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겨울 한국영화②] <백두산> 이병헌 – 기술보단 감정으로
2020-03-12
글 : 이주현

<백두산>은 북한의 리준평(이병헌)과 남한의 조인창(하정우)이 백두산 폭발이라는 대재앙 앞에서 손발을 맞춰 재앙의 시계를 멈추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재난영화지만 버디무비의 성격도 강한 영화다. 20여년이 넘게 한국 상업영화의 특별한 성취를 함께한 이병헌으로서도 <백두산>은 새로움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재난영화도, 북한 캐릭터도, 하정우와 함께 연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산>은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다. 기쁨과 슬픔, 감동과 재미, 스펙터클이 있다. ‘이번 겨울에 정말 재밌는 오락영화 한편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에 딱 부합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연기로 모든 것을 증명해 보이는 배우인 만큼, 멀티 캐스팅의 블록버스터 <백두산>에서도 이병헌의 폭발적 연기를 기대하게 된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차기작으로 선택한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준비에 돌입했나.

=새 작품 준비는 시작 전이고, 오랜만에 잘 쉬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쉬어보는 게 5~6년 만이다. 몇년간 쉼 없이 일만 하다가 올해 7월 <백두산> 촬영 끝난 이후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열심히 일하고 하반기에는 휴식하고, 정말 이상적인 해였다. 너무 게을러지는 느낌도 들지만 요즘 다시 <백두산> 홍보로 바빠지는 중이다.

-<백두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날 하정우 배우에게 연락이 왔다. <백두산> 시나리오 잘 읽었냐고,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예전에도 서로 “왜 우리가 한번도 못 만났을까, 언젠가 좋은 작품에서 함께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백두산>엔 하정우 배우가 나보다 먼저 참여한 상태였는데, 그런 연락도 받았고, 그렇다고 시나리오가 재미없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재난영화와 다르게 버디무비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흥미로웠다. <백두산>은 장르영화를 선호하지 않지만 버디무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재난영화를 재밌어하지 않지만 버디무비를 좋아하는. (웃음)

-분명 이전에도 재난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에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재난영화를 찍어보니 어땠나.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에 의존해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을텐데.

=더 많은 상상을 필요로 하는 연기인 건 맞다. 그런데 다른 작품에서도 대부분 상상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고 내가 죽어본 적도 없으니까. 아무리 생활연기를 한다 해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연기할 때가 많다. 재난영화의 경우 비주얼적으로 어떤 상황이 뒷배경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감독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뒤에서 빌딩을 집어삼킬 정도의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아, 깜짝이야” 하는 리액션을 할 순 없지 않나. (웃음) 지금 이 인물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계속해서 감독과 대화를 나눠야 했다. 감독이 이 상황에선 70%의 감정을 표현해달라고 하면 그 정도의 상황이라는 것을 상상하며 연기하는 거다.

-의외로 계산적이고 기술적인 연기를 요하는 작업이었겠다.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엔 온전히 감정으로 가야 한다. 연기를 하는 순간에 계산을 한다? 감정에 맡기지 않고 이성에 맡겨버리면 절대 좋은 연기가 안 나온다.

-베이징 주재 북한 서기관으로 위장 활동을 하다가 남측의 이중 첩자인게 발각돼 수용소에 5년간 수감된 인물이라는 설정에서 리준평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준평은 어떤 인물인가.

=리준평은 색깔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이익이 최우선인 사람이다. 이중 첩자라는 게 북한을 위해서도, 남한을 위해서도 일했던 사람이라는 건데, 그건 다시 말해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는 게 리준평의 매력이다. 때에 따라선 누구보다 예리하고 칼같지만 때에 따라선 동네 아저씨 같고, 어떨 땐 섬뜩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땐 코믹하게 풀어지기도 하고. 다양한 면모가 이리저리 섞인게 리준평의 매력이다.

-북한 사투리, 중국어, 러시아어 등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도 필요했다.

=중국어 선생님, 러시아어 선생님, 북한말 선생님까지 나라별로 선생님이 다 있었다. 우리나라 영화 현장이 진짜 좋아졌구나 싶더라. (웃음) 중국어와 러시아어는 너무 생소해서 녹음한 걸 반복해서 듣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언어 습득력이 빠른 편인가.

=굉장하다. (웃음) 농담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힘든 일이다. 사실 ‘그래도 난 언어쪽엔 재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이번에 중국어를 만나니까 그렇지 않더라.

-북한 사투리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게 어색하진 않았나.

=지금까지 두 가지 사투리 연기를 해봤다. <내부자들>(2015)에서의 전라도 사투리와 이번의 북한 사투리. 처음엔 부담이 된다. 그런데 선생님과 반복해서 리딩하면 사투리의 인토네이션과 리듬, 법칙 같은 걸 알게 된다. 설령 선생님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사가 주어져도 나름 이게 맞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면 평소 내가 쓰던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에 하정우 배우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대부분의 관객이 그렇겠지만 <추격자>(2008)가 내게도 인상적이었다. <추격자>의 경찰서 신을 본 거의 모든 배우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저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정우 배우가 연출한 <롤러코스터>(2013)도 봤는데, 택시가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 용감하고 대담하다고 생각했다.

-두 배우 모두 코미디에 대한 감각이 좋다. <백두산>에서도 캐릭터의 유머러스한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는데, 현장에선 편하게 서로 애드리브를 주고받았나.

=이미 좋은 대본과 감정이 있으면 굳이 애드리브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웬만하면 대본을 따라가는 편이다. 이번 영화에도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있고, 비교적 애드리브에 열려 있는 상황이었다. 하정우 배우는 순발력이 굉장히 좋은데, 나의 유머와는 색깔이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하이(high)와 로(low)의 차이는 아니고, 뭐랄까 아무튼 좀 다르다.(웃음) 그 지점이 재밌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유머 감각이 부딪혔을 때 그게 상승효과가 될지 어떨지. 관객이 판단해주실 것 같다.

-<백두산>의 배우 캐스팅이 완성됐을 때, 이 배우들의 조합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 같은데.

=기대가 있었는데, 하정우 배우를 제외하곤 만나질 못했다. (웃음) 특히 마동석 배우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때 함께한 사이다. 그때 마동석 배우가 나의 왼팔, 박창이의 수하로 출연했다. 그 사이 배우로 크게 성장하기도 했고 이번에 다시 만나 연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번을 못 만났다. 포스터 찍는 날 처음 만났는데, 그때 “여기 웬일이야?”라고 할 뻔했다. (웃음)

-올겨울, <시동> <천문: 하늘에 묻는다>와 함께 경쟁한다. 바라는 결과가 있다면.

=세 영화가 다 잘돼야지.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이지만, 세 영화 모두 사랑받고 그중에서도 우리가 좀더 사랑받으면 좋겠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최민식, 한석규 조합보다 <백두산>의 이병헌, 하정우 조합을 더 기대해달라는 건가.

=그렇게 말하기는 좀…. (웃음) 나 역시 최민식, 한석규 조합을 보고싶다. 두분이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 후배 배우로서 기대가 된다. 중요한 건 이야기가 아닐까. 어떤 이야기가 더 재밌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년 1월에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한다. 우민호 감독과 <내부자들>에 이어 다시 만났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장르적으로 따지면 누아르에 가까운 영화다. 정말 세련된 누아르로 완성된 것 같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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