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②]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 촬영을 거듭할수록 진화 중인 영화
2020-03-12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총알이 빗발치는 내전통에서 남과 북이 손을 맞잡은 채 사막을 질주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 그것도 낯선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동고동락한 사연은 마치 소설 속 한 장면 같지만 실화다. 지난 1990년 12월 30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인 모가디슈 시내에서 반군이 쏘아올린 한발의 대포는 소말리아를 순식간에 내전으로 내몰았다.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생지옥에서 강신성 주소말리아 한국 대사와 김용수 주소말리아 북한 대사, 둘을 포함한 남북대사관 직원들은 12일 동안 동거하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류승완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 <모가디슈>는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다룬 실화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류 감독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직접 쓴 계기는 단순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극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빨려들어갔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 집중했다.”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무대인 만큼 시나리오를 쓰거나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조한 레퍼런스가 있을 법도 한데 류 감독의 대답은 단호하다. “레퍼런스는 전혀 없다. 사건 실화의 취재에 근거하고, 1990년대라는 시대를 끄집어내며, 아프리카라는 낯선 공간에서 창의적인 동료들과 함께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이 영화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중에서 모가디슈에 고립된 주인공 두 사람은 남한의 한신성 대사와 강대진 참사관이다. 김윤석과 조인성이 한신성과 강대진을 각각 연기한다. 한신성 대사는 성공적인 외교를 통한 유엔 가입, 그로 인한 승진까지 기대하며 외교전에 총력을 펼치는 소말리아 한국 대사관의 대사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내전으로 아내,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대사관 건물에 고립된 위기의 순간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선택을 해야하는 위치에 놓인 가장이다. 강대진 참사관은 “할 말 다 하는 성격으로 탁월한 정보력과 기획력으로 한신성 대사와 손발을 맞춰 외교전을 펼치는 인물”이다. “내전의 한복판에 방치된 채 긴급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실력과 기지를 발휘”한다. “두 사람을 포함해 등장인물들은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실적인 인물들이자 사건 내내 갈등하고 겁을 먹은 사람들”이라는 게 류승완 감독이 던진 단서다. 흥미로운 건 김윤석과 조인성, 두 배우가 류승완 감독 영화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막 절반 이상을 찍고 있어 배우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김윤석, 조인성 두 배우 모두 환상적이고 매우 만족스럽다.” 그의 전작을 통틀어 한번도 보지 못한 두 얼굴이 류승완 감독이 설계한 서사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가 이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바벨탑 건설 현장 분위기라 각자도생이다. (웃음)” 제작진이 전한 현장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류승완 감독은 전화 통화를 제대로 하지 못할만큼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1월 9일(한국시각) 현재, <모가디슈>는 아프리카 모로코 에사우이라에서 전체 77회차 중 48회차 촬영이 한창이다. 에사우이라는 모로코와 사하라 내륙을 세계 각지로 연결하는 무역항이자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다. 사막이라 더위와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지중해에 맞닿은 북아프리카라 전기장판을 깔고 자야 할 만큼 춥다”는 게 제작진의 전언이다. 한국영화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촬영하는 건 <인샬라>(1997) 이후 23년 만이고, 모로코에서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모가디슈>가 처음이다. 모로코에서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30년전 소말리아’를 펼쳐내기로 한 건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제작진에 따르면, 소말리아는 위험지역이라 갈 수 없고, 모로코는 <블랙 호크 다운>(2001) 같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촬영한 장소인 데다가 경험 많은 현지 스탭들을 다수 보유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 촬영 유치 경험이 많은 국가인 만큼 세금 환급 제도도 잘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베를린>(2012), <베테랑>(2015) 등으로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최영환 촬영감독과 <블랙팬서>(2017), <옥자>(2017) 등을 작업한 이재혁 조명감독이 모로코의 자연광을 화면에 얼마나 아름답게 담아낼지 기대도 한몫했다.

해외 촬영인 만큼 현장은 스탭과 배우의 국적도, 언어도 다양하게 뒤섞여 북적인다. 스탭은 한국, 모로코, 스페인, 이탈리아 4개국으로, 배우는 한국, 케냐, 이탈리아, 영국, 세네갈 5개국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현장에서 주고받는 언어만 한국어, 아랍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총 6개에 이른다. “다양한 언어가 오가고 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웃음)”는 류승완 감독의 말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작 <베를린>에서 베를린, 라트비아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한 경험은 모로코 촬영에 큰 자양분이 됐다. “<베를린> 때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고받는 언어가 많다보니 의사소통이 쉽지 않지만 영화라는 만국 공용어로 헤쳐나가고 있다. 다만 모로코가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를 못 먹는 건 아쉽다. (웃음)”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내전 중인 소말리아를 탈출한다는 큰 줄기를 제외하면 <모가디슈>가 어떤 갈등을 겪는 이야기인지, 류승완 감독의 전작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지 등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류승완 감독이 스스로 말을 아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영화가 촬영을 거듭할수록 스스로 진화하고 있어 그 과정에서 영화에 대해 단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류 감독의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촬영이 끝난 뒤에 <모가디슈>가 어떤 영화가 되어 있을지 궁금한 것도 그래서다.

제작 외유내강, 덱스터픽쳐스 / 감독 류승완 / 출연 김윤석, 조인성 / 배급 롯데컬처웍스 / 개봉 2020년 여름

•시놉시스

1990년대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남북한의 아프리카 외교 총력전이 한창이던 당시, 소말리아 반군의 대규모 시위로 격렬한 내전이 시작되자 모가디슈에 고립된 남한과 북한 대사관의 공관원들이 목숨을 걸고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관전 포인트

이 영화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이다. 소말리아 내전이 터지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90년은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던 시기다. 당시 아프리카는 표밭이었고, 북한은 이미 남한보다 수십년 앞선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은 <모가디슈> 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이자 드라마의 동력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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