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4일 월요일. (끔찍한, 이라는 형용사를 쓰고 이내 줄로 그어버린 뒤)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문장으로 <이제야 언니에게>는 시작된다. 비 내리는 월요일 저녁, 18살 소녀 이제야는 동생 제니, 사촌동생 승호와 자주 가던 아지트에서 당숙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날 이후 제야의 시간은 멈춰버린다. 가만히 있는다면 동생마저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야는 놀랍도록 의연하고 침착한 태도로 산부인과와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하지만, 돌아오는 건 가장 가까운 이들의 2차 가해다. “네 잘못도 있다”고 말하는 큰아버지, “손해는 너만 볼 것”이라 말하는 큰어머니, “우리 모두 그 비슷한 일 한번씩은 겪고 살았”으며 “너만 대수롭지 않다고 마음먹으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할머니의 반응이야말로 상처 입은 소녀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수년 전 나쁜 짓을 당하고도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친구 은비처럼, “소문 속 그 여자애”가 된 제야는 엄마의 30년지기 친구인 강릉 이모에게로 향한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창비가 새롭게 선보이는 경장편 시리즈 ‘소설 Q’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피해자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축소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더욱 공감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1980~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여성들의 서사를 재현함으로써 제야의 고통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로 확장한다. 제야가 겪은 아픔은 작가가 서술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제야가 동생 제니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유된다. 영화 <벌새>와 더불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소설가 황현진은 책 말미 발문에서, 최진영이 “삶이 무서워서 얼어붙은 사람에게 서슴없이 다가가서 짧은 칼날로 얼음을 깨뜨리는 작가”라 평했다.
시대의 문제
찢을 수 없다. 찢으면 안 된다. 찢어버리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은 중요하다. 아름다운 과거보다 중요하다. 더 나은 미래보다 중요하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 그러니 다음이 있다. 내게도 다음이 있을 것이다.(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