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대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전투를 소환하는 영화다. 만주 봉오동 지역의 재현에서부터 험난했던 산속 촬영과 전쟁 액션의 뒷이야기 등을 김영호 촬영감독, 이종건 미술감독, 김민수 무술감독에게 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어떤 고민과 노력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는 순간 영화의 마음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봉오동전투
1920년 6월, 대한 독립군은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를, 첫 승리의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제의 농민이 오늘의 독립군’이 되던 시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기어이 승리의 역사로 장식한 독립군들의 이야기가 130여분의 영화에 담겼다. 영화에 참여한 스탭들도 바로 이 ‘승리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와닿았다고 말한다. <마녀> <브이아이피> 등 박훈정 감독과 꾸준히 손발을 맞췄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타워> <해운대> 등 블록버스터영화 경험도 두둑한 김영호 촬영감독은 원신연 감독과 <봉오동 전투>로 처음 만났다. 공교롭게도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 시나리오를 <봉오동 전투>의 시나리오보다 3일 먼저 받았는데, “박훈정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 받자마자 후루룩 읽어 내려간 <봉오동 전투>를 먼저 찍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고 숨이 찼다. 속도감도 긴장감도 대단했다. 책을 보고 이렇게 숨이 차는 건 드문 일이다. 더불어 원신연 감독님이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억압과 피해의 역사가 아닌 독립군이 거둔 첫 승리의 상황을 묘사할 수 있어 좋았다.”(김영호 촬영감독) 원신연 감독과 <용의자> <살인자의 기억법>을 같이한 이종건 미술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읽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경우 내부의 배신이나 작전의 실패처럼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은데, <봉오동 전투>는 이기는 이야기다. 어둡고 아픈 시대에 굴하지 않고 저항했던 사람들, 승리의 서사를 써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라 좋았다.”(이종건 미술감독)
전쟁영화
“기존의 한국 전쟁영화들은 방어전이나 공간 점령이 많은데, <봉오동 전투>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이동하며 스피디하게 전투를 벌인다.” 김영호 촬영감독의 말처럼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의 월강추격대대를 유인해 상대를 제압하는 작전 전략은 영화에서도 성실히 재현된다. 소규모 게릴라전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독립군이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전쟁영화 <봉오동 전투>의 개성이다. 현장 통제의 어려움이 큰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롱테이크 장면과 와이드 화면”을 많이 쓴 것도 특징이다. 김영호 촬영감독은 “기술로 기교를 부리면 이야기의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며 “전투 장면 또한 가능한 한 긴 호흡으로, 와이드한 화면으로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배우, 촬영, 특수효과, 무술 등 파트별 호흡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봉오동 전투>의 무술은 원신연 감독의 “30년지기”이자 <살인자의 기억법> <세븐 데이즈>를 함께한 김민수 무술감독이 맡았다. 원신연 감독이 김민수 무술감독에게 언급한 레퍼런스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전쟁영화 <덩케르크> <론 서바이버>였다고 한다. 멋진 전쟁영화가 아닌 그 시대의 독립군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인 사실적인 전쟁영화. 그것이 <봉오동 전투>의 지향점이었다. 김민수 무술감독은 “전쟁영화의 액션은 폭파 신과 총격전으로 이루어져 단조로울 수 있다”면서 “뻔하지 않은 그림을 위해선 무엇보다 배우들의 감정과 액션이 잘 어우러지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무술감독 입장에선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안전”이다. 정직한 전쟁물을 만들자는 목표와 안전한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양립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셋업과 팀워크 때문이었다고.
공간 재현
유인 작전과 게릴라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 속 공간 이동이 많다는 뜻이다. 이종건 미술감독은 “게릴라전이 많아서 각각의 공간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장소 헌팅에서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공간 구현과 관련한 현실적 어려움은 실제 봉오동전투가 일어난 곳에 갈 수 없고 남아 있는 사료 또한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여러 지도와 자료를 종합해 봉오동 주변의 땅 형세를 파악한 다음 유사하게 공간을 재구성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삼둔자 마을은 미술팀이 경기도 포천 지역에 옥수수 등을 심어 경작한 땅에 오픈세트를 지은 경우다. “결국 이 영화는 땅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땅을 빼앗긴 사람이 있고 땅을 되찾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땅을 유린한 사람이 있다. 간도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는 게 그래서 중요했다. 마침 원신연 감독님도 ‘그러면 농작물을 심어 땅을 경작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옥수수 농사는 풍년을 이뤘고 자연스러운 마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이종건 미술감독) 더불어 아래쪽 마을인 삼둔자의 집은 초가집으로, 고도가 높은 상촌은 너와집으로 지어 같은 북방 지역이라도 공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공간의 재구성은 김영호 촬영감독에게도 중요한 과제였다. “죽음의 골짜기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간과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보여줄 것인가에 신경을 많이 썼다. 봉오동이라는 공간이 북방의 화산 지형이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국적 지형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공간과 빛에 따라 변하는 풀과 나무의 색, 즉 초록색 톤을 맞추는 후반작업 과정에도 공을 들였다.”(김영호 촬영감독)
산속 촬영
“원 없이 달렸다.” “평생 다닐 산을 다 탄 것 같다.” <봉오동 전투>의 기억을 떠올리며 모두가 공통되게 한 말이다.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이 산속이다 보니 능선을 따라 달리고 수풀을 헤치며 달리고 비탈진 흙길과 돌길을 달리는 일이 예사였다. 촬영 공간의 특성상 내구성이 좋은 스테블라이징 장비와 경량화한 크레인이 동원됐다. 항공촬영 분량도 많았고 중요도도 높았다. “항공촬영에서 중요한 건 빛과 속도감이다.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화면이 플랫해 보이기도 하고 긴장감이 더 생기기도 한다. 평범한 항공촬영이 아니라 ‘액션 항공촬영’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가 독립군들이 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을 항공촬영한 장면이다. 산 밑에서부터 시작해, 장하의 모습과 해철 무리와 일본군의 동선까지 보여주며 속도감 있게 나아가는데, 그 장면을 한숏으로 보여준다. 찍고 나서 소름이 돋았다. 관객도 보면서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김영호 촬영감독) 산속 촬영의 물리적 어려움, 육체적 고단함은 스탭들간의 결속력을 끈끈히 다지는 결과로 작용하기도 했다. 손에서 손으로 손수 장비를 나르는 과정은 동료애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김민수 무술감독은 말했다. “산 정상에서 촬영하다 폭우가 내린 적이 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장비는 많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스탭들 모두 짐 하나라도 더 들고 내려가려고 하더라. 그 모습이 감동이었다.”
유해진의 쾌도난마와 액션
김민수 무술감독이 시나리오를 읽고 제일 먼저 고민한 장면은 해철의 항일대도 쾌도난마 장면이었다. 항일대도를 주무기로 하는 해철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중요한 액션 신이다. “총기 액션이나 폭파와 달리 해철이 칼을 휘두르는 이 장면은 무조건 몸으로 보여줘야만 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해철의 캐릭터도 확 살아야 했기 때문에 공을 많이 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해진 배우의 아이디어로 본인이 직접 칼과 카메라를 들고 셀프캠을 찍기도 했는데, 생동감을 살리는 데 일조한 것 같다.”(김민수 무술감독) 참고로 항일대도는 고증을 통해 실제 사이즈와 무게를 반영한 촬영용 가검을 만들어 찍었다. 류준열이 연기하는 장하의 경우 교육 받은 독립군의 모습을 반영한 의상과 소품, 액션을 선보인다. 장하가 절벽을 뛰어넘어 일본군을 유인해 저격하는 장면에선 류준열의 운동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와이어를 타고 10m쯤 되는 절벽에서 뛰어 내려야 하는데, 류준열 배우가 와이어 액션은 처음 해본다고 하더라. 그 상황에선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머리도 복잡해지고 연기 감정도 잡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무술 대역이 먼저 시범을 보였고 류준열씨가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와이어 액션을 시도했다. 그러더니 딱 한마디 하더라. ‘오, 완전 믿음 가!’ 와이어 잡아주는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단번에 생긴 거다. 그렇게 무사히 절벽 장면을 마무리했다. 축구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다방면으로 운동신경이 좋더라.” 김민수 무술감독이 들려준 류준열 액션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김민수 무술감독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뒤에서 묵묵히 땀 흘린 조·단역 배우들의 노고였다. “봉오동전투가 우리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독립군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승리 아닌가. 마찬가지로 영화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조·단역 배우들이 나온다. 이들이 흘린 땀도 기억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