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원 아이드 잭>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극중 애꾸(류승범)가 일출(박정민)에게 자신의 아지트 격인 카지노에서 일종의 수업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을 정경화 스틸작가는 패션화보 촬영지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류승범 배우의 아우라 때문이었다. “<시체가 돌아왔다> 때 함께한 이후 7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극중 두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의 현장은 더욱 긴장되고 기대되는 촬영이었으리라. 박정민 배우는 일출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혹독한 다이어트를 거쳐 현장 스탭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고. “몇년 후면 박정민 배우가 지금의 류승범 배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배우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
엄마 미숙(김미경)이 지영(정유미)의 집을 찾아와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라고 말하는 이 장면에서부터 상영관 전체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내 눈물바다였다. 가사와 육아, 그리고 수많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고립된 채 버텨내던 지영의 아픔을 목도하게 된 엄마는 관객과 함께 오열한다. 이 현장을 옆에서 지켜본 김주영 스틸작가는 “배우들의 중요한 감정신이라서 현장이 매우 예민했다”고. 김도영 감독은 두 배우에게 테이크마다 조금씩 디렉션을 바꿔가면서 아주 세밀한 감정연기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날 현장에서 김미경 배우의 연기를 지켜본 모든 스탭이 눈물을 흘렸다고. “영화에서도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촬영하는 동안 우리에게도 잊지 못할 날이었다.”
<유열의 음악앨범>
‘올해의 달리기’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바로 그 전력 질주 장면을 찍던 때, 정지우 감독이 아이패드로 두 배우와 콘티를 확인하는 순간을 김설우 스틸작가가 포착했다. 현우(정해인)가 종우(박해준)의 차를 타고 떠나려는 미수(김고은)를 좇아서 전력 질주하는 장면은 북촌 한옥마을 인근 모 출판사 건물에서부터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역까지를 수차례 뛰며 찍었다.
김고은 배우가 현장에서 이지리그를 직접 착용하고 핸드헬드 촬영을 해보고 있다. “은자(김국희)의 칼국숫집이 있는 낙원상가 지하에서 촬영이 있던 날이었다. (김)고은씨가 이번 영화 현장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스탭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이 보였다. 이 날도 본인이 직접 찍어보겠다고 하기에 서둘러 카메라를 들어 한컷 담았다.”
<미성년>
윤아(박세진)와 주리(김혜준), 그리고 대원(김윤석)과 아기. 영화의 엔딩을 아는 관객이라면 만감이 교차할 ‘가족사진’이다. <미성년> 촬영 현장은 감독이 배우들과 부녀지간처럼 지내면서 디테일한 디렉션 하나하나를 다 챙기고, 심지어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감독이 전부 챙기는 현장이었다. “사진을 잘 보면 감독님이 좀 인위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다. (웃음)”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기념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 사진은 아기가 비록 더미로 제작된 인형이기는 하나 영화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가족사진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사자>
박서준 배우가 연기하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는 거칠고 외롭고 사연 많고, 또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는 점에서 한국형 다크 히어로로서의 가능성을 진단해볼 수 있는 인물이다. 서초3동 성당 입구에 스모그를 가득 만들어 메우고 찍었던 이 장면은 극중 용후가 구마사제들을 처음 만나기 직전. 정경애 스틸작가에 따르면 “까마귀 떼가 덮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데 거의 엔지 없이 찍었다. 완벽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벌새>
은희(박지후)가 아파트가 있는 강남과 병원이 있는 강북을 버스로 오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스탭들이 버스에 모여 있다가 조수아 프로듀서의 카메라에 찍혔다. 강국현 촬영감독과 스탭들이 잠시 쉬는 사이, 뒤에 있던 박지후 배우와 동료 배우들은 셀카타임을 갖고 있다. 조수아 프로듀서에 따르면, 이날의 버스 장면을 모두 찍은 뒤에 영화 엔딩에 해당하는 성수대교 새벽 장면을 찍었다고. 그 장면의 기운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희는 버스에서 참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여전히 영화제 수상 카운트를 늘려가고 있는 <벌새> 현장에서 스탭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렇게 사랑받을 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독립영화 현장이 다 그렇듯 우리도 힘들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조수아 프로듀서는 마지막 촬영 장면을 찍던 도중 점심시간에 김보라 감독과 박지후 배우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동안 영화 찍으면서 서로 얼마나 가까워졌겠나. 다들 끝나면서도 묘한 아쉬움이 남은 상태였다. 특히 은희가 선생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찍기 직전, 감독과 배우가 이야기를 나누던 이 순간은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넘어 마치 김보라 선생님과 박지후 학생의 대화를 보는 듯한 순간이다.
<봉오동 전투>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 류준열이 폭발과 함께 땅에 구르기 직전, 한세준 스틸작가가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은 <봉오동 전투>에서 창고에서 총기를 빼내던 장하(류준열) 일행을 향해 일본군이 수류탄을 던져 창고가 폭파되던 장면을 찍을 때의 순간이다. 경주의 도투락 목장에 세트를 지어 촬영했는데 포탄이 실제 터지는 폭파 장면은 스턴트 배우가 일부를 촬영하고 흙먼지가 날리는 장면에서부터 폭파로 인해 땅에 나뒹굴게 되는 장면은 류준열 배우가 직접 액션을 했다. “어떤 액션을 잘하고 못하느냐보다는 배우의 태도가 영화에 먼저 반영되는 것 같다. <뺑반> 현장에서부터 지켜본 류준열 배우는 긍정적이고 성실하고 체력도 좋아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사진에서처럼 위험해 보이는 순간도 겁내지 않고 잘해냈다.”
유해진 배우가 연기하는 황해철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의리 넘치는 영웅이나 늠름한 지도자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다. 하지만 거대한 항일대도를 들쳐 업고 벌판을 누비며 일본군을 소탕하는 전투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사명감이나 의식을 지니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분들도 있겠지만 생계 유지를 위해서 흽쓸리듯 운동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민초들이 어쩌다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더라면 이런 사진이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력을 동원해 봐줬으면 좋겠다.”
<메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메기>의 이야기에서는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소문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왼쪽 사진의 제목은 ‘배우의 동선을 확인하는 이옥섭 감독과 겨울이’. 극중 윤영(이주영)이 성원의 전 여친 지연(이주영)을 찾아가는데, 이옥섭 감독은 그 장면에서 윤영의 눈에 비친 지연의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를 고민했다. 지연에게서 “따뜻함과 이상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줄 설정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비둘기를 자연스럽게 촬영할 줄 아는 지연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참고로 비둘기는 마술사 보조용으로 훈련된 비둘기다. 찬조출연한 겨울이는 이옥섭 감독이 키우는 개로 <메기>의 장소 헌팅을 주로 함께 다녔다.
사진 제목은 ‘굴삭기 주행 리허설 중인 구교환, 박강섭 배우’. <메기>의 각본과 제작, 출연까지 맡았던 구교환 감독에게 영화 촬영 현장을 찍은 사진 중에 재미있었던 사진을 한장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이 사진을 직접 골랐다. 극중 싱크홀 아스팔트 수리 작업 인부들이 굴삭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 장면을 찍기 위해 리허설을 해보는 장면을 찍은 컷이다. 이 장면의 아이디어는 이옥섭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떠올렸다고.
<증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증인>의 촬영 현장 온도계가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즈음이었지만 배우들은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견뎠다. 차민정 스틸작가는 무더운 촬영 현장에서 나이가 한참 어린 김향기 배우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정우성 배우가 좋은 사람이라 느꼈다고. 정우성 배우가 취하고 있는 포즈에는 사연이 담겨 있다. “크로스!” 정의사회 실현과 성공 사이에서 갈등하던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살인사건 목격자 지우(김향기)에게 다가가기 위해 일종의 마법 구호 같은 “크로스!”를 배운다. 이 구호만 잘 외치면 아이와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기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윤희에게>
딸 새봄(김소혜)이 엄마 윤희(김희애)와 함께 오타루 여행을 떠난다. 둘은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다. 무엇보다 몰래 남자친구를 여행지에 데려온 데다 엄마의 옛사랑을 만나게 해주려는 새봄의 속내야말로 영화 전체를 따스하게 감싸고 도는 기운의 출처라 할 수 있다. 서지형 스틸작가는 <윤희에게>의 촬영 현장이 “참 부드러운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꾸민 촬영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위의 사진은 극중 새봄이 두 번째 게스트하우스 숙소에 체크인하면서 엄마와 거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찍은 것. 과거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시절 역주행의 아이콘이었던 배우 김소혜의 연기를 옆에서 지켜본 서 작가는 “양념이 없는 연기를 봤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