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100년①] 오래된 미래,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2019-11-06
글 : 송경원
단절된 시대와 기억, 사라진 유대감을 잇는 작업

역사는 오늘을 위한 이야기다. 흔히 과거로부터 차곡차곡 쌓여서 오늘에 이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그런 방식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수많은 과거의 사실 중에 중요한 것들을 몇 가지 골라 하나의 실로 꿰어낸 것이 이른바 역사(歷史)다. 때문에 사실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들을 꿰어낸 실, 말하자면 누가 무엇을 위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는가의 문제다. 2019년은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다. 올해가 100년이된 이유는 단순하다. 1919년 10월 27일 김도산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한국영화 최초의 영화로 지정하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탄생의 여명기, 수많은 창작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과 소통하고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중 연극과 필름 상영이 결합된 형태의 신파극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영화로 공론화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최초로 상영된 영화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떤 영화를 우리의 기원으로 삼을 것인지는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2019년 한국영화 100년은 그저 자연스럽게 쌓여온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억을 발굴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2019년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은 그와 같은 분명한 방향성과 목적의식하에 진행되었다.

한국영화 다시 쓰기, 왜 <의리적 구토>인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올해 3월부터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다시 기억하기 위한 계획들을 추진해왔다. 2019년 12월까지 진행되는 여러 사업 중에 핵심은 아무래도 10월 26, 27일 열리는 기념행사일 것이다. <의리적 구토>(1919) 상영일인 10월 27일에 맞춰 광화문 광장에서 이를 재현하여 100년 만에 한국영화의 시작을 소환하는 것이다. 한국영화 100년을 논하기 위해서는 왜 그 시작점이 <의리적 구토>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의리적 구토>의 상영 방식은 일반적인 영화 상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연극 공연과 영상이 함께 펼쳐지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는 초창기 영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온전한 영화 상영 방식과는 달랐기에 <의리적 구토>가 최초의 한국영화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견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적 구토>가 지닌 영화적 실천 의지와 가능성이 한국영화의 포문을 열었음은 명백하다.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극장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현재,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질 수 있는 <의리적 구토>가 새삼 최초의 한국영화라는 자리로 소환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고 복원하는 것을 넘어 지나간 것들을 새롭게 만나는 작업의 연장이다. 동시에 앞으로의 한국영화가 단절의 기억을 넘어 함께하는 축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의 선언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올 한해 목표로 삼은 것도 한국영화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초석을 다지기 위한 작업들이었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은 단순히 고전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단절된 시대와 기억, 말하자면 사라진 유대감을 잇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고전영화를 보라고 강변하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고전영화를 지금 다시 보고 싶도록 만들고,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올 한해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총 4개 분야로 나눠 업무를 추진했다. 기획홍보 분과에서 전체적인 틀을 짜고, 영상제작 분과에서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상제작을 전담했다. 전시공연 분과는 10월 27일 행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기획을 준비했으며 마지막으로 학술출판 분과에서 한국영화사에 대한 각종 세미나와 학술자료 등을 발표했다. 행사의 중심은 <의리적 구토> 개봉일인 10월 27일 본 축하공연이었지만 어쩌면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제작한 단편영화 옴니버스 프로젝트 ‘100×100’이 그 대표적 사례다. 100명의 영화감독이 각 100초짜리 단편을 연출하여 총 1만초, 2시간 46분에 달하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이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영화인들의 손을 거쳐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완성된 영상은 최종적으로 84분짜리 장편영화 2편으로 공개될 예정이지만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100초짜리 짧은 콘텐츠를 유튜브, SNS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을 통해 소개할 수도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시금 한국영화에 대한 질문을 환기하는 효과도 발생한다. 그야말로 오래된 기억을 현재진행형으로 즐기는 방식이라 할 만하다.

씨네21 백종헌. <한국영화 100년 기념 음악회>에서 첫선을 보인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재현 쇼케이스.

단절의 역사를 넘어, 한국영화 좌표 찍기

한국영화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순조롭게 축적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시작해 해방과 한국전쟁, 엄혹한 독재의 시간을 거치며 시대마다 단절을 겪어왔다. 영화적 전통이 면면히 쌓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만큼 50년 전 출간된 고 이영일 선생의 <한국영화 전사> 이후 통사(通史)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개별 연구자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논의하기 어려운 환경에 기인한 바 크다. 따라서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논의에 불씨를 붙이는 의미로 여러 갈래의 학술세미나와 출판사업을 진행했다. 23일 수요일부터 25일 금요일까지 3일간 진행된 학술세미나에서는 한국영화사를 정리, 복기하는 작업뿐 아니라 한국영화 연구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하고 미디어에 따라 다양하게 접근하는 방법론에 대한 발표들이 이어졌다. 한국영화의 개념과 범주, 정체성을 묻는 작업을 통해 내일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작업의 일환 혹은 첫걸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영화의 위상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확고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이례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한국영화의 역량과 저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은 자국영화의 비율이 할리우드영화보다 높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고 1인당 연평균 관람횟수도 4.18회(2018년 기준)로 세계 1, 2위를 다툰다. 세계영화 평단에 인정받는 거장감독들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작기술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에 비해 할리우드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영화 제작인력의 수준이 높다. 다만 이에 비해 한국영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이해가 낮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영화 100년은 지난 100년의 성과를 기념하고 자축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선 위치를 파악하고 지나온 길과 맥락을 더듬어보는 작업을 통해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재점검의 시간이다. 이장호 위원장은 “이번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사업은 발굴과 복원을 넘어 시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은 1회성으로 끝나는 화려한 세리머니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 초석을 다지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이 이번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의 취지와 방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국영화가 걸어온 100년은 흘러서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이 아니다. 앞으로 곁에 두고 수시로 꺼내보고 즐길, 현재진행형의 시간 혹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의 축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생충>을 놓고 오늘의 세대를 말하듯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을 보고 1960년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발전과 성장이란 일종의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존재하는 건 오직 변화뿐이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오늘, 우리의 위치에 대해 자문자답하며 파악하는 것. 한국영화 100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상상하는 즐거운 시간, 100년의 좌표 찍기는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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