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들⑤] 10개의 키워드로 되돌아본 2010년대 한국 영화산업
2020-01-14
글 : 김성훈
위기와 기회 사이
멀티플렉스 3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의 극장 동시개봉을 보이콧했다.

10년이면 강산이 한번 바뀐다고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하는 한국 영화산업은 강산이 적어도 세번 이상 바뀐 듯하다. <씨네21>은 지난 10년 동안 충무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과 변화들을 되돌아보았다.

1. 필름에서 디지털로

2010년이 되기 전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디지털카메라 한대가 <국가대표>(2009) 현장에 처음 투입돼 자신의 이름을 알리더니,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은 필름카메라를 집어삼킬 기세를 보였다.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었다. 피사체를 2K 크기로 화면에 담는 기존의 HD카메라와 달리 이 카메라는 디지털이면서도 필름과 유사한 화질을 구현하는 4K 방식이었다. 작고 날렵한 이것의 정체는 ‘레드원’이다. 이 카메라는 촬영 현장에 기동성을 더했고, 비용을 대폭 절감하며 짧은 시간 안에 현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레드원의 등장은 필름의 퇴장을 더욱 앞당겼다. 2012년 이스트만코닥은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같은 해 후지필름 또한 영화필름 생산을 중단하면서 전세계 영화인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차례로 등장한 아리 알렉사 시리즈, 스마트폰 카메라 등 디지털이 불러온 바람은 후반작업 공정과 극장 상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모든 극장의 상영 방식이 디지털로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디지털로 찍고도 필름 프린트를 다시 제작해 극장에 보내야 했던,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한국영화의 필름 시대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2. 불황을 관통한 영화판 88만원 세대

불황의 터널은 길었다. 한국 영화산업은 지난 2007년 거품이 빠져나가며 붕괴됐고, 2008년 -43.5%라는 역대 최저 수익률을 기록했다. 영화산업 안팎에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기는커녕 투자가 위축되면서 제작 편수가 대폭 줄었다. 한때 영화산업에 돈이 몰렸던 시절,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졌던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영화가 꿈이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그만두고 방송 등 다른 직종을 선택해야 했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던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은 없었다. 불황의 끝을 향해 달려가던 2011년, 한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 때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는 밥과 김치를 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꺼낸 고 최고은 시나리오작가다. 그의 죽음은 영화판 ‘88만원 세대’의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자 2012년 불황을 탈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산업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3. 더욱 공고해진 스튜디오 시스템

CJ ENM(사진), 롯데, 쇼박스, NEW 등 대형 배급사들은 자금력을 앞세워 스튜디오 시스템을 공고하게 했다. 사진 최성열.

한국영화가 ‘산업’의 형태를 갖추면서 시장 질서는 기존의 제작사에서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재편됐다. 2007년 불황으로 위기를 겪으며 한국 영화산업은 스탭의 고용 불안정, 처우 악화, 제작사 붕괴, 투자•배급사로의 권력 집중화 등 여러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제작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익률 악화에 대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동안 CJ, 롯데, 쇼박스 등 당시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감독과 직접 접촉하고, 제작사에 프로덕션 대행을 맡겼으며,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까지 했다. 이때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제작사를 직접 차려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투자•배급사와 거래했다. 투자•배급사들이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손을 대면서 더이상 기획개발비를 지급하지 않게 됐고, 그러면서 많은 제작사들이 IP(지식재산권)를 기획•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제작사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시나리오 작업은 개량화되었으며, 감독들은 강력해진 스튜디오의 힘에 밀려 더이상 과거와 같은 연출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졌다. 할리우드가 그랬듯이 스튜디오 시스템은 한국영화가 산업 형태를 갖추는 과정에서 등장한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인 동시에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이 양산되는 원인이 되었다.

4. Go West(Hollywood)!

서부로, 서부로. 미국 서부 개척시대 구호가 아니다. 할리우드는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다. 박찬욱, 김지운 두 감독은 2010년대 들어 자신의 첫 할리우드영화인 <스토커>(2012)와 <라스트 스탠드>(2012)를 나란히 내놓았다. 두 영화는 장르도, 소재도 다르지만 단짝 촬영감독인 정정훈, 김지용과 함께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작업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특히 정정훈 촬영감독은 <스토커>를 찍은 뒤 할리우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국 LA에 정착해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호텔 아르테미스> <그것> <커런트 워> <좀비랜드: 더블 탭>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차례로 작업하며 할리우드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오스카 레이스 강행군을 펼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턴 등 할리우드 배우와 함께 작업한 <설국열차>(2013),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를 연출했다. 배우 이병헌은 <지.아이.조2> <레드: 더 레전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여러 할리우드영화에 얼굴을 내밀었고, 마동석은 현재 마블 영화 <이터널스>를 촬영하고 있다. 2010년대는 한국 영화인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해 인정받은 시기라 할 만하다.

5. 가깝고도 먼 중국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은 CJ ENM이 중국시장을 겨냥해 기획·제작·투자한 첫 영화다.

한때 중국 대륙은 기회의 땅이었다. 2013~15년,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중국으로 몰려들던 광경은 골드러시를 방불케 했다. 당시 중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을 거듭해 할리우드를 뛰어넘을 기세였다(현재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시장이다.-편집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밖으로 눈을 돌려야 했던 한국에 중국은 반드시 들어가야 했던 관문이었다. 처음에는 감독, 촬영감독, 시각특수효과(VFX), 특수효과 업체, 무술감독 등 기술 스탭들이나 배우가 중국영화에 참여하거나, 한국과 중국 제작사가 만나 공동의 프로젝트(<필선>(2012), <이별계약>(2013) 등)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쇼박스와 화이브러더스, NEW와 화책미디어처럼 한국과 중국 자본이 결합하거나 한국의 IP와 중국의 자본이 결합하는 방식(<나는 증인이다>)으로까지 진화됐다. 한동안 불붙은 한•중 합작 움직임은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이후 중단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중국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서 한한령이 풀릴 거라는 기대감도 나왔지만 합작 프로젝트와 관련해 얼어붙은 한•중 관계는 아직까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 스크린독과점

누구는 해묵은 논쟁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법을 동원해서라도 규제해야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한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크린독과점은 매년 논란이 일면서도 영화계 안팎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발생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스크린 수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해마다 개봉 편수가 늘어나면서 스크린 확보 경쟁은 매주 치열하다. 공급이 수요를 훌쩍 뛰어넘는 시장 상황에서 영화는 개봉 첫주에 관객을 모으지 않으면 그다음주에 개봉하는 영화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배급, 마케팅 등 모든 화력을 개봉 첫주에 동원해야 하는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극장 또한 잘되는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줘 짧은 시간 안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여러 욕망이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은 거래라는 사실이다. 국회에서 오래전부터 스크린독과점을 금지하는 내용의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상정까지 가는 벽은 높기만 했다. 최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크린 상한제를 골자로 한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6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할 수 있는 복합 상영관에서 동일한 영화를 주 영화 관람 시간대에 상영하는 총 영화 횟수의 절반을 초과해 상영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7. 잃어버린 10년, 블랙리스트

2017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백종헌.

‘이명박근혜’ 정권의 10년은 문화예술계의 암흑기였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문화예술인과 관련 단체들을 색깔론으로 구분하고, 각종 지원금을 의도적으로 우파에 배정하는 반면 좌파를 철저히 배제했다. 박근혜 정부는 영화계에 더욱 노골적이었다. 국정원, 정보경찰 등 공권력을 동원해 영화인과 관련 단체들의 동향을 사찰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각종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는 모태펀드라는 돈줄을 쥐고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걸러냈다. 박찬욱, 김지운 감독 영화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아가씨>와 <밀정>,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 군비리 사건을 다룬 <일급기밀>,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인 <택시운전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재심> 등 여러 영화가 모태펀드 투자를 거절당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온갖 고초를 당했다. 문체부와 영진위가 각각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착수해 결과를 내놓았지만, 블랙리스트 피해를 당한 문화예술인들의 후유중이 남았고, 재발 방지 대책이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문제다.

8. 미투 운동

2018년 3월, 문화예술계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오계옥.

시작은 2016년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은 목소리와 그로 인해 생긴 상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2018년 한 검사의 고백은 더 많은 여성들에게 울림과 용기를 주었다. 서지현 당시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자신의 피해 사례를 올렸다. 그렇게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 물결은 영화계로까지 이어졌다. 오디션, 술자리, 영화제, 촬영 현장 등 어떤 장소도 여성들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감독, 제작자, 배우, 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가해 남성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실을 폭로하는 것뿐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례를 숨기지 않고 용기를 내 말했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영화산업에서 많은 변화들을 불러일으켰다. 2018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개소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운영하고 영진위가 지원하는 든든은 영화계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및 피해자 지원을 포함한 실태 조사, 정책 제안 등 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9.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해 주 40시간 근무제가 영화 촬영 현장에 도입됐다. 사진 최성열.

스탭의 동의 없는 밤샘 촬영은 옛말이 됐다. 지난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한국영화 촬영 현장 또한 주 40시간 근무제에 돌입했다. 영화계는 지난해 주 40시간 근무제를 현장에 도입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일찌감치 대비했다. 잘 알려진 대로 주 40시간 근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근로자가 하루 8시간, 주 5일 동안 노동하는 시스템으로, 주중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합쳐 최대 주 52시간 노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촬영 현장 안팎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단 현장에서 오차를 줄이기 위해 프리 프로덕션이 더욱 엄격해졌고, 스탭 경력이나 숙련도 같은 노동생산성을 좀더 꼼꼼하게 신경 쓰게 됐으며, 액션 신, 몹신 같은 촬영준비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장면을 찍을 때 더 효율적인 진행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은 촬영 회차 증가와 프로덕션 진행비 상승으로 제작비를 10~20%, 많게는 40% 이상 증가시켰다. 제작비가 상승하면 손익분기점이 덩달아 올라가는 까닭에 투자•배급사는 과거에 비해 라인업을 선정하는 데 더욱 신중해졌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점에서 반갑다.

10. OTT의 등장과 위기의 극장

2016년 넷플릭스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 영화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2017)가 극장 동시개봉을 추진했을 때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일제히 보이콧을 선언한 것도, 넷플릭스가 극장 영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넷플릭스를 포함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의 등장은 관객의 영화 관람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특히 OTT를 통해 영상 콘텐츠를 즐겨 관람하는 젊은 관객에게 영화는 더이상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이들은 또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도 엄격히 나누지 않는다. 창작자 또한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이경미 감독 또한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했다. 관객의 관람 방식 변화와 창작자의 자유로운 매체 이동은 극장에 위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멀티플렉스가 끊임없이 극장 시설에 투자하고, 4DX, 스크린X 같은 체험형 상영관을 시도하는 것도 관객에게 영화 관람 이상의 감흥을 선사하기 위한 목적이다. 급변하는 산업 상황임에도 시네마는 큰 스크린에서 감상해야 하는 매체라는 의견이 여전히 나오는 걸 감안하면 극장이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지금부터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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