은밀한 제단이 숨겨진 건물이다. 애초 기획 단계 때부터 오랜 시간 존재해왔던 어둠의 제단 위에다 현대에 이르러 클럽을 지었다는 설정이 부여된 건물이다. 건물 바닥에서부터 뚫고 올라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2~3층 정도를 뚫어서 디자인했다. 이봉환 미술감독에 따르면 “다른 영화들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오기보다는 지신을 상징하는 악마 로고 디자인에서 착안해 직선과 사선으로 이뤄진 로비 공간을 만들었다”고. 클럽 벽면에는 RGB 색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LED 패널 조명기를 심었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설정이지만, 미술팀은 클럽 내부 방의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지신의 컨셉에 맞춰서 악어가죽 소파, 벽면의 표범 문양 등을 준비했다.
용후가 클럽에 들어서면 강력한 액션 신이 펼쳐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마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교회 학살 장면을 연상케 하는 롱테이크 신이 등장한다. 내부의 액션 촬영은 액션을 넓은 앵글에서 원 테이크로 길게 보여주는 것을 선호하는 김주환 감독의 주문에 맞춰서 촬영했다고. 지하에서는 지신과 용후의 일대일 액션이 펼쳐지는데 “위층에서 못한 것을 다하자, 컷도 다양하게 나누고 앵글도 다양하게 찍자는 것”이 의도였다. 이른바 용후의 불주먹이 등장하게 되는 장면인데 단순히 CG로 불을 그려넣기만 하면 되는 작업은 아니었다. “용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스러운 불은 조명감독과 조명 업체가 함께 개발한 조명 도구를 손에 부착해서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에 미치는 빛의 효과까지도 전부 계산해가며 찍어야 했다.”
바빌론 클럽 지하의 미술은 사실 가장 많은 공이 들어간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쇠사슬로 얽혀 있는 나무 제단의 경우에는 정육점 도마같은 룩을 원했던 김주환 감독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 이봉환 미술감독이 수개월간 산을 타면서 구해온 괴이한 형태의 뽕나무 뿌리로 이어 만들었다. 제단 위에서 지신이 제의를 할 때 쓰이는 심장은 특수소품팀이 준비한 애니매트로닉스 기술 기반의 돼지 심장이었다. <사자>는 CG가 많이 쓰인 영화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아날로그를 고집했던 김주환 감독의 의도에 따라 디테일한 부분의 상당수가 실제로 촬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