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겨울 한국영화③] <백두산> 하정우 – 생생하게 더 생생하게
2020-03-12
글 : 김성훈

하정우는 지난 1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걸었다. <PMC: 더 벙커>(2018), <클로젯>(2020년 개봉예정이다.-편집자), <백두산> 등 세편을 연달아 제작하고 출연까지했다. 자신의 회사인 워크하우스컴퍼니를 차려 배우 매니지먼트와 영화 제작 사업에 더욱 힘을 주었다. 유튜브 방송 <걷기 학교>에 출연해 후배 배우들과 함께 걷기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을 촬영하고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걸어가는 그의 행보는 영화 <백두산>에서 그가 맡은 조인창과 여러모로 닮았다. 인창은 전역을 앞둔 폭탄 제거반 군인으로, 예기치 못한 작전에 투입돼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우직하게 임무를 수행하려는 인물이다. 워크하우스컴퍼니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나 <백두산>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오늘도 사무실까지 걸어왔나.

=아니, 오늘은 밖에 일이 있어서….

-<백두산>은 제작자로서 꽤 오래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데.

=<PMC: 더 벙커>를 준비하던 5년 전쯤인가? 이해준, 김병서 감독으로부터 어떤 이야기인지 듣고, 세부적인 설정들을 수정하면 더 발전할 가능성이 보여 함께 준비했다.

-이해준, 김병서 감독과는 원래 잘 알고 지낸 사이인가.

=10여년 전, 이해준 감독으로부터 <김씨표류기>(2008) 출연을 제안받은 인연으로 오가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다. 김병서 촬영감독은 내가 출연한 <신과 함께> 시리즈와 <PMC: 더 벙커>를 촬영했고.

-당시 이야기의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

=상업영화가 가진 미덕을 두루 갖췄다. 전역을 앞둔 군인이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작전에 투입된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준평(이병헌)과 인창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유머와 긴장감이 전형적이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인창은 전역을 앞둔 폭탄 제거반 소속 군인으로, 아내 지영(배수지)과 살아가고 있다. 인창의 가족관계나 성격이 대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인데, 그럼에도 인물의 전사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했나.

=다행스럽게도 인창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신들이 많이 배치된 덕분에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굳이 행간을 상상하고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총을 든 모습을 보면 전작 <PMC: 더 벙커>에서 연기한 에이햅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인창은 폭탄을 제거하는 군인이라는 점에서 실전에 단련된 직업 용병인 에이햅과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소 같은 스타일이라서 에이햅처럼 야망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전투병이 아닌 군인이 작전에 갑작스럽게 투입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뻔하지 않아 관객이 그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 있겠다 싶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PMC: 더 벙커>도, 이 영화도 당신이 연기한 인물은 하나밖에 없는 가족 때문에 마음이 더욱 급해지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래서 그런 설정을 완전히,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왜 반대했나.

=이런 질문을 받을 것 같으니까. (웃음) 너무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 설정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감독 입장에선 인창에게 핸디캡을 하나 더 부여해 긴장감을 구축하는게 필요했나보다.

=비유하면 시한폭탄 기능을 설정해놓고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한 뒤 살아서 돌아와야 이야기의 온도가 올라가니까.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약속된 규칙을 지켜야 하지 않나. 수만 가지의 프레임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데 연기만으로는 그 모든 걸 다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배우인 나를 뽐낼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살릴 것인가. 상업영화라면 영화를 살리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를 포함해 전작을 살펴보면 한국의 재난영화들은 유독 하정우라는 배우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걸 즐기는 것 같은데. (웃음)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김병우(<더 테러 라이브>(2013), <PMC: 더 벙커>), 김성훈(<터널>(2016)), 이해준, 김병서(<백두산>) 네 감독이 그걸 즐기는 것 같다. 이 넷이 또 절친이다.

-이들은 왜 하정우를 그렇게 괴롭히고 싶어 할까. (웃음)

=내가 강해 보이고,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들은 나의 약한 모습을 건드려 곤경에 빠뜨리면서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 네 사람의 문제다. (웃음)

-이병헌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있을 때 발생하는 의외성이 클 것 같다.

=시나리오와 콘티가 촬영 전에 이미 약속된 상황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테두리에서 조금씩 새로운 걸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드물게도 이번 영화는 촬영과 동시에 찍을 신들의 대사와 상황을 현장 상황에 맞게 수정하면서 진행됐다. 영화가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생생할 것이다.

-거대 예산이 투입되는 <백두산> 같은 상업영화는 현장에서 대사나 설정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촬영 당일에 수정한 건 아니고, 가령 촬영 2주일 앞두고 찍을 신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업그레이드할 방법을 찾아갔다. 덕분에 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농도와 밀도를 각각 더 높이는 작업인 셈이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매 순간 긴장된 상태였겠다.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 아닌가.

=옛날 방식이지. (웃음)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낼 수 있는 현장이라 다행이다. 장갑차 안에서 (이)병헌이 형과 함께 대사를 주고받는 신이 있는데, 나도 병헌이 형도 원래 시나리오보다 더 많은 대사를 준비해와서 찍었다.

-이해준, 김병서 감독과는 첫 작업인데 아이디어를 편하게 주고받는 방식의 작업이 가능했나.

=감독님들이 그 방식을 원했다. 병헌이 형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작품의 온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한 방식이 필요했던 건 이 영화가 인창과 준평의 버디무비이기도 하기 때문인가.

=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창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수다쟁이다. 감독이 코미디를 원하는가 싶을 만큼 말이 많다. 그 수위까지 호흡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했다. 예고편은 심각하지만, 어쨌거나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24시간 내내 심각한 건 아니니까.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걷기를 주제로 한 유튜브 방송 <걷기 학교>를 시작한 이유는 뭔가.

=유튜브가 흥미롭고 앞으로 더 성장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걷기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보스턴 1947> 촬영 때문에 (황)보라를 포함한 걷기 학교 멤버들이 열심히 영상을 만들고 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포함해 평소 모습이 팬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지난 10년 넘게 영화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인터뷰를 하면서 나를 충분히 드러냈기 때문에 큰 부담감은 없었다.

-걷기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 같다.

=10년 넘게 걷다가 2015년에 현재의 걷기 학교 모임을 만들었다. 26명의 멤버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이들이 걸으면서 몸이 좋아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지난해 책 <걷는 사람, 하정우>를 내며 걷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고, 덕분에 여러 반응들이 나왔으며, 그것으로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577 프로젝트>(2011) 같은 영화로 만드는 방식도 있지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만들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를 선택하게 됐다.

-하와이에 머물 때 직접 유튜브 영상을 편집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몇번 했었다. 멤버들에게 재미있게 찍는 가이드라인을 줬다.

-지난해 이맘때쯤 1인 기획사 워크하우스컴피니를 차렸다.

=2004년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에 들어간 뒤로 지금까지 15년 동안 회사에 소속돼 활동해왔다. 그러면서 쌓은 경험과 경력을 후배들과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무엇 하나 결정하더라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러면 후배들을 이끌기 불편하니 직접 회사를 만들어 앞장서서 해야겠다 싶었다.

-<백두산>은 제작자로서 <싱글라이더>(2016), <PMC: 더 벙커> <클로젯>에 이은 네 번째 작품인데.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쌓은 경험을 가지고 좋은 감독을 발굴하고,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내 개발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윤종빈 감독과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간 연기만 하고 빠지는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점에서 제작은 연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고, 동료들과 함께 타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또 있나.

=얼마 전 시나리오가 나와서 모 배우에게 출연과 공동 프로듀서를 제안한 상태다.

-혹시 배우들에게 거절당할 때도 있나.

=물론이다. 거절당할 때마다 비참하다.

-최근에 누구로부터 거절당했나.

=말할 수 없다. (웃음)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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